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교사의 자격이란

나는 오늘도 '그렇게' 살고 싶어서

by 정아름

한국어 교사에게는 어떤 자격이 필요할까?

이제 와 돌이켜보니, 그건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었을까?


4년 전, 나는 집 주변 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으로 한국어 교사를 우연하게 시작하게 되었다. 10여 년 전이었는데 국어를 전공한 나는 교원자격증이 있었고 아이들을 계속 가르치고 있던 경력이 있어 쉽게 한국어 강사로 일할 수 있었다.


맨 처음에는 하얼빈과 연변에서 온 중학교 아이들을 그다음 해에는 대련 근처에서 살다 온 초등학교 고학년 여자아이를 가르쳤는데 너무 착하고 열심히 해 주어서 한국어 교실 가는 날이 즐거웠다. 아이들과 같이 외부에 나가 밥도 먹고, 간식도 사 주고 쇼핑도 할 만큼 우리는 가까워졌었다.


그러다가 초1 남자아이 세 명을 맡게 되었다. 필리핀, 중국, 베트남에서 온 개구쟁이 아이들은 한글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틈만 나면 뛰어놀고 싶은 마음에 교실을 휘젓고 다녔다.


조금이라도 혼나는 말투나 표정을 지으면 아이들은 도리어 나에게 화를 냈다.(내 '화'인데 도둑맞았다. 먼저 '화'내는 사람이 임자) 아이들과 수업 시작하는 날부터 한국어 수업이 끝나는 날까지 나는 두통을 달고 살았다. 교실 문을 열기 직전 한숨과 함께 마음은 무거웠고,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에도 나의 '사랑'은 점점 사그라들고 있었다. 나는 그 이후로 교육청 사이트는 클릭하지도 않고, 대안학교 일과 집안일에 진심으로 열중했다.


그렇게 한국어 강사를 한참을 쉬고 있었는데 ‘외국인 성인’을 대상으로 가르치는 일은 어떠냐는 남편의 말에 나는 본격적으로 자격증을 얻기 위해 공부해보기로 결정했다, 한국어 교육능력 검정시험을 통과해 ‘한국어 교사 3급’을 따는 것을 목표로 삼았는데, 이것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과정이었다.


<한국어 교사 3급 자격증 취득 방법>

1. 비용은 70만 원 정도(수강료 50, 교재 5, 실습비 9, 접수비 5)가 들었고,

2. 총 1년의 시간이 걸렸다. 결제한 사이트에서 4개월 동안 동영상 120시간을 시청했다.(수업내용을 노트 2권으로 요약정리했고, 5년 치 기출문제의 오답노트를 만들었다.)

3. 수업지도안을 짜서 연결된 교수님께 메일로 컨펌을 받고,

4. 통과된 수업지도안으로 20분 분량의 모의수업 동영상을 찍어 보내 또 피드백을 받았다.(그렇게 겨울이, 봄과 여름이 지나가고 이제 대망의 필기시험과 면접이 남아있었다.)

5. 10월 필기시험에서 300점 만점에 180점 이상이어야 통과하는데 합격률은 20-25%.

6. 11월 면접시험에서는 ‘인성이나 자질’뿐만 아니라 필기시험에서 다루었던 까탈스러운 ‘문법’ 문제도 반드시 질문함. (면접시험은 60점 이상, 합격률 80% 정도)

* 이렇게 오랜 기간이 걸리고, 과정도 힘들다 보니 대학원에 진학해 2급 자격증을 따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 그러나 2급이든 3급이든 그 이후 생활은 녹록지 않음.

그러다가 더 기가 막힌 사실을 알게 됐다. 시험공부를 하면서 한국어교원 카페에 가입했는데 경력자 분들의 이야기는 한결같았다. 한국어 강사들의 실상은 7-8번 면접을 봐서 겨우 일자리를 얻고, 경력을 쌓기 위한 자원봉사 일조차도 구하기 어려우며 강사가 된다고 해도 단기 계약직에 월 100만 원 벌기가 쉽지 않고, 굳이 이 일을 하고 싶다면 잘 버는 남편의 아내 분이 취미로 하시라는 뼈 때리는 조언 투성이었다.


한국어 교사를 시작하시려고요?
당장 그만두시길 조언합니다.


라고 쓰여있는 유경험자들의 말에 나는 필기시험을 앞두고 맥이 빠졌다. 포기하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앞날이 캄캄했다.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 자격증을 얻는데 물론 돈과 시간도 노력도 들 수 있다.


하지만 이 자격증은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인가.

나는 1년 동안 무엇을 한 것인가.


만감이 교차하면서 한국어 교사의 자격을 얻기 위해 달려온 12개월 시간이 지나갔다. 다시 공부하면서 즐거웠던 기억, 남편이 싸 준 점심을 먹고 입덧을 참아가며 오후까지 시험을 보던 날, 세 시간을 기다려 본 면접에서 문법 문제를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가르치는 이 일이 저는 즐겁습니다!’며 있는 힘을 다해 최선의 대답을 하고 나오는 데 다리가 풀려 넘어질 뻔 한 그날까지.


그리고 나는 아빠에게 이 자격증을 공부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빠, 나는 있잖아요. ‘돈을 버는 일’이면서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랬더니 아빠는 "나도 그렇다. 너도 그랬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셨다.


어른이 되어갈수록 ‘돈’의 짙은 권력에 어느덧 ‘사람’은 보이지 않고, 나는 '돈'을 사랑하지 않으려다 우습게도 가난의 늪에 빠져버렸다. 내 숭고한 뜻과 가치만 따라가다가 돈을 버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더니 신기하게도 10년 동안 나아지지 않는 삶에 깜짝 놀랄 정도다. 그래서 이제는 가르치며 글을 쓰며 살아갈 만큼 보다 조금 더, 만큼의 돈을 벌면서 나와 가족과 주변을 가꾸는 여유도 필요하다는 결론.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 위에 스펙을 보여 줄 경력증명서 한 장을 얹었고, 어쩌면 ‘꿈 따위’ 이루어가는 이 길 위에 서서 나는 합격증 종이 한 장을 쥐고 있다.


그리고 아빠에게 했던 말처럼 ‘그렇게’ 살고 싶어서 오늘도 아이들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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