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면서, 정작 위로를 받았던 것은 물이나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꽃'이었다.햇빛이 뜨거워서, 목이 말라서, 허기가 져서 더 이상 다리가 아파서 가지 못해 멈추었을 때, 나를 바라보고 있는, 너는 꽃.
숨을 거칠게 들이쉬고 내쉬는 나를 응시하는 여름 꽃을 대할 때마다, 나는 얼굴의 땀을 닦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담장 위의 꽃 집 앞의 꽃 길 가의 꽃
더운 날씨 탓인지 거리에도 집 앞에도 사람들이 거의 없다. 정원을 사랑하는 독일 사람들도 더위 앞에서는 자취를 감추나 보다. 독일 더위는 습도가 적어서, 집에서 문을 닫고 블라인드를 내리고 있으면 덜 덥다는 팁. 인내심 없는 나로서는 이 뜨거움 아래서 자전거를 또 타야 한다는 사실이, 출발도 하기 전에 용기를 잃게 한다.생각해보니 나는 늘 시도하기 전에 '안 될 것'을 먼저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단단한 불확실함과 불안은 발목을 잡았다. 안될꺼라며 먼저 판단해버렸고, 어쩌면 '될 일'들도 내 인생에서 영영 사라져 버렸다.
자전거를 타다 보니 생각은 많아지고 '내 탓'은 늘어간다. 그러다 꽃들을 만났다.
자전거를 세워 두고, 남의 집 앞에서이렇게 꽃들이 가득한 집에서 살면 좋겠다, 고 생각에 빠진다.아침에 창문을 열면, 꽃들이 보이고 땅이 보이면 좋겠다. 마당이 있어 아이가 대문을 열고 나와서 바로 놀 수 있으면 좋겠다. 여름이면 큰 대야에 물을 받아 거기서 놀고, 빨래도 마른 햇볕에 말리면 좋겠다.남편이 정원을 가꾸고, 그런 '땅 바로 위의 집'에 살고 싶다. 허공을 휘젓는 것 같은, 푸름으로부터 먼 높은 집 말고 '발이 흙에 닿는 공간'에서 살고 싶다.
바이마르, 메르케탈 str. 48번지 앞(너무 예쁜 우리 집 앞)
자전거를 타고 마구 달리다가도 너무 예쁜 정원이 나오면 한 템포 쉰다.자연스레 페달은 천천히 돌아가고, 날아가는 푸른 나비를 본다. 독일 사람들은 정원 가꾸기에 애정이 가득하다. 주말마다 정원에 나와 있는 독일 사람들을 볼 수 있고, 한여름 땡볕에도 챙이 큰 모자를 쓰고 땀을 흘리며 잡초를 뽑고 계절에 맞는 꽃을 심는다. 앞뜰이 있는가 하면 뒤뜰까지 있는 집도 있으니 독일인의 꽃을 향한 사랑은 '찐'이다.
(지나가다가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 독일은 꽃집도 많지만, 마트에서도 계절 꽃들을 항상 판다)
독일의 아파트에는 보통 서민들이 산다. 독일인들은 정원이 있는 전원주택에 살고 싶어 하고, 도시 대부분의 집들은 꽃들이 있는 3층 이하의 집들이다. 도심에는 한국처럼 브랜드 네임이 대문짝만 하게 박힌 고층 아파트가 없다. 그래서 도시 전체가 훤히 보이고 빛도 잘 들어오며 자연의 풍경을 해치지 않는다.(집을 개조하거나 색을 칠하는 데도 도시의 경관을 흐릴 수 있으므로 시청의 허락이 받아야 한다고 들었다.) 그리하여 한국 사람들이 동경하는 파스텔톤의 독일의 주택들은 풍경과 사람이 보이는 도시를 만든다.
라이프치히 외곽의 아파트(좌,우)와 바이마르 외곽에 위치한 기숙사(가운데)
바이마르에도 서쪽 외곽에 아파트 단지가 있어서 "오, 독일에도 아파트가 있구나!" 했는데 독일의 저소득층이나 외국인, 유학생들이 대부분 살고 있었다. 도심의 외곽에 위치한 다소 높아 보이는 아파트들은 주택보다 저렴했고, 분위기는 기분 탓인지 꽃들이 없어서인지 약간 삭막했다. 그래서 정원에서 꽃과 식물을 가꾸고 싶어 하는 독일인들은 층층이 싸인 똑같은 모양의 아파트를 선호하지 않는다. 고로 그들에게 정원이 없어 꽃을 가꿀 수 없는 아파트라는 구조 자체가 매력이 없는 것.(아파트에 사는 혹은 정원이 없는 주택에 사는 독일인들은 도시 주변의 텃밭처럼 꽃밭을 임대해 가꾸기도 한다. 이리도 꽃을 사랑할 수 가 있을까.)
한국에 와서 아파트 값을 보다 보면 인간의 값이 상대적으로 모자라는 것만 같다. 콘크리트 덩어리보다 사람의 가치가 덜한 이곳에서 어른으로 살기가 녹록지가 않다. 다른 것보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관심 없는 주제들로 오래 대화하는 것이 조금 버겁다. 그럴 때마다 독일의 집이, 아름다웠던 정원들이 그립다.
무덤가에 꽃들이 이렇게도 예쁘게 피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또 멈춘다. 오늘은 꽃구경하다가 하루가 다 가겠다. 나비를 쫓아 아이가 죽은 이들의 자리를 살랑살랑 돌아다닌다.무덤가에 잘 정리되어 있는 꽃들을 보고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오빠, 나를 묻는 자리, 이렇게 만들어 줄 수 있어? 봉긋한 무덤은 슬프게 생겨서 싫어. 이렇게 꽃으로 꾸며줘. 비석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