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가 또 그쳤는데 갑자기 해가 떴다가 다시 구름에 가렸다가, 부슬부슬 비가 또 온다. 그래서인가? 독일 사람들은 비를 피하지 않고 우산도 쓰지 않는다. 가는 비에도 우리는 허겁지겁 가게 처마로 가서 비를 피하고, 우산을 찾는데 그들은 그저, '비가 오는구나' 하면서 걸어간다. 어쩌면 저렇게도 여유로울까. 멀리서 보면 비가 온다는 것을 의식도 하지 않는 것처럼 비가 오기 전과 똑같은 표정으로 걷는 독일 사람들.
저 사람들은 왜 그냥 비를 맞고 다닐까.
생각지 못한, 확실히 다른 세계.
비가 하도 자주 오고 그쳤다 말았다를 반복하니 독일 사람들이 그냥 비를 맞고 다니는 것도 있겠지만, 비법은 다른 것에 있었다. 독일 사람들이 자주 입고 다니는 늑대 발바닥 상표의 바람막이 점퍼가 있는데 100% 방수와 방풍이 되는 옷이었다. 한 마디로 방수가 되는 바람막이 점퍼를 입고 다니는 그들은 비가 와도 젖지 않는다는 사실.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장점에다 전체적인 핏도 그렇고 특히 늑대 발바닥이 좀 폼난다. 그리고 지휘를 공부하던 S가 없는 형편에 세일하는 이 점퍼를 큰맘 먹고 샀다고 어찌나 자랑을 하고 다녔는지, 매일 그것만 입고 다니냐고 타박을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제일 저렴한 점퍼가 100유로가 넘는 가격이어서 엄두도 못 냈지만 지금 한국에 오고 나니 빚을 내서 하나쯤은 사 올 걸, 그랬으면 캠핑 갈 때나 산에 다닐 때 아주 유용했을 텐데 후회가 된다.
독일에 오고 이제 삼 년 즈음되던 때 남편과 나도 비 오는 거리를 노래 가사처럼 걸어본다. 부슬비에는 뛰지 않고 우산도 들고 가는 여유를 부린다. 독일에 이제 적응을 하는 건가, 하며 조금 으쓱해지는데 독일 말도 못 하면서 사람들의 흉내만 내는 건 아닌 가 싶다가도, 흉내라도 내고 싶다고 또 생각한다.
비가 오고, 흐리고 불 켜진 오후의 독일 거리를 걷는데 비가 점점 많이 온다. 우리에겐 안타깝지만 방수 점퍼가 없고 우산을 써야 할 시간이다. 남편은 장바구니를 들고 있어 나는 우산을 펴서 남편을 씌어준다. 아이는 유치원에 갔고 이렇게 둘만 걷는 시간이 오랜만이라 설렌다. 대학로에서 우리 첫 데이트를 할 때 비가 왔었는데 혼자 감상에 젖어 미소를 짓는데 남편은 '이 여자가 왜 이래?' 하는 눈빛으로 쳐다본다.(이때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나는 감이 너무 없다) 그래도 괜찮아. 여자는 추억 속을 걸으며 결혼 생활을 유지한다잖아.
'그때 우산을 든 남편은 나를 씌어준다고 온통 젖었었지. 다음 데이트 약속할 때, 나 너무 좋아서 입을 가리고 웃었는데.'
빗방울이 더 세지고 남편과 나의 거리는 가까워지면서 나는 옛 생각에 잠겨 집까지 어떻게 걸었는지도 모르게 도착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몽상과 환상과 설렘을 깨는 짜증 섞인 그의 한 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