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에 자전거 두 대를 기차에 들어 올리고 나니온 몸에 힘이 빠진다. 기차는 출발. 조금만 늦었어도 기차를 못 탔다. 독일 기차는 출발 시간을 정말 잘 지킨다.독일어가 그렇듯 이곳은 일처리들이 군더더기 없이 정확하다. 물론 기차 시간도. 예전에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차를 앞에 두고 설마 문이 닫히겠어? 하고 3초 정도 머뭇거렸는데 실제로 눈앞에서 기차를 떠나보낸 적이 있다. 시간이 되었으므로 기차는 갔고, 다음 기차는 다시 정시에 올 것이라는 방송이 들려올 뿐이었다. 아이젠나흐로 가는 기차에서 아기는 밤송이만 한 눈을 하고 있다. 그리고 기차 타는 것이 신기하고 좋아서, 밖을 구경하다가 코를 파다가 한다.
아이젠나흐 메인 역에서 가까운 소아과를 찾았다. 역시 대기실이나 병원 곳곳이 어린이를 위한 인테리어들로 꾸며져 있다. 접수를 하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는데 장난감에 동화책은 가득하고, 앙증맞은 어린이용 테이블과 의자에 주방놀이까지. 여기가 유치원인지, 병원인지 헛갈린다.
아이젠나흐 메인 역 근처의 소아과 내부 모습, 아이는 요리를 하고 있다.
셋이서 장난감과 동화책에 푹 빠져 있는데, 간호사가 2번 방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병원 문에는 불독 한 마리가 슬픈 표정을 짓고 아기는 문만 보고도 좋아한다. 문을 열자, 안에는 펭귄 두 마리가 있다. 바닥에는 레미콘 모양 자동차도 있고, 대기실과 마찬가지로 바닥에는 동화책과 인형도 있다.
여자 의사 선생님은 친절하게 그리고 아이의 상황을 자세히 물어보신다. 다 알아듣지 못해도, 아이를 걱정하고 있는 깊은 마음 씀씀이가 느껴진다. 진료가 끝나면 의사 선생님은 아이에게 곰돌이 젤리를 준다. 아이는 오늘 너무 기분이 좋다고 점프를 열 번은 한다.아이들이 병원에서 놀 수 있도록, 그래서 병원이 무섭거나 기다리는 것이 지루하지 않도록 배려한 공간들.독일은 참 아이들을 귀하게 여기는 나라다.
약국에 약을 받으러 갔더니, 약국 안에 빙글빙글 돌아가는 고양이 놀이기구가 있다. 약국마저도 놀이터다.맨발에다 모기로 눈은 붓고, 얼굴은 새까맣게 타고 옷은 남루하기 짝이 없는데, 씽씽 놀잇감을 타는 아이는 너무 즐거워 보인다.
독일 병원과 약국, 모두 아이가 즐거울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한 공간들이다.
아이도 그렇고 오늘은 특별히 유스호스텔에서 머물기로 했다. 아이젠나흐는 바이마르에서 기차로 1시간 여 정도 걸리는 곳. 루터가 성서를 번역하고, 바흐가 태어나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고, 도시가 아름다워 관광객도 많다. 숙소로 가는 길에 출발하고 오 분 후, 아이가 잔다. 마음에 드는 카페를 발견하고, 아이를 자전거에서 조심스럽게 내린다.
아이를 키우면서 힘든 순간 중에 하나는 자던 아기가 금방 깨는 것이고, 그래서 잠든 아이를 내려놓을 때는 모든 정성과 힘을 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모른다. 다행히 카페에 있는 긴 의자에 눕히기를 성공. 남편과 눈이 마주치며 희열과 기쁨의 미소를 서로 나눈다. 이제 잠시 쉴 수 있는 감사한 시간이 찾아왔다.
한 시간 자유시간, 이제 뭐 하지?
아이젠나흐 카페(좌,우)와 유스호스텔(가운데)
예쁜 카페다. 외부도 실내도 너무 마음에 든다. 저 고급스러운 빨강 소파하며, 지저분한 듯 마구 꽂혀 있는 책장들과 조명과 액자, 나무 의자와 테이블. 작은 카페 공간을 참으로 잘도 꾸며 놓았다. 커피 맛도 물론 괜찮다. 그리고 서로 말없이 커피를 마시고 책을 본다.아이를 3년 키우며 알게 된 '팁'이랄까. 아이를 재우고 차를 마실 때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별로 말이 없다. 가끔은 서로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고, 지켜주는 게 새로운 힘을 얻게 해주니까.
숙소로 가는 길에 간단하게 음식을 먹고, 작은 호숫가에 멈췄다. 아기와 남편은 달리기를 하고, 나는 벤치에 앉았다. 저녁 바람이 좋다.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스스로의 감격들이 여름밤과 섞여 지나간다.
독일 유스호스텔은 대부분이 깨끗하고, 다른 숙소보다 저렴하고, 특히 아침이 아주 잘 나온다. 1박에 2인 50유로 정도에 화장실이 함께 있고, 아침은 포함되어 있다. 사흘 만에 만나는 침대와 이불이다.침대에 누워본다. 침대도 이불도 엄마 품처럼 폭신하다. 아기도 나도 남편도 눕자마자 잠이 든다.
아이젠나흐에서의 달콤한 밤.
아이젠나흐 시내 거리 모습
다음 날, 다른 도시로 떠나기 전에 시내를 산책한다. 시내의 상점들이나 독일의 집들은 언제 보아도 정갈하고 아름답다. 남편을 뒤로 둔 채 나는 아이와 신나서 시내를 쏘다닌다.
"자전거 여행 어때? 즐거워?"
"네! 또 해요!"
"또?"
"또요!"
아이의 말에 나는 대답하지 못하고 '또'라는 단어를 되새김질해본다. 나쁘지 않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 같이 한 고개를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