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는 바다와 하늘, 그리고 섬이 있다.(그리고 정말 아무것도 없다. 그러고보니 독일과 좀 비슷한 듯) 나는 동네 오빠의 자전거를 빌려 섬의 좁은 길을 바다를 따라 달리곤 했다. 동네 끝에서부터 끝까지 5분도 걸리지 않는 아주 작은 섬은, 오르막도 내리막도 없고 장애물도 없어 나는 세상 모든 길들이 그런 줄로 알았다.
어느 날은 커브에서 쓰러져 무릎에서 피가 철철 나고, 또 다른 날은 바다로 날기도 했다. 다행히 썰물이었고, 갯벌로 철퍼덕 자전거와 떨어지며 잠시 공중을 달렸던 기억.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등굣길에 중학생인 남동생의 자전거를 얻어탔다. 논밭을 한참 지나 오르막이 나오면 "누나, 내려!"라고 동생이 소리 치고, 나는 자전거를 따라 뛰었다.
결혼 후 남편이 자전거 여행을 했다고, 그래서 많이 바뀌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응, 그랬구나, 하고 대충 반응했다. 그가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여행을, 특히 자전거 여행을 권하고 나는 뭐 그리 대단할까. 이라며 아무것도 모르는 소리를 내뱉었다.
그리고 시작된 자전거 하이킹. 독일에서 우린 무전여행 중.
야호, 내리막이야.
처음에는 내리막이 나오면 마냥 좋았다. 아무 말 없는 남편. 그저 자전거만 탄다. 내리막 다음의 상황을 알고 있는 그는 신나있는 나를 그냥 둔다. 첫날과 둘째 날 30분 이상, 내리막이 끝나고 한 시간 이상의 오르막을 가면서 남편과 아이에게 했던 두 마디는 "나한테 말 걸지 마."와 "이제 더는 못 가."
그러고는 주저앉고 가방을 내려놓으며 후덜거리는 다리는 두 손으로 안았다.살갗은 벗겨지고, 피부는 일어났다. 관리도 해도 부족한데 이렇게 엉망이 된 몰골이라니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 돌아가기에는 길이 너무 멀리 와 버렸고, 더 중요한 것은 집으로 가는 길을 알지 못한다. 남편의 계획이 성공한 것이다.
나는 그동안 '왜' 몰랐을까?
속담만으로 알고 흘려 들었던 '오르막 다음 내리막'이라는 말. 그것을 깨닫자, 내리막을 달리면서 땀방울들이 시원하게 바람에 씻겨 나가는 것을 느끼면서도, 길가의 들꽃들이 보리가 밀밭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것을 보면서도, 표정은 이내 담담해졌다. 또 내리막이 길어질수록 불안했다. 동시에 눈앞에 두세 개의 오르막이 오버랩되었다. 두려울 정도의 긴 내리막에서는 손에 땀을 쥘 정도였다.
오르막을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조금만 더 가면 내리막이 있다는 희망. 이를 악 물면서, 한 걸음 더 가보자 라는 스스로의 마음가짐이 지친 다리를 끌고 갔다. 그러다 참지 못하고, 털썩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고 인내에는 고통이 수반되는 것을 이제야 진심으로 안다.
그리고 매일 밤 기도했다.
주여, 내일은 두세 개의 넘을 만한 오르막을 허락하세요.
간절한 마음으로 백 번 정도의 아멘.
오르막이 셋째 날부터 몸에 조금씩 익으면서, 남편이 알려 준 대로 내리막을 달리다 끝나는 부분에서 기어를 8단으로 놓고 페달을 두 번 정도 돌린 후, 박차를 가하듯 달린다. 그러다 오르막에서 기어를 한 단씩 내리면서 갈 수 있는 데까지 가 보는 것.다리의 마지막 근육을 쓰면서 페달을 돌리고 땀이 떨어져 자전거를 씻는다. 내리막에서 느껴지는 환희의 순간, 보라색 들꽃들이 바람에 날린다.
오르막과 내리막의 착시현상에서 나는 독일의 길을 자전거로 달리고 있다. 도저히 못할 것 같았던 그 경계에서 한 걸음 내딛는 것을 서른이 넘어 처음 해 보았다. 종아리에는 근육이 붙고 정신머리에는 '깡'이라는게 미세하게 생긴다. 용기도 없이 포기하거나, 승부욕이 부족한 것 쯤으로 포장해 온 과거가 흔들렸다.
사실, 나는 약하지 않았던 것이다. '약한 척'을 하다가 정말 그런 줄로 착각하고 살아 온 시간들이 데자뷔처럼 자전거 풍경 곁으로 스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