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입성, 극작가 데뷔

살다 보니, 알 수 없는 내일에 대한 기대감

by 정아름

브런치에 글을 올려보는 건 어떠냐고 남편이 말했을 때도 뭐, 그러지 하고 흘려서 들었다. 작년 2학기에는 수업이 너무 많아서 글을 쓸 정신적 여유가 없었고, 브런치도 그렇게 잊어버렸다. 겨울 방학 동안 가르치던 고등학교 아이들과 소설을 썼고 공식적인 곳에 올리기로 했는데, 내 블로그는 너무 개인적인 공간이고, 공모전은 당장 없고 이러다가 쓴 글들이 묵혀질까 봐 조바심이 났다. 그래서 미루고 있었던 브런치에 도전했는데(이때까지도 무슨? 도전, 이라는 말까지 붙이나. 싶었음.)


이틀 후 메일이 왔다.


내가 보낸 신청 내용으로는 '좋은 활동을 보여주기가 어려울 것이다.'라는 메일을 받고 나는 이 브런치 작가 사이트를 샅샅이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있는 자존심, 없는 자존심 모두 스크래치가 나는 것 같았다. 그동안 나는 글을 써, 말하고 다닌 것에 대한 민망함이 몰려왔다. 자신을 소개 300자, 쓰고 싶은 책 개요와 목차 300자를 뭐라고 썼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나는 아주 감성 감성하게 쓰고 싶은 대로 열거했던 것 같다. 자아도취한 자기소개는 무조건 떨어진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두 번째 도전, 성심성의껏 소개를 하고 쓰고 싶은 이야기들을 주르륵 간추려서 썼다.


이틀 후, 또 탈락.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쓴 것이 탈락의 원인이었다. 정신이 번뜩인다. 두 번째 탈락은 세 번째 네 번째도 가능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엄청난 위기감이 들었다. 이거 이거, 쉽지 않은 상대를 만났다는 직감이 온다. 그날 아이들에게 짜장면을 시켜주고 나는 노트북을 붙들고 앉아 하루 종일 자기소개와 쓰고 싶은 책 제목과 목차를 추렸다. 너저분하면 안 된다. 명확하게 나를 보여주고 쓰고 싶은 책도 정확히 제시되어야 한다. 떨어진 이유를 더 잘 찾아봤더니, 브런치에 하도 떨어져서' 브런치 성공 팁' 책이 나왔을 정도였다. 열 번은 도전해 보기로 하고, 다시 썼던 글을 수정하고 자기소개도 능력, 경력 위주로 작성해 보았다.


쓰고 싶은 책도 일단은 '독일' 하나로 정하고, 목차는 블로그 글 중에서 제일 나은 것들로 흥미를 가질만한 제목으로 다시 수정했다. 사진량은 줄이고 사진 배치는 글 위나 아래로 하여 읽는 이가 글에만 집중해서 읽을 수 있도록 배치했다.


그리고, 세 번째 합격. 너무 좋아서 방방 뛰었는데, 남편이 박사학위 받은 줄 알겠다며 웃는다. 이제 멋 내는 미사여구 없이 담백하고 재미있게 글을 써 보고 싶어졌다. 연초부터 나답지 않게 열심이다. 그런데 마음에 든다. 그런, 나.


페이스북을 잘하지도 않는데 너무 기쁜 마음에 '브런치에 합격'했다고 자랑하는 몇 자를 남기고, 갑자기 몰려오는 피곤함에 잠시 누웠다. 몇 분이나 되었을까? 이거 이거, 쉴 수가 없다. 아이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는데 반에서 확진자가 나왔으니 검사를 해보라고 한다. 이제껏 우리 집 아이들은 세네 번 격리를 해 봐서 이 정도쯤은 별 일 아니었다. 아, 또? 이 정도. 예상대로 자가 키트는 음성이 나왔고, 그날 밤 아이는 38-39도를 왔다 갔다 했다. 그리하여 아이를 시작으로 우리 집은 모두 확진자가 되었다.


크게 아픈 곳 없이 격리의 일주일을 보내고 있던 삼일째 날, 독일에서 같이 교회생활을 했던 K 씨에게 전화가 왔다. 귀국하고 7년 동안, 전화통화는 처음이었고, 우리 가정과 가깝긴 했으나 나와 개인적인 통화를 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는 아니어서 의외의 '용건'이 있음을 예감했다.


그런데 무슨? 나에게 '용건'이 있으신 건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는 그럭저럭 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1-2분 정도를 소요했다. 그리고 본론으로.


"글 쓰신다면서요. 페이스북에서 봤습니다."

"아, 네. 그냥 쓰고 싶은 것들 쓰고 있어요."

"다름이 아니라...."


이 대목에서 엄청 긴장됐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예상이 되지 않는 다음 장면. 그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봤는데 왜 다음 페이지가 생각이 나지 않는단 말인가. 그는 대체 무슨 말을 나에게 하려고 전화를 한 걸까?


"제가 실은 오페라와 연극을 접목한 공연들을 기획하고 있는데, 같이 대본 작업해보실래요?"


나는 네?,라고 만 하고 못난 말만 내뱉었다. 시나리오나 희곡을 가르쳐만 봤지, 대본은 써 본 일이 없다는 둥, 잘할 수 있을지 정말 모르겠다는 둥. 지금 생각해보니 좋은 기회를 날려버릴 모지리같은 소리만 늘어났다. K 씨는 내 글을 좀 읽어봤고,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해 전화를 했다고.


나는 이제 그를 K 씨가 아닌 '대표님'으로 부르며, 최근 쓴 소설을 보냈는데 좋다고 하시면서 다음에 소설을 대본으로 다시 작업해보자고 하셨다. 그리고 며칠 후, 확진자 생활을 하며 첫 대본을 쓰게 됐다. K 대표님과 안면이 있는 A대표님의 공연에 작가가 빠지면서 급하게 대본을 쓸 사람을 찾고 있는 중에 내가 갑자기 투입된 것.


데뷔작이 시작된다. A대표님께 사업계획서를 받았다. 양성평등을 주제로 동물들이 모험을 떠나며 서로를 응원하고 꿈을 이루는 40분 정도의 동화음악극을 3월 중으로 써야 한다. 아이들을 재우다 갑자기 시놉시스가 떠올랐고, 2주 동안 나는 각각의 동물로 빙의되어 대본을 썼다. 소설의 서술이나 묘사를 대사에 녹여낸다는 게 쉽지 않았고, 무엇보다 객석의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즐겁게 공연을 보고 또 공연에 직접 참여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극을 완성해나갔다.


1차 기획회의, 대표님과 나와 배우 팀장님이 줌으로 만났다. 내 대본에 대한 솔직한 평가가 이루어질 것이다. 아니다, 싶은 부분이 세부적인 것이면 큰 상관이 없지만, 전체적으로 아웃이면 대본을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른다. 처음이니까 그럴 수도 있고 괜찮아, 나는 마음을 다잡고 회의에 임했다.


"다들 대본 읽어보셨어요? 어땠어요?"


대학 합격자 발표가 이리도 떨렸을까. 그다음 말이 나오기 전 1-2초 동안 나는 침을 몇 번 삼켰는지 모른다. '꼴딱' 소리가 혹시 날까 봐 들숨까지 쉬었다.


"작가님, 고생하셨어요. 그리고 대본 재밌던데요.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아요.”

"재밌더라고요. 세부적인 건 나중에 배우들이 연기하면서 고치면 되고, 대본은 그대로 가면 될 것 같습니다."

"일단 7월, 9월에 초등학교 두 곳에서 공연을 하고요. 그 이후에는 공연장에서 할 수 있도록 해 보겠습니다."


대표님과 배우 팀장께서 '재밌다'라고 말씀해주셨다. 대본은 한 번에 오케이를 받고 나는 '작가'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생경스럽지 않았다.


앞으로 나는 이 손으로 어떤 이야기들을 쓰게 될까.

나 자신과, 나의 내일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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