오늘도 지하철로 오고 가며 세상을 기웃합니다.
참, 나 안됐다.
왜 이러고 사니.
지하철을 타려고 뛴다. 1종 운전면허증이 지갑에 들어있고, 집에는 차가 있는데 나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이렇게 필사적으로 달린다. 그냥, 운전하는 내가 두렵다. 그게 전부다.
1호선 승강장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는 경사지고 꽤 길다. 동인천 급행을 검색해 보니 1분 전.
탈 수 있을까. 어제도 죽을 듯이 달렸으나 놓쳤고, 정말 숨이 차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경험을 했었다. 마스크를 집어던지고 싶을 만큼의 숨 막힘과 무심하게 지나치는 인천으로 가는 지하철. 허탈한 마음보다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지각이로구나, 하는 심각한 사태.
뛴다.
오늘은 탈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어쩌면'의 기적이 일어날지도 몰라.
에스컬레이터에 서 있는 사람들을 피해 요령껏 빨리빨리 올라가 본다. 내 앞에 세 명 정도 사람들도 분주하게 걸어 올라간다. 급행을 타기 위한 아침 도시인들의 안쓰러운 몸부림. 아침부터 수고가 많으시네요.
그러다 곁에서 벼락같은 호통이 들린다.
이 무식한 것들아!
지금 나한테 하는 말임? 지금 잘못 들은 거지?
"이 무식한 것들아, 에스컬레이터는 걷는 게 아니야. 이러라고 이걸 만들어 놓은 줄 알아? 서서 가야지. 이 무식한 것들아!"
에스컬레이터를 걸어서 올라가는 우리에게 서 있는 할아버지의 말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이 무식한 것'이라는 정말 생소한 말. 나는 언제 이 말을 들어보았더라. 아, 뒤통수 때려 맞는 기시감. 고등학교 때 수능 수학 문제 풀다가 반 남자아이에게 들었던 것 같은 기억.
휴, 아침부터 짜증 제대로구나. 세상에서 자신의 생각만, 자신의 경험만 옳다고 생각하고, 누구에게든 자신의 말을 강요하는 어른들에겐 이골이 났는지 그렇게 기분 나쁘지도 않다.
'너희도 늙어보면 다 알게 될 것'이라는 노인들의 말처럼 나이 들어보니 '그렇게 살면 안 되겠다'라는 사실을 알겠다. 찰나의 시간, 어른답게 늙어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 또한 그런 어른이 될까 겁이 나서 가르치는 아이들이나 젊은 사람들과 대화할 때 말을 아끼는 편.
출근길에 우리는 그에 대응할 시간이 없고 그런 감정 소비를 원하지도 않는다. 화가 잔뜩 난 할아버지를 그냥 둔 채 앞으로 앞으로 이동한다. 아무렇지 않게, 신경도 쓰지 않고. 그리고 나는 누가 뭐래도 오늘은 급행을 타야 하니까.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더 커진다. 무식한, 부분의 악센트는 더 강해진다. 노인의 말에 그 누구도 대꾸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지나가 버린다. 그러한 사실을 견딜 수 없는 그.
차라리 아무라도 대거리를 해 주길 바랐을까.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가는 동안 '무식한 것들'이라는 어구가 대 여섯 번 정도 반복된다. 쩌렁쩌렁 공간을 울리는 '무식한'의 목소리. 그리고 거리가 멀어질수록 희미해지긴 하나, 이제 그 호통에서는 외로운 외침이 새어 나온다. 내 목소리 좀 들어달라는, 사람 취급 좀 해달라는 듯한.
급행을 가까스로 탔다. 조여 오는 마스크 속에 차오르는 숨. 지하철 구석에 섰다. 할아버지의 힘 떨어지는 소리의 끝이 묘하게 신경 쓰였다.(이렇게 신경 쓰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쩍쩍 갈라진 목소리에 스민 처량 맞음은 상처 난 동물의 흐느낌 같아서.
아무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할아버지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 심정을 헤아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앞서가는 젊은 사람들을 향해 온 힘을 다해 토로하는 노인의 '무식'하다는 말은 누구에게도 소용이 없을 뿐 자신만 파헤치며 아프게 했을까. 주변 사람들에게 떠들어 댈 가십거리만 제공하고 자신만 상하게 한 별 볼일 없는 사건. 결국 존재의 무력함만이 여실히 증명되는 시간.
모든 인간을 이해하는 척, 사랑하는 척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의 무리에 할아버지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고상한 나의 부류에 일부 사람들만 선택했고, 필요할 때만 사랑했다.
무식보다 더한 '가식'인 채로.
경멸의 탈은 어느새 익숙해 벗겨지지 않았다. 몸에 밴 '있는 척, 아닌 척, 그런 척'의 깊이는 무식함보다 깊을까. 생각하지 싫지만 할아버지 때문에 생채기를 내며 헤아리고 있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