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츠터슈타트(Mechterstadt)에서 기차를 타기 전에
라우차 계곡 옆에서 하룻밤을 신세 지고 일어나 보니 아이의 눈이 밤송이 만해졌다.
다래끼인가?
라우차는 약국도 없는 너무 작은 마을이기에 우리는 마침을 부지런히 해 먹고 메츠터슈타트로 옮겼다. 커다란 플라타너스 아래에는 어제와 같은 이야기를 또 나누고 있을 할머니 몇 분과 나무와 용수철로 만든 오토바이, 자동차, 트랙터 놀이기구가 있다. 어느 때처럼 아들은 맨발로 트랙터에 올라 연신 흔들어 댄다. 이곳도 작은 마을이기는 마찬가지여서 의사는 없고 교회 앞에 작은 간판을 가진 약국만 한 곳 있을 뿐이다.
약사는 아들의 눈을 보더니 다래끼는 아니고 아마 모기에 물린 것 같다고 한다. 하지만 물린 부위가 눈 주위라서 의사에게 가서 처방을 받아야 하는데, 의사는 어제 지나쳐 온 발터스하우젠이나 아이젠나흐로 가야 한단다. 우리는 고민 끝에 (물론 아이의 치료가 우선이므로) 기차를 타고 아이젠나흐로 가기로 했다.
여행 중에는 물론 모기에 물린다. 모기뿐 아니라 다른 여러 위험에 노출되어 다칠 수도 있다. 겨울이었다면 아마 감기를 걱정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무서웠다면 여행을 떠나지 못했으리라. 그리고 모든 일에 이러한 걱정이 앞선다면 아이의 어린 시절은 차를 타고 다니는 편한 관광은 있을지언정 예상치 못한 일들에 당황하고 또 그것을 통해 새로운 세상과 삶을 알아가는 '여행'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그럼 어느 것이 아이에게 더 좋은가?
집에서 안전하게 따뜻한 밥을 잘 먹고 모기에 물리지 않고, 감기에 걸리지 않는 것이 아이에게 유익한가,
아니면 모기에 물리고 감기에 걸리더라도 아이에게 행복하고 자유로운 시간을 선사하는 것이 아이에게 유익한가?
루소는 말한다.
(좀 길지만 어감을 살리기 위해 그대로 싣겠다)
"방 안의 탁한 공기 속에 그를 처박아 놓지 말고 날마다 목장 한복판으로 데리고 가라.
거기서 마음대로 달리고 뛰고 하루에 백 번은 넘어지게 하라.
가끔 넘어질수록 좋다. 그는 당장에 일어나는 것을 배울 것이다.
다소 다치게 되는 일이 있다 해도 자유의 기쁨이 그것을 충분히 보상할 것이다.
나의 제자는 종종 멍이 들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항상 쾌활할 것이다.
방안에 틀어 박혀 있는 여러분의 어린이가 설령 덜 다친다 하더라도 그들은 항상 하고자 하는 일을 제약받고 속박당하며 늘 쓸쓸할 것이다.
나는 그런 일이 어린이를 위하여 도움이 된다고는 믿지 않는다."
-루소, 에밀
한국에서도 독일 유아 교육에 관심이 많다. 발도르프, 숲 속 유치원, 페스탈로치.....
그런데 왜?
좋은 유치원을 다닌 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서?
서울대 들어갈 아이를 유치원 때부터 준비하려고?
아니면 좀 깨었다는 분이 말씀하시길, 아이의 창의력을 길러주기 위해서?
다시 질문.
아이의 창의력을 왜 길러주려고 하나요?
결국, 좋은 대학 가게 하기 위해?
다시, 루소는 말한다.
"어린이를 사랑하라.
어린이들의 놀이, 어린이들의 기쁨, 어린이들의 사랑스러운 본능을 호의를 가지고 지켜보라.
여러분들 중에 웃음이 항상 입가에 맴돌고, 또 마음은 항상 평화 속에 깃들어 있던 어린 시절을 아쉬워하지 않는 이가 있는가?
어째서 그대들은 그들에게서 덧없이 사라져 갈 즐거움과 남용하려야 남용할 줄조차 모르는 귀중한 그들의 행복을 함부로 빼앗으려 하는가?
....
그들이 생존한다는 것에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되거든 곧 그들이 그것을 누리게 해 주라.
하나님이 언제 그들을 부르시든 그들이 인생을 누리지 못한 채 죽는 일이 절대로 없게 만들라.
- 루소, 에밀"
한국의 어린이 대안교육은 독일을 흉내 낸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흉내 낸다고 말할 수 있는가?'
흉내 낸다는 것은 한국에 도입된 독일 교육의 프로그램의 미흡함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아이를 교육시키고자 하는 대부분 부모가 전혀 독일 교육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독일 교육을 이야기하며 '창의력'을 남발한다.
하지만 알아두시라. 독일 교육의 목표는 좋은 대학도 창의력도 아닌, 한 인간(어린이)이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하는 것을,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을 충분해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것이 차이점이다. 한국 부모는 맨발로 거리를 걷는 것 마저 병에 걸릴까 걱정한다면(물론 독일은 거리가 깨끗하고 안전하여 그렇다), 독일 부모는 아이가 흙을 집어먹어도 당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방치에 가깝다).
아이에게 지금 이 시간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곧,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
그렇다면 아이를 기르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곧,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
잘 생각해 보라.
숨이 넘어가는 시기 내 인생을 돌아볼 때 무엇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 중에 하나로 기억되겠는가?
아이에게 행복한 시간을 주는 것은, 곧 부모 스스로가 가장 행복한 시간을 갖는 것이다.
속지 마라.
'난 지금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는 없지만, 이 모든 일은 내 아내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일이야.
내가 열심히 일하고 성공해야 가족들의 미래도 행복해지는 거야.'
거짓말이다.
누군가 나에게 준, 나 스스로를 속이는 노파심에 한 마디.
난 루소의 많은 생각에 공감하지만 추종자는 아니다. 그리고 그의 교육론이 많은 부분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는 것을 나도 안다. 하지만 루소를 모르고 그를 비판하는 일이 없기를.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군가를 알기 전에 비판하기 시작한다면 당신은 그 누구로부터도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