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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성미남 Jan 03. 2024

청승맞다

4(싸)가지 없는 중년으로 살기로 했다

'청승맞다'라는 말이 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궁상스럽고 처량하여 보기에 몹시 언짢다."라고 쓰여있다.

궁상스러운 건 머지?  또 찾아본다.

"꾀죄죄하고 초라하다"라고 쓰여있다.

가만히 내 꼬락서니를 바라본다. 냄새도 맡아본다.

번듯하고 삐까 번쩍한 행색은 아니지만 꾀죄죄하진 않다.

초라한 건 어떻고?  

잠잘 곳 있고 굴러갈 차도 있고 다닐 회사 있고

잘생긴 아들 녀석 있고 마음에 품은 예쁜 각시 됐으면 하는 사람도 있고

난 초라하지 않다.


그런데 청승맞다. 지랄 맞게 청승맞다.


하얀 쌀밥이 건강에 좋지 않다고 잡곡을 먹으라고 의사가 한마디 했다고

덜컥 무려 17곡의 잡곡을 사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씻어서

1인분의 밥을 기가 막히게 해내는 전기밥솥에 올려 두었다가 낭패를 봤다.

잡곡은 물에 불려서 한참을 기다리고  밥을 해야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지식인의 가르침에 때아닌 물멍도 불멍도 아닌 잡곡쌀 뜬 물을 바라보는 멍을 때리고 있다.


청승맞다. 지랄 맞게 청승맞다.


기다려야 한다면 기다릴 테다. 기다려서 무려 17곡의 맛있는 잡곡밥이 된다면

배가 고프다고 대충 잡곡을 씻고 급하게 밥솥에 밥을 해서 먹고 싶은 마음은 없다.

살아내야 하는 것도 기다림이라면 기다릴 테다.

용기를 내야 한다면 지금 내야 할지도 모른다.

딱딱한 마음으로 설 익은 고백을 해서는 안된다.

잘 불린 마음으로 잘 익은 고백을 해야만 한다.

몽글몽글 하고 따뜻한 사람온기 가득한 삶을 함께 나눌 기다림이라면,

잘 기다리기로 한다.


청승맞다 그래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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