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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름 Feb 22. 2022

09 호수로 가는 길

뮐베르그에서 고스피터로다(Gospiteroda)로

자전거를 탈 시간이 가까워져 오는 것인가.

한 시쯤 카페가 열자, 화장실도 사용하고 커피도 마신다. 생각보다 손님이 많아 가게는 분주해지고 자리가 없어 일어나야 할 타이밍. 카페를 뒤로 하고 떠나는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친정을 떠나는 마냥 아쉽기도 하고, 새로운 길에 대한 궁금증도 생긴다. 독일은 법적으로 아무 곳이나 야영을 할 수 없고, 그래서 텐트도 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다녔던 시골 마을의 독일 사람들은 꼬맹이와 함께 자전거 여행을 하는 외국인 가족을 그저 너그러이 이해해 주었던 것. (독일에서 아무 곳이나 텐트를 치고 캠핑을 하다가 주변에서 신고를 해서 경찰서에 갔다가는 한국분들 이야기를 나중에서야 여럿 들었다.)

어스름한 시간에 한적한 시골 구석에 텐트를 치고 마중물 물로 씻고, 밥도 해 먹을 수 있었고 이른 아침 만나는 사람들에게 "할로"하며 반갑게 인사까지 했다. 아무것도 몰라서 아무렇지 않게 캠핑을 했던 우리.



자전거는 조금은 수월해졌다. 오르막도 내리막도 예상치 않은 순간에도 나는 예전보다 덜 기우뚱한다. 뮐베르그에서 발터하우젠으로 가는 길은 20km가 넘는 길. 싸 가지고 온 과일과 쌀을 좀 먹어서 가방은 더 가벼워졌다. 그것만으로도 기분은 살랑 좋아지고 이제 달려볼까, 하며 출발할 때는 늘 의욕 충만하다.


독일의 날씨는 며칠째 쨍쨍하다. 중간에 비가 오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좋은 날씨다. 그리고 지나는 독일 시골마을들은 같은 듯 다른 듯 숨은 그림 찾기처럼 돌아다니는 재미가 있다.(독일은 마을이나 시내나 분위기가 다 비슷한 편이라 스펙터클한 여행을 원한다면 재미가 없을 수도 있다.)

운 좋게 마을의 빵집을 발견하면 담백한 독일빵들을 사기도 한다. 씹을수록 고소하고 매일 먹어도 맛있는 브뢰첸은 여행 간식으로 감사한 만나다. 가격도 저렴하고 크기도 커서, 가난한 이들에게 고마운 양식인 독일의 빵.



엄마, 너무너무 졸려.


그리고 오르막은 시작되고 낮잠을 설친 아기는 졸려서 자전거에서 이리저리 휘청이더니, 이내 허리가 꺾일 정도로 뉘어져 잔다. 안전벨트가 겨우 아이를 잡고 있고, 팔다리는 축 늘어졌다. 쉬어 갈 곳은 보이지 않고, 집 채 만한 트럭들이 곁을 지날 때마다 자전거는 꺼질 듯이 덜컹거린다. 그리고 왼편 작은 언덕배기에서 사람들이 피크닉 가방을 들고 내려온다. 언덕 위에 뭐가 있냐고 물으니 호수가 있단다.


"호수?"

"한 번 가 볼래?"

"그래."


호수? 기대는 없다. 어떤 곳인지 살펴만 보려고 언덕으로 올라가 본다. 지쳐서 자고 있는 아기를 보니 마음이 축축해진다.


    

그리고 펼쳐진 풍경은 나를 먹먹하게 한다. 밀려오는 호수의 푸른 바람. 한가롭게 호수에서 수영을 하거나, 선텐을 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 호수 둘레를 걸어보는데 독일 사람들은 어디서나처럼 기분 좋은 미소로 인사를 한다. 나무 아래 그늘이 있고,  몸을 축일 호수가 있고, 해 지는 풍경이 있다.

호수로 가는 길이었는데 알지 못했다.


호수에 오르기 오 분 전, 오르막의 순간. 오르막의 뺨을 맞더라도 조금 더 와 보길 잘했다. 때로는 아니 많은 순간들은, 설령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골고다의 길처럼 그렇게 묵묵히 가다 보면 예상치 않은 그윽한 호수를 만나게 되는 걸까.


물속에 나를 놓는다. 휘휘 팔을 젓고,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분홍색 튜브를 들고 같이 가자고 잠이 깬 아이가 부르지만,


잠깐만. 엄마도 잠시,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단다.

오 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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