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하지 못해서(w.원슈타인_존재만으로)

괜찮지 않다고 이제 말할 수 있을까? 말할 수 있어.

by 정아름

아주, 자주, 많이, 아팠다.

남편은 결혼 전에 '건강진단을 정확하게 해 볼껄' 그랬다고. 속고 결혼했다는 얼굴이었다.


이 '두통의 원인'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이것은 과한 부탁이나 내키지않는 질문에 '거절하지 못하는 쓸데없는 배려'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친구들에게 꽤 성격 좋은 이미지이고 싶어서, 나의 거절로 그 사람과의 관계가 어색해질까봐, 또는 사람 좋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지나친 욕심이었다.


마음에도 없는 쿨한 승낙.

뒤돌아 후회하며 앞일에 대한 걱정.

막상 그 일에 닥쳤을 때 안 그런 척하며,

매우 마음에 드는 것처럼 행동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

다시 그런 거절하고 싶은 상황에도

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나.


반복되고 있었다. 정신적 스트레스는 체증으로 두통으로 왔다. 한 두번 열심히 흉내를 낸 후에는 지친 몸과 마음을 쉬기 위해 자연스레 잠수모드. 당연히 그 사람은 내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싫어도 마음에 들지 않아도 티 내지 않고, 늘 웃어주고 들어주기만 했으니까. 늘 괜찮다고만 했으니까.


결혼하고 남편은 그렇게 상황마다 쩔쩔매고 24시간 고심하고 갈팡질팡하다 마지못해 승낙하는 나를 보고는 이해가 안된다는 듯 "그냥, 거절해!"라고 했는데, 나는 "그게 너무 어렵다고." 말했다. 도저히 그 말은 못하겠다고.


어렸을때 나는 부모님께 칭찬만 받고 싶었다. 특히 아빠에게 유독 그랬다. 강압적인 아빠에게 나는 늘 순종적인 딸이려고 애를 쓰고 노력했다. 인형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웃고 있는 나의 코스프레. 아빠가 나 때문에 실망하는 표정을 짓고 말을 할 때 못견디게 불안했다. 인정받지 못하면 다른 아이가 나 대신 딸을 할 것만 같았다.


'거절을 못하는 나'는 집에서 학교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회사에서 시댁에서 계속 진화되었다. 가장 심했던 건 교회일이었다. 은혜로 했어야 하는 일들을 억지로 했다. 그러다보면 기쁨이나 감사가 생길 것이라고 했다. 모든 날이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마음' 없는 '억지'에는 교만과 억울함만 남았다.


그러는 사이,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남편은 도망가는 나를 돌아세웠다. 당당히 '거절'하라고 했다. 그것이 그 사람에 대한 진짜 배려라고 했다. 나는 집에서 거울을 보고 종이에 써서 몇 번을 연습했다.


안 될 것 같아.

다음에 만나자.

이번엔 힘들겠어. 약속이 있어.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아. 괜찮지 않아.

아니, 나는 아니야.


나는 나 자신도, 사람들도 속이고 있었다. 지독하게도 스스로를 괴롭혔던 나 자신에게 미안했다. 몸과 마음을 많이도 아프게했다. 원인을 파악하지도 해결책을 찾을 생각도 없이 앓아 누워 눈물을 뚝뚝 흘리며 타이레놀을 먹고 천장만 바라보았다. 깨어질 것처럼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모지리같은 나를 바라보면서.


'아니.'

'난, 괜찮지 않은데.'


흠흠, 심호흡.

연습했던 단어들을 한 글자씩 뱉는다.

어렵고 힘들었지만, 꺼내본 처음의 언어.

나의 소중한 '거절'은 모두를 존중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었다.


거절할 수 있게 된 나에게 선물하고 싶은 노래.

원슈타인의 '존재만으로'.


https://www.youtube.com/watch?v=KTFWCLeqn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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