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어린이가 어른이 되기까지는 어린이 그대로이기를 바란다. - 장 자크 루소(1712~1778),
너무 위험한 거 아니야?
저러다 다칠 것 같은데.
어어어.
독일의 놀이터는 위험해 보인다. 그래서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위험하고 재미있는 놀이터에는 언제나 아이들이 바글바글하다. 한 번은 뮌헨 동물원 안에 있는 놀이터에서 진짜 높은 미끄럼틀을 아이와 탔었는데 굉장한 높이에서 내려오는 속도는 어찌나 빠른지 놀이기구에 버금갈 정도. 아이는 한번 더 타자고 하고, 나는 내려와서 어지러워 한참을 앉아있었다.
바이마르 도시 곳곳에는 여러 형태의 놀이터가 있는데 이렇게 놀이터 꼭대기까지 올라간 아이도 있고(대체 어떻게 올라 건 거지, 싶을 정도로의 높이), 분명 아이 혼자 뛸 만한 거리가 아닌 곳에서 해맑게 웃으며 뛰어내리기도 한다. 이렇게 놀다 보니 넘어지고 다치고 가끔은 살이 까져 피도 난다. 나는 이럴 줄 알았다며 울고 있는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갈 기세이고, 남편은 '놀다가 다칠 수도 있지'라고 아무 시렁도 않고 말한다. 그런데 아이는 다쳐도 더 놀겠다고 운다.
독일의 놀이터는 디자인적으로도 놀랍지만, 아이들이 지루할 틈 없이 놀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경이로운 사실. 한국처럼 플라스틱 재료로 만든 똑같은 모양의 놀이터가 아니라, 놀이터 디자이너가 직접 연구하고 아이들을 인터뷰하며 놀이터를 설계 제작한다.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할지, 어떻게 즐겁게 놀고 싶은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독일에는 있다.
독일에 와서 독일 놀이터를 본 남편은 감탄에 감탄을 한다. 놀이터 관련 서적을 밤새 번역해서 읽고, 책 저자에게 연락을 해 만나러 가기도 했다.(그렇게 유명한 사람이 우릴 만나주겠어,라고 약간 남편에게 야유를 보냈으나 귄터는 바로 우리를 집으로 초대했다.) 잉골슈타트에 사는 놀이터 디자이너 귄터의 집에서 이틀을 머물렀는데,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아이가 놀도록 '내버려 두라.'였다. 아니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다 떨어지거나 다칠 것 같아도 '잡아주지 말라.'라고 했다. 위험한 놀이는 오히려 아이들의 순발력을 기르고 진짜 위험한 상황에서 그들을 반응하게 한다고.
어른이 불안해서 도와주려고 할 때 아이는 곁에 있는 어른을 의지해서 오히려 몸에 힘을 빼게 되고, 그러면 다칠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것이다. 오히려 넘어질 기회를 주는 것이 다치지 않는다는 역설. 정말 위험하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어른을 부른다는 것이다. 그는 아이들이 노는 것을 늘 관찰하고 놀이터를 디자인한다.
아이들은 숨기를 좋아하고,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며,
좁은 공간에서 서로 부닥치는 것을 좋아한다고.
그러고 보면, 우리는 어린 시절을 지나왔다고 해서, 아이들을 모두 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일지 모른다.
그 시절 놀이를 할 때 즐거웠다는 피상적인 감정만 어렴풋하게 기억날 뿐,
우리는 아이를 모른다. 아이들은 그들의 세계에서 즐겁다. 아이는 아이이길 원한다.
잉골슈타트에서 귄터 할아버지가 만든 놀이터에서 아이가 놀고 있고, 지켜보는 우리.
이렇게 줄을 잡고 이동하면서 아이의 팔 근육과 힘이 길러진다고, 한 발짝 떨어져서 보고 있으라고 한다. 그런데 엄마의 마음은 계속 안절부절, 떨어지면 잡아주려고 팔이 앞으로 나가려고 하다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쳐 멈춘다. 아이는 생각보다 훨씬 잘 해낸다. 할아버지는 윙크와 미소를 날리시며 나에게 "Gut."
나, 칭찬받았다.
귄터는 아이에게 예의와 창의력 둘 다 중요하지만,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함께 노는 것' 은 정말 중요하다고 말한다. 독일은 집 정원에 개인용 놀이터를 아주 잘 만들어 놓은 경우가 많은데, 친구 없이 혼자만의 놀이터에서 노는 것은 비추라고.
그러고 보면, 어린 시절 동네에서 하루 종일 아이들과 놀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잡다한 여러 가지 놀이를 하면서 싸우기도 하고, 토라지기도 하고, 뭐가 그리 재밌게 낄낄거렸던지. 그러다 엄마가 "밥 먹어라." 하면 다들 쏜살같이 인사도 대충 날리며 집으로 달려갔던 나날들. 그때 몽글한 여운들이 지금의 외로운 조각들을 지워간다.
방 안의 탁한 공기 속에 그를 처박아 놓지 말고 날마다 목장 한복판으로 데리고 가라. 거기서 마음대로 달리고 뛰고 하루에 백 번은 넘어지게 하라. - 루소, '에밀'
바이마르에서 자전거를 타다 우연히 만난 숲 속 놀이터에는 집라인이 있다. 그것도 끝이 겨우 보일 정도로 길고 속도감도 있어서 어른들이 타도 아악, 소리가 나올 정도로 재미있다. 숲을 가르며 타고 내려온다. 단연 상쾌함이 피부로 스며들고, 머릿속은 청량함으로 가득해진다.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이 방 안의 탁한 공기 속에 처박혀 있다. 루소의 말대로 라면 '처박아 놓고'이다. 그러고 보면 아이를 그렇게 만든 주체는 코로나가 아니라 학교이며 어른들이다. 2년 새 과체중이 되어버렸고, 게임과 영상에 매일 허우적거리는 아이들은 여전히 재미있게 놀고 싶어 한다. 많은 아이들은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루소는 아이를 '목장 한복판으로 데리고 나가 마음대로 달리고 뛰고 하루에 백 번을 넘어지게 하라'라고 한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야겠다. 그리고 마음대로 달리고 넘어지도록, 가만히 좀 있어야겠다. 함께 뛰어노는 행복을 누리도록 어른답게 나는, 그들을 내버려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