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의뢰/목차 컨펌/2장 진행 중
책 쓴다는 걸 너무 쉽게 생각했었나 봐요.
막연했다.
- '책'을 쓰면 좋겠다.
- '작가'라는 이름은 근사하다.
- 둘 다 갖고 싶다.
간절한 바람이나 욕망으로만으로는 부족해.
말해 뭐해.
한 달 전 출간 의뢰를 받고, 바로 책 주제 선정에 들어갔다. 왜 그러지, 싶을 정도로 생각보다 너무 담담했다. 며칠 동안은 감격, 감사에 벅차올랐어도 되는데 출판사의 연락을 받은 직후부터 "뭘 쓰지?" "어떻게 쓰지?"에 대한 압박감이 먼저 왔다. 예전에 기사를 쓸 때 편집장에게 마감날을 받고 자료 조사를 시작하던 그날의 기분이 딱 이랬다.
1. 독일 이야기와 자전거 캠핑
2. 대안학교 국어수업
3. 아파트에 살까? 빌라에 살까?
4. 그냥 에세이
출판사에서는 2번 주제로 쓰자고 연락이 왔다. 나는 가장 생각지 못했던 국어수업 책을 시작하게 되면서 약간의 혼란이 왔다. 책을 낸다 해도 내게 2번은 제일 뒷 순위였다. 출판사 측은 수필과 실용서를 섞어 쓰는 형식으로 쓰면 된다고 했다.
목차를 두 세번 정도 컨펌받았다. 앞으로도 아주 여러번 출판사와 원고는 오고갈 것이다. 남편이 책 낼 때 정말 다시 읽기 싫을 정도로 보고 또 보고의 반복이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기존에 수업했던 현대소설과 영화와 드라마는 인용할 수 없다고 했다. 작가 사후 70년이 되어야 저작권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서 요즘 1952년 7월 이전에 사망한 작가의 작품을 추려내고 있는 중이다.
내 수업을 다른 분들께 소개한다? 도움이 되기 위해? 그래도 될까. 작년 겨울방학 조금씩 정리했던 자료들을 기반으로 수업을 정리했는데 체계 없이 쓰다 보니 다른 주제면 몰라도 이게 책 내용이 될 것이라곤 상상도 못 할 정책.
이곳은 실용서를 일 순위로 내는 곳이고, 사진이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독일이나 빌라는 사진발이 너무 커서 다음에 하는 것이 더 나을 듯싶었다.
-기자생활 2년
-독일 생활 3년 반
-대안학교 10년
-병원 수업 1년
산만하게 많은 것들은 잘 꿰이지가 않는다. 살아온 것만큼이나 했던 일들도 다사다난했던 것은 맞는데 풍부한 경험만큼의 깊이는 있는 것일까.
쓰는 사람이 열정을 다해 쓴다고 쓰지만, 중요한 것은 독자가 읽고 싶어야 하고 즐거워야 하는데 갈수록 모르겠다. 처음에 내가 쓴 글을 읽은 남편이나 지인들은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니까 응원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곱게 곱게 읽어주었을 테고, 이제 완벽한 제삼자, 일절 안면 없는 누군가에게 읽힐 책을 쓰려고 하니 부담백배다.
더구나 이번에 쓴 동화극 초연을 영상으로 보고 나니 자신감 상실. 글 속과 글 밖의 온도차는 확실히 컸다. 무대 앞에서 직접 보면 다를 수도 있지만 내 대본의 상상과 현실의 질감이 다르듯, 분명 책도 그리할 것이다.
읽고 싶은 글, 재미있는 글은 읽으면 독자가 바로 안다. 그리고 '좀' 재미있어서도 안된다. 돈을 지불하고 사는 책이니 그 값을 충분히 해야 한다. '돈 아까운 책'이라는 말이 이렇게 손 떨리는 말인 줄 몰랐다. 여름 내내 쓰다 보면 어느 정도 초안이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 아니 꼭 그랬으면 좋겠는데.
창 밖의 여름은 오늘도 뜨거운데, 글은 냉냉한 것만 같다. 안해도 되는 걱정까지 산더미처럼 안고 그래도 쓰기 위해 책상에 앉았다. 시작은 했으니 치열하게 붙들고 니캉내캉하며 여름을 보낼 작정인데, 지금 필요한 건 딱 한 잔의 커피와 치즈케이크 한 조각. 그리고 우주의 모든 것들이 나를 돕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믿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