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하우스 근처 작은 카페

오늘도 커피, 오래간만에 반짝이는 독일의 오후

by 정아름
나가자.


독일의 오후, 정말 오랜만에 반짝이는 해다. 며칠 두통이 계속되었다. 이 모든 것은 독일의 흐릿한 날씨 때문이라며 나는 초콜릿을 베어 물고 우물거렸다. 남편은 그런 나를 밖으로 억지로 끌고 나간다. 남편은 내가 이렇게 자주 아픈 줄 모르고 결혼했는데 속았다며 몹시 억울한 얼굴을 하고, 나는 조금 웃는다. 솔직하고 재밌는 남편은, 나와는 결이 다른 사람. 눈이 부신 2시, 쾨쾨하게 젖어 곰팡내 나는 영혼 위로 햇볕이 훑고 지나간다.


바우하우스 근처에 작은 카페가 있다. 바우하우스 사무실이 있고, 건너편에는 멘자(학생 식당)가 있는데, 그 길로 따라 내려가다 보면 자그마한 카페가 나온다. 이 가게는 저녁 여섯 시면 문을 닫아 몇 번을 입장 실패했던 곳이었다. 집으로 오가는 길에 있어 늘 이 주변에 사람이 많아 맛도 분위기도 궁금했던 카페.

사진에 카페 이름을 담아오지 않은 걸까. 아무리 살펴봐도 카페 주위에 이름은 없고, 달랑 숫자 3만 쓰여 있다.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고 있으니까 카페 맞음.


바우하우스 근처 3번지 카페


바우하우스 앞이라 학생들이 많이 오는 것 같았는데, 막상 커피를 마시면서 보니 오고 가는 사람들도 꽤 있고, 나이 든 단골손님들도 많아서 아저씨와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눈다. 독일스러운 오래된 문, 깔끔한 폰트의 메뉴판, 닳아진 의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깔끔하면서도 깨끗한 내부 디자인.

갈색 문을 열자, 정말 작은 사이즈의 카페. 그래서인지 더 정감이 간다. 카페 아저씨는 음악에 몸을 맡기며 찻잔을 닦고 있다. 생김새와 분위기로 왠지 이탈리아 아저씨일 거라고 남편과 추측해보는데, 손님들이 여럿 오고 아저씨는 역시나 독일어로 하다가 이태리어로 대화를 한다.


두통은 어느새 가벼워졌다. 햇빛과 바람과 바깥공기가 지나간 몸과 마음은 둥실 떠 오르고 나는 남편에게 남편이 잘라 준 짧은 머리가 마음에 안 든다는 둥 쓸데없는 소리를 재잘거린다.(독일은 커트가 5만 원 이상으로 미용실이 너무 비싸서 유학생들은 종종 서로의 머리를 잘라준다. 홈파마도 가능.) 카페에서 나는 흰 수첩을 꺼내 물음표과 느낌표를 그린다. 마치 글씨를 잊어버린 사럼처럼 스륵 박박 줄을 긋고 따옴표를 그리다 다음 장으로 넘긴다.


그리고, 카페 아저씨의 인사에 몽상은 깬다.



Hallo.


가격이 생각보다 더욱 저렴해서 놀란다. 1.2유로 카푸치노를 시킨다. 맛이 어떨지 너무 궁금하여 커피를 내리는 아저씨를 연신 쳐다보는 나. 쿠키도 맛있어 보이지만 집에서도 엇비슷하게 만들 수 있다며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며 나올 커피에 집중하기로 한다.


독일 과자와 케이크는 입 안이 얼얼할 정도로 달다. 물론 주식인 건강한 곡물빵은 아주 담백하고 고소하고 맛있는데, 간식류들은 한 입 먹고는 포기할 정도로 달다. 겉보기에 독일 사람들은 딱딱하고 차가워 보이는데 알고 나면 속정이 깊은 것처럼 먹는 음식도 신기하게도 그 사람들과 참 닮았다.


드디어, 커피가 나왔다. 우선 우유 거품에서 백점이다. 커피 맛은 오후 데이트를 즐기기에 적당한 정도.

나는 자전거 여행을 앞둔 터라 집에서 지도를 챙겨 가지고 나왔다. 지도를 볼 줄도 모르면서 이리저리 살피며 이 길로 갈까 저길로 갈까 계획을 짠다. 남편이 사진을 찍더니, 여행 전문가 같단다. 나는 티나게 으쓱해져 볼펜을 들고, 눈을 크게 뜨고 유심히 지도를 살피는 척.

오늘도 커피, 오래간만에 반짝이는 독일의 오

반짝이는 오후 중에 나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걸어 들어가서 인사를 하고 커피 한 모금했더니 반짝임 속에 섞여 있다. 살면서 고민이 되는 지점마다 항상 답은 싱겁고 쉬운데, 나는 있어 보이려고 매력적인 오답을 체크한다. 그렇게 살기 좋다는 독일에 와서도 빙빙, 그 주위만 돌고 있는 어리석음을 깨고 싶어서 나는 지도 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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