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글 옮겨적기-3
일본에는 서양에서 말하는 愛, 'Love'라는 개념이
명치유신의 개화기 때까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후타바테이 시메이는 그의 소설 속에서는
그냥 영어 발음 그대로 ラブ(라브)라고 썼다.
뿐만 아니라 번역 중에 "I Love You"라는 구절이 나오자
"죽어도 좋아"라고 의역했다. 같은 무렵 나쓰메 소세키는
"달이 아름답네요"라고 번역했다고 한다.
Love란 말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직접 대고
말할 수 없었던 것. 특히 남녀 사이의 사랑은 말할 것도 없다.
I의 주체가 있고 You의 대상(객체)이 존재하는 한
사랑이란 것은 존재하지도 탄생하지도 않는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눈이 내리지 않는다. 그래서
눈이라는 말이 없다. 하지만 낙타란 말에는 부위에 따라
제각기 다른 말들이 많다(세분화되어 수십 가지가 있다).
에스키모(이누이트족)인들에게는 눈에 관한 단어가
수십, 수백 가지라고 한다. 하지만 낙타란 말이 없다.
남과 북. 지리적 상황에 따라서 말은 정반대의 현상을 보인다.
그러나 사랑은 남과 북이 없고 여름과 겨울이 따로 없다.
자연과 문화의 차이가 언어에 의해서
뚜렷한 경계선을 만든다.
2019. 1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