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양로원, 혹은 요양원'은 말만 꺼내도 분위기는 불편해진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요양원에 처넣어버리고' 식의 대사만 봐도 이 단어는 금기어에 가깝다. 그 말을 어렵사리 꺼내는 노인은 인생의 끝에 가장 비참한 선택을 하는 사람이 되고, 자녀는 영원한 죄인이 되는 것. 그런데 이게 이렇게까지 쉬쉬할 이야기일까?
공간이 문제였다는 것을 독일에 가서 알았다.
독일의 양로원을 가 보고서 헐, 여기가 양로원이라니! 뒤로 넘어갈 뻔했다. 진짜, 노인들이 머무는 양로원이냐고 몇 번을 물어봤다. 나도 여차저차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여기서 늙어가고 싶다고 생각한 곳.
물론 비용은 들겠지만, 독일의 양로원은 또 하나의 아늑한 집이며 편안한 자신만의 공간이었다. 디자인적으로 세련된 실내도, 정원으로 잘 꾸며진 실외도 탄성이 나온다. 무엇보다 조성된 공간들이 아름답고, 넓고 깨끗하고 쾌적하다. 노인분들이 24시간 생활하기에 조금도 불편함이 없어 보인다.
그곳에 계신 분들도 밝은 표정이었지만, 더 신기한 것은 일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너무 환하고, 모습은 활기 있어 보이는 것이었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냐만, 여러 상황으로 인해 이곳에 온 분들을 보살피는 일은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쉽지 않은 일일 텐데, 저토록 해맑은 미소는 어디서 나올까.
분명, 적절한 근로시간+일에 걸맞은 페이+수평적이고 인간적인 동료관계+일에 대한 가치의식일 것으로 예상.
*독일의 시급은 2021년 기준 9.82유로(13,328원) - 2022년 12유로(16,287원)로 인상할 예정.
독일 바이마르 소피엔하우스 외관
바이마르에 있는 양로원인 '소피엔하우스'에 우리 가족이 초대를 받았다. 여러 나라의 문화를 소개하는 행사가 있는데 가족 모두가 한국의 전통의상이 있다면 입고 와 줄 수 있냐고 요청한 것이었다.
띠로리, 한국의 전통의상!
독일에 올 때 가장 쓸데없이 가져온 것 리스트 1번이 한복, 2번이 정장이었는데 이렇게 입을 일이 생기다니. 동대문에서 비싸게 주고 산 물 비단 한복이라며 시어머니께서는 내심 챙겨가길 원하셨고, 나는 한복 값이 택배비에 버금가는 것을 알고 오랫동안 혼자서 꽤 뒷담을 했던 터였다.(아직도 물 비단 한복임을 기억하는 걸 보면)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자리에 한복 때문에 초대받게 될 줄을 정말 몰랐다. 남편과 나와 아이는 한복을 입고 시내를 지나 소피엔하우스로 간다. 거리의 사람들은 코스프레 거리행진을 보듯 환호를 보내고 나는 '뭐야, 뭐야', 민망하다며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소피엔하우스에 도착했다. 가톨릭 재단에서 운영하는 이곳은 양로원이 있고 지하에는 중고 아기용품을 파는 곳이 있다. 특이한 점은 1유로든 10유로든 자율적으로 돈을 내고 필요한 만큼 아기 옷이나 장난감들을 가져가면 된다. 관리하시는 분은 친절한 미소로 나와 곧 출산을 앞둔 J에게 이것저것을 더 챙겨주신다.
독일에서 나는 외국인이어서, 늘 환대와 배려를 받으며 살았다. 내가 기억하는 독일은 늘 따뜻하고 고맙다.
교회 성가대의 합창 소리가 나직하게 들려온다. 합창 후에는 우리의 한복 패션쇼가 있고, 행사가 끝나면 야외 그릴에서 점심을 먹고 가라는 그레잇 한 소식까지.
독일 사람들은 '꽃'만큼이나 '음악'을 사랑한다. 베토벤, 헨델, 바그너, 브람스, 슈만, 멘델스존까지.
바이마르에는 리스트 음악학교가 있고, 한 시간 기차를 타고 가면 아이젠나흐에는 바흐의 생가가 있다. 바이마르처럼 작은 도시에도 공연장이 여러 개가 있다. 그곳에서 음악일을 하시는 한국 분도 세네 분 정도 계시고, 관람료는 1인 만 원 정도로 굉장히 저렴했다. 그래서 음악을 사랑하고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담 없이 공연을 볼 수 있다.
20명 정도의 교회 성가대는 대부분 음대생들로 이루어져 있다. 독일 성가곡에 이어 한국어 노래가 소피엔하우스 공간을 가득 채운다. 웅장하고도 완벽한 하모니. 귀 기울여 듣는 그분들의 표정은 진지하고, 노래가 끝난 후 박수는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패션쇼는 시작된다. 한복을 입은 우리 가족이 앞으로 걸어 나온다.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눈이 마주치고 나는 어색한 미소로 마음을 다해 할로, 할로 인사를 한다. 처음 보는 한복의 고풍스럽고 우아한 선, 연분홍치마와 쨍한 파란 저고리 색깔에 독일어 감탄사는 이어지고, 손짓으로 최고라는 찬사도 보내주신다. 내 손을 잡아주시거나 우리 아이를 안아주신다. 그리고 세상 어디든 할머니들의 손은 참 따뜻하고 폭신하다. 아이는 한복을 입고 폴짝폴짝 뛰더니 다가와서는 소곤거린다.
응, 뭐라고?
엄마, 소시지는 언제 먹냐고!
연기 사이로 고기와 소시지가 구워지는 소리가 타닥타닥 맛있게 들리고, 어디서 좋아하는 냄새가 난다며 아이는 달려간다. 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휠체어를 탄 노인분들은 정원을 산책하며 꽃을 구경하고 대화를 나눈다. 나는 함께 간 J와 독일의 풍경을 바라본다. 소녀 같은 할머니의 웃음과 띄엄띄엄 독일어를 하는 아이의 목소리와 섞여 들린다.
나이가 들어도 저렇게 얼굴에 어둠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무언가에 찌들어 지친 늙은이의 모습 말고 좀 더 인간다운 모습으로 인간답게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옆에 앉은 J에게 심각하게 이야기하는데 '언니, 주름은 독일에서도 어쩔 수가 없어요. 성형은 한국이 최고지. 독일 오고 얼굴에 기미가 장난이 아니라니까요'라는 그녀의(그녀는 한국에서 성형외과 매니저로 일했음) 알콩한 대구 사투리가 너무 귀여워서 나는 한국에 온 듯 키드득 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