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가 되지 않기 위하여

다시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을까? 나는,

by 정아름

방과 후 한국어교실 3년째,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를 만났다.


초등학교 1학년, 8살 아이들 3명.

집 근처 초등학교에 한국어교실 공고가 뜨고, 면접 꽝인 내가 면접을 보면 짜고 치는 무엇처럼 쉽게 되고 말았다. 재작년, 작년에 가르친 중국에서 온 아이들은 참으로 착하고, 가르친 만큼 실력도 늘고 마음에 깊은 감동이나 보람이 전해져 왔다. 마지막 수업을 끝내고 헤어질 때 우리는 길에서 안고 한참을 울었다. 이 길이 앞으로의 내 길인가? 하는 강한 착각이 들 만큼 미묘한 감정이 나를 흔들었다.


그런 교만을 단번에 누른 강적들은 한국으로 중도입국 한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이었다. 나도 내 아이를 10여 년째 만만치 않게 키우고 있기에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자신감이 충만해서 교문을 통과했는데 출근 첫날 직감적으로 알았다. 내가 감당하기엔 엄청난 일이라는 것을. 나는 다시 면접 시간으로 돌아가 거절하는 상상을 하고야 말았다.


어리다고 해서 귀엽기만 하고, 쉬울 것이라는 나의 착각을 완전히 부숴버리던 수업 첫날. 수업시간에 자리에 앉지도 않는 것은 당연지사. ‘한국어를 못 알아듣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벌써 책상 위로 올라가 아이들은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은 공부를 시작하기도 전에 공부하기 싫다며 엎드려 울기도 하고, 배고프다며 공부하다 말고 냉장고 문을 열어 간식을 꺼내기도 했다.


나의 정신력은 무너져갔다.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아 아이들과의 대화가 잘 되지 않는 데다 부모님과의 상담이 거의 불가능했고, 담임선생님께 아이에 대한 상담을 할수록 아이들은 양쪽에서 혼이 나기만 해 정서적으로 불안해졌다.


필리핀과 중국, 연변에서 날아온 이 아이들은 지금 ‘한국어라는 외국어’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 이들의 어머니들은 아직 한국어를 잘하지 못하신다는 사실, 다른 언어가 모국어이기에 아이들의 실력은 당연히 쉽게 늘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인내심과 이해심의 한계에 다다랐다.


몇 해 전 독일에서 나와 남편이 독일어를 못하는 상황에서 아이가 독일 유치원을 힘들어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이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헤아려보려고 노력했지만 아이들은 가르치는 한국어는 좀처럼 늘지 않고 예상치 않은 행동들은 점점 짓궂어갔다.


간식도 먹으면서 집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와서 쉬는 시간에 놀기도 하고, 간단한 게임을 해 보아도 아이들은 생각하는 만큼 나아지지 않았다. 교사로서의 내 자질을 의심해보면서 좌절감이 밀려왔다. 아이들의 내면은 딱딱해지고 완고해졌다.


외국에서 한국으로 온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한국 사회와 문화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을 교육을 통해 남기고 싶다던 나의 첫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오히려 생각지도 않았던 ‘너희는 역시 우리와 다르다’라는 차별적인 생각이 마음 한편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의미 있는 일이 버거운 짐이 되면서 내 생각들은 까맣게 좀 먹어갔다.


더 이상 해결책은 없다며 팔짱을 끼고, 오직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릴 때쯤 오전에 일하고 있는 대안학교 아이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유일한 친구들인 고2 아이들이었다. 유심히 듣던 그녀들은 쉽게 한 마디를 건넸다.


“선생님, 그 아이들이 몇 살이라고요?”

“여덟 살.”

“놀아야 할 것 같아요. 한참 동안, 신나게요.”


아차, 싶었다. 이 아이들은 누구나와 같은 여덟 살이었다. 아이들의 한글 수준을 높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실. 아이들은 자신이 태어났던 그 중국에서, 필리핀에서 해맑고 행복한 얼굴로 웃고 달리며 우리 아이들과 똑같이 살아왔지 않을까.


나는 이 낯선 곳에 온 이 아이들에게 선생으로서의 진심을 전하기는커녕 억지 미소를 지으며 한국형 꼰대의 교육 방식을 강요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중학교 교사를 하고 있던 친한 언니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했더니, 언니는 말했다. 꼰대가 되는 건 정말 쉬운 일이라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미 꼰대가 되어있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항상 경계해야 한다고. 순간, 나는 절대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을 보았다. 자연스럽게 오른쪽 다리를 꼬고 내 안에 앉아 있는 시꺼먼 꼰대의 옆얼굴. 소름 끼칠 만큼 징그럽게 파닥거리는 그것은 내 속에 있었다. 어느새 찰싹 붙어 쉽게 떼어질 기세가 아닌 채로.


그날, 아이들을 만나 오늘 할 공부를 빨리 끝내고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믿기지 않은 얼굴로 밖에 나가서 ‘무엇을 할 것이냐’를 물었다. 나는 할 줄도 모르는 축구를 하자고 했다. 순간, 아이들의 눈빛이 번쩍했다. 팔짝팔짝 뛰면서 선생님은 최고라며, 왜 선생님이 이렇게 착해졌냐고 묻는다.


잠시 후, 운동장에서 아이들은 찬바람도 상관없이 달렸다. 실내화 가방과 점퍼도 벗어서 나에게 맡기고 운동장 끝까지 그렇게 달렸다. 처음으로 행복하게 웃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참으로 신나 보였다. 그리고 미안해졌다. 험하고도 높은 산을 아이들과 손을 잡고 넘은 기분이었다.


오후의 빛이 드문드문 운동장에 내리쬐었다.

나는 빛을 따라 걸으며 이 길에 대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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