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식탁, 채워지지 않던 마음

가짜 허기에 시달리는 위태로운 영혼

by 인성미남


저녁 여덟 시.


세상 모든 소음이 이 집만 비껴가는 듯했다.


나는 4인용 식탁 앞에 서서 의자 하나를 빼어 앉았다. 마치 누군가와 마주 앉을 것처럼. 하지만 내 앞에는 싸늘하게 식어가는 하얀 벽지뿐.


그 위로 길게 늘어진 내 그림자가 어색한 동석자처럼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배는 고프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배고픔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게다. 며칠째 그랬다. 꾸역꾸역 무언가를 밀어 넣어야 한다는 의무감만 있을 뿐. 그것이 '식사'라는 단어를 대신하고 있었다.


휴대폰을 들어 익숙하게 배달 앱을 켰다.


손가락이 잠시 머뭇거렸다. 아내가 좋아하던 떡볶이, 아들이 노래 부르며 먹던 치킨... 이제는 혼자 결정해야 하는 메뉴 앞에서 나는 길을 잃은 아이처럼 매번 방황한다.


막막하다는 게 이런 기분인가 보다.


결국 고른 것은 가장 빨리 도착한다는 문구가 붙은 평범한 김치찌개 백반이었다. 최소 주문 금액을 채우기 위해 계란찜을 하나 더 추가했다. 혼자라는 사실이 음식값으로 증명되는 순간은, 생각보다 더 서글펐다.


띵동.


벨 소리가 정적을 날카롭게 갈랐다. 나는 최대한 무심한 표정으로, 음식이 담긴 비닐봉지를 받아 들었다. 배달 기사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이 어쩐지 초라하게 느껴져서, 괜히 더 퉁명스럽게 문을 닫았다.


플라스틱 뚜껑을 열자 자극적인 냄새와 함께 허연 김이 피어올랐다.


따뜻했다. 하지만 그 온기는 집 안의 냉기를 데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숟가락을 들어 밥을 한술 떴다. 그리고는 이내 내려놓았다. 밥알이 모래알처럼 입안에서 겉돌았다.


4인의 식탁. 이 식탁이 왜 이렇게 넓고 적막한가 .


적막을 견디지 못해 TV를 켰다. 화면 속 예능 프로그램에서 사람들이 까닭 없이 웃어댔다. 그 웃음소리가 마치 나를 비웃는 것처럼 들려왔다. 소음은 고요함보다 더 큰 외로움을 몰고 왔다.


김치찌개는 반도 넘게 남았다. 계란찜은 한 숟가락도 뜨지 않았다.


가짜 허기 라고 했다.


외로움이 허기로 둔갑해서 자꾸 위장속으로 꾸역구역 음식을 밀어 넣고 나면

쓸쓸한 뇌는 포만감에 외로움을 잠시 잊어버리는 생물학적 신호로 위로한다.


식어버린 음식들은 마치 나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 같았다. 한때는 뜨거웠으나, 이제는 온기를 잃고 차갑게 굳어버린. 치우기조차 귀찮았다. 설거지통에 그릇을 넣는 '달그락' 소리마저 내 신경을 긁을 것만 같았다.


나는 남은 음식을 식탁 위에 그대로 둔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아침의 내가 치우겠지. 어쩌면 모레의 내가 치울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의 저녁이 지나가고 있었다. 채워지지 않는 배와 채울 수 없는 마음을 끌어안고.


빈 식탁은, 그렇게 한동안 나의 풍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