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안학교 교사입니다.
정쌤, 아직도 대안학교에 있어?
- 정쌤, 아직도 대안학교에 있어?
- 응.
- 진짜, 대단하다.
'아직도'에는 아주 센 악센트가 느껴진다. 이 '대단함'에는 존경스러움이나 끈질김보다는 안타까움과 약간의 반어적인 조소가 있다.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니?'라며 꿈에서 깬 사람들은 꿈속에 머물고 있는 나에게 팩트를 던진다. 나와 가까웠던 M이나 J는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한다. 나보다 한 두 살 많았던 천사 같은 이 언니들은 진심으로 나를 걱정한다. 그리고 이곳을 확실하게 겪어 본 그녀들은 그곳은 답이 없다고, 그만하면 할 만큼 했다고, 이제 그만 털고 나와도 된다고 한다.
그리고 '응'이라고 대답하며 나는 아직도 그곳에 있다.
정확히 말하면 다시 이곳에 또 와 있다. 가족과 지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버린 과거'를 다시 선택했다. 남편은 한 번 헤어진 연인이 또 헤어진다는 찰떡같은 비유를 들며 다시 잘 생각해보라고 했다. '나라면 안가.'라는 온전한 팩폭까지 날리면서. 아무튼 나는 이 선택의 결말이 어떻게 되든, 답이 있든 없든,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그래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아서.
벌써 대안학교 9년째다. 이 정도 되면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데 아직도 우왕좌왕이다. 영어를 중심으로 하는 대규모 국제 대안학교를 제외하고 대부분 대안학교의 사정은 다들 쉽지 않을 텐데, 다들 그렇게 묵묵히 버티고 서 있다. 경제적으로나 시스템적으로나 앞으로 좀 나아가야 이 상황이 좀 바뀔 것 같은데, 작은 대안학교들은 지금 현상유지도 힘들어서, 그저 서 있기만도 벅차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나는 이곳에서 왜 계속 일을 하고 있을까?
직업적 사명감? 동료애? 거룩한 그분의 뜻?
모든 것이 믹스되어 쌓여간 자리에 가장 큰 이유에는 변해가는 '아이들'이 있다. 아주, 서서히, 그리고 미세하게. 그래서 나태주 시인의 시구처럼 자세히 오래 들여다보아야 한다.
작년 한 학기 동안 대안학교를 잠시 떠났다. 대안학교 교사의 월급은 '두 자리'라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10년 동안 한 번도 강사료는 인상되지 않았고, 학교의 경제적 상황은 갈수록 더 나빠졌다. 창의적이고 다양하고 재미있는 수업들이 대안학교에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학생이 늘지 않았으니 실패였다. 아무리 교육철학이 좋고, 아이들이 만족하고 교사가 열심히 뛰어도 학교가 운영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학생수가 몇 배 늘지 않는 이상 대안학교의 유지는 힘들었다. 앞서 간 그 언니들의 말처럼 여러 면에서 대안학교에 '대안'이 없었다. 학교가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는 시점을 계기로 나는 '그만 일하고 싶다'라고 알렸다. 그리고 나는 교육청 사이트에서 가장 시급이 센 강의를 찾아 이력서를 보냈다.
그렇게 일하게 된 세 곳의 학교는 기존 강사료의 2배였다. 나는 통장에 돈이 착착 모일 줄 알았으나, 신기하게도 돈이란 것이 모래알처럼 스스락 소리 소문 없이 빠져나갔고, 남은 것이라곤 바쁜 엄마로 인해 기름진 외식에 맞춰진 가족들의 입맛과 수중의 현금 일부였다. 그리고 강사료의 10배(?)에 가까운 학교 업무들은 기겁할 수준이었다. 학기 초 계획서 작성과 학기 중 수업 준비와 서류 작업, 학년 별 시험 출제와 평가, 학기 말 생기부의 교과목 세부 능력 및 특기사항 작성으로 나는 매일 밤 일했다.
학기가 끝나던 어느 날, 나는 언제나처럼 점심을 혼자 먹으며 생각했다.
나는 여기에 왜 있을까? 대안학교보다 더 돈을 벌어보고 싶어서? 아니면 경력을 쌓아서 일반학교 기간제로 아예 들어가고 싶어서? 그것도 아니면 일반학교를 한 번 경험해보고 싶어서?
모든 물음의 답은 'NO'였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을 두고 대안학교에서 '도망쳤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이들을 '버려두고' 왔다는 끔찍한 사실을 깨닫게 됐다. '대안학교에선 이제 일하고 싶지 않다'는 솔직한 나의 말이 남아있는 선생님들에게는 상처를 주었을 것이라는 것도.
2021년 2학기 동안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300명 정도의 아이들을 만나 수업했다. 모든 곳의 아이들은 귀하고 예뻤다. 그리고 어딘가의 아이들은 무력했다. 오지 않은 내일에 대한 두려움으로 갈 길 몰라 서성였다. 사람을 그리워하는데 믿지 못했다. 의지할 곳은 필요해 보였다. 어른인 나는 미안할 정도로 할 줄 아는 게 없었고, 틈틈이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어깨를 토닥토닥했다. 잘해오고 있다고 너무 애쓰지 말라고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아이들은 눈을 맞추고 자신의 SNS을 보여주고 헤어질 땐 두 손을 흔들었다. 따뜻했다. 초록과 노랑이 가득한 공기처럼. 결정의 정확한 이유에는 스스로도 물음표를 남기고 나는 가던 길을 뒤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