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에서 다시 짐을 꾸려 발터하우젠으로 출발한다. 언덕을 하나 넘으니, 평지가 나오고 체리나무들이 즐비하다. 배가 부를때까지 체리를 먹고, 도착한 발터하우젠은 작고 조용한 도시.그리고 도시 중심의 마켓 플라츠에 물이 흐른다.
아이는 훌러덩 옷을 다 벗고 물놀이를 시작한다. 물이 아기 발목 정도 오는 터라, 수영장보다 좋다며 두 세시간을 논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 쉴 수 있는 오아시스를 만났다. 나무 아래 짐을 풀고, 그늘에 쉬면서 혼자 노는 아기를 본다. 아이는 어느새 자라 손을 잡아 주지 않아도 혼자서도 아주 잘 뛰어다닌다. 팍팍 숟가락질도 잘 한다. 사람들을 만나면 현지인처럼 독일어로 인사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엄마에게 물방울을 튕길 줄도 안다.
엄마, 엄마, 시원하지요?
밖에서 며칠째 자고 있다. 발터하우젠에서는 하루 정도는 숙소에서 묵어 볼까 하는데, 가격이 너무 비싸다. 일단 짐을 꾸려 다른 마을로 가 보기로 하고, 남편과 물에 발을 담그고 수다를 떤다. 여기서부터 문제. 나는왜 그랬을까? 수다가 길어지다 화제가 통장 잔액에 대한 것으로 바뀌다가, 여행은 왜 왔는지, 과연 숙소에서 하루는 잘 수 있는건지로 이어지면서 나는 마음이 상한다. 시작하지 말았어야 할 바가지가 시작된다. 주체할 수 없이 계속 떠들어대고, 감정은 오르락내리락한다.
아이는 흐르는 물에 신발을 떠 내려 보내고 뛰어 가서 잡는 놀이를 한다. 다그치는 내 말투에 남편은 말이 없어지고, 고개가 숙여지고 어깨는 처진다.거품을 물고 있는 내 얼굴이 물에 비친다. 사납고 무서운 표정, 아이를 혼낼 때도 이럴까. 흐르는 물에 나는 쓸려 내려가고, 또 물 위로 나타나는 일그러진 나.
발터하우젠에서 20분 정도 지나자, 나타난 라우차 마을. 아이는 자전거에서 또 거꾸러 질 듯 잠이 든다. 큰 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를 깔고, 아이를 뉘인다. 옆에서 나도 스르륵 잠이 든다. 이제 길에서 자는 것이 아무렇지 않다.일어나보니, 해가 벌써 지고 있고 남편은 좋은 곳을 발견했다며 짐을 다시 싸라고 한다.
오호와, 계곡 발견.
시원하게 물에 몸을 담그고, 빨래처럼 개운해진다.나는 아이와 물가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엄마의 말에 아이는 "맞아, 맞아"하면서 대답을 한다. 오래된 친구처럼 맞장구를 쳐주는 아이를 보니, 여행을 하는 동안 갑자기 아이가 훌쩍 커버린 것 같다. 우리 책 읽을까, 집에서 가져온 책을 배낭에서 꺼낸다. 계곡에서 아기에게 이솝우화와 어린이 성경책을 또각또각 읽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