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위로_결스콘만들기

'당신은 빵점이야'를 다섯 번 외친 밤이었다

by 정아름

방학은 무료함과의 전쟁.


하루는 무지 바쁜데도, 하루 몇번씩 반복되는 상차림이나 아이의 수학문제집을 채점하거나 하는 일들은 마음을 먹어도 기쁨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방학이라는 것은 초등학생이라는 사람을 인간적으로 어떻게 대할것인지 방법을 찾아가는 시간이다. 때마침 오븐이 고장나고 위즈웰 gl 42로 교체. 하루종일 이것저것 인증된 레시피를 찾아 베이킹을 한다.


자도르님의 ‘결스콘’이다. 아이가 먹더니 '엄마, 이건 팔자.' 계란 한판이 설탕과 버터들이 금새 동이 난다. 새로운 기계는 맛도 모양도 훨씬 더 빵다운 빵을 만들어낸다. 무엇보다 인증된 레시피를 그대로 가감없이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밀가루도 버터도 설탕도 원본대로 가야 똑같은 비주얼과 맛을 낼 수 있다.


나만의 무엇을 만들기 위해 레시피에 개인적인 생각이나 감정을 넣는 순간, 그 비싼 재료와 시간과 수고를 쓰레기통에 쏟아 붓는 것과 같음을 명심해야 한다.


우아, 결스콘의 결이 정말 살아있다. 맛도 바삭하며 촉촉하다. 적당히 달아 딸기잼과 크림치즈와 곁들이니 천상의 맛이다. 전에 비해 비주얼이나 맛이 요 정도면 기계 탓도 할만 하다며 자신감이 충만해졌다.


그렇게 오븐 속 붉은 빛을 바라보는데 이 익숙한 감정은, 몇해 전 독일에서 빵을 구울때 느꼈던 애잔하고 아늑한 위로다. 빵에게서, 오븐의 불빛에게서 받는 위로 덕에 기분은 좀 누그러지고, 아이에게도 좀 더 차분히 대하리라 마음을 먹는다.


하지만 베이킹의 결과는 혹독하다. 유쾌하지 않은 사태가 발생한다. 버터와 설탕들은 몸의 군데군데에 붙어 절대 떨어지지 않고 남편의 옷을 입게 만든다. 반복되는 베이킹은 슬픈 살 덩어리들을 낳고, 후회하지만 남은 크림치즈와 생크림은 기한 내에 사용해야 하므로 멈출 수 없는 순간에 와 버렸다.


그리고 빵을 굽던 어느날이었다. 그날따라 함께 있는데도 ‘혼자’라는 기분이 묘하게 나를 흔들었다. 신기하게도 일을 하지 않고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어디선가 생겨난 예민함은 우울감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집 안에서 빵 말고는 내 이야기에 도통 귀를 기울이질 않는다는 자괴감까지.


헛된 기대감은 늘 상처만을 동반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남편과 아이들이 친구처럼 나에게 다정하길 원했나보다. 어제 아침, 나는 남편에게 "당신은 빵점이야."라고 다섯 번을 외치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실은, 늘 문제의 해결책을 명확하게 제시해주는 남편이 나는 좋았다. 헛된 위로보다 쓸모있는 조언이 삶에 유용하다는 것을 남편과 살면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 날은 남편의 뼈 때리는 명언보다는 “그랬구나.”하는 쓸데없는 소리가 듣고 싶었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한번쯤은 듣고 싶은

‘그랬구나.’라는 말.


그는 말했다.

“몰랐어? 나 원래 그렇게 살가운 사람 아니야.”


나는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내가 알던 그 따뜻한 교회 오빠는 어디로 간 것일까? 분면 여기 있었는데, 그가 없다.


빵점.

빵점.

빵점이라고.


열 시간 남짓 깊은 겨울밤 동안 현실을 인정할 수 없다며 나는 고개를 수백번 흔들었다. 예전의 그는 없다. 너무 멀리 아스라히, 사라져버렸다.


이제 혼자 살아갈 10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만 바라보았던 지난 날의 나를 버리거나, 그에 대한 기대감의 완전한 포기는 쉽지 않겠지만, 나 자신을 가꾸면서 스스로에게 기대는 연습이 필요할 10년.


그날 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리 없다는 생각에 나는 다시 물었다. 그리고 그는 웃으며 같은 말을 했다. “나 원래 그런 사람이었어.”라고.


결국 착각은 나의 몫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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