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메일을받기까지.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메일함에 뜬 이 문장이 뜨지 않을까 봐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지.
브런치에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작가 신청을 해야 된다는 사실을 분명 알고 있었는데 어느새 잊어버렸었는지 브런치에 올릴 글을 싸매 들고 브런치에 글을 저장하니 내 서랍에만 나의 글이 존재했다. 발행하려면 작가 신청 후 브런치 작가가 되어야 한다나?
‘신청하지 뭐. 설마 안 되겠어?’
별생각 없이 브런치 작가 신청을 눌렀다. 내 소개도 해야 되고 앞으로 브런치에 올릴 글에 대한 계획도 써내야 되는 것에 조금 놀랬다.
약간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이력서를 냈더니 자사 이력서를 다시 써오라고 해서 쓰려고 했더니 생각보다 엄청 쓸게 많아서 부담스러운 느낌이었다. 써놓은 글만 내면 될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구나.
그래도 브런치에서 내가 본 좋은 글들처럼 나도 나의 글을 브런치에 올리고 싶었고 생각지 않았을 뿐이지 어려운 건 아니었으니 괜찮았다. 게다가 내가 브런치에서 어떤 사람으로 나 자신을 소개하고 싶은지, 그리고 앞으로 내가 브런치에 어떤 글들을 올리고 싶은지에 대해 나 또한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돼서 좋다는 생각이 들어 차분히, 진지하게 써내었다.
신청을 하고 나니 신청서를 꼼꼼하고 신중하게 살펴보겠다는 말과 함께 영업일 기준 5일 이내에 결과를 알려준다는 문구가 화면을 채웠다.
‘꼼꼼히…? 5일? 결과?’
불안감이 몰려왔다. 쓴 글만 있으면 거의 다 되는 건 줄 알았는데 꼼꼼히 보고 5일 뒤에나 결과를 알려준다는 말을 보니 이거 떨어질 수도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번뜩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갑자기 나의 글이 시험대 위에 올라간 기분이 들었다.
‘에이, 설마.’
불안감을 뒤로하고 그날은 잠을 청했다. 미미한 불안감을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한 것만으로도 이미 벌써 엄청난 작가가 된 기분이 이겨내 버렸다. 꽤나 잘 잤던 거 같다.
자고 일어나 아무렇지 않은 척, 사실은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황급히 메일을 열어봤다. 메일함을 보고 싶은 마음과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속에서 싸우는 중이었는데 눈은 보고 싶지 않아 눈을 감아 버리려고 했고 손은 보고 싶은 마음에 다급하게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있었다. 보고 싶지 않은 마음 역시도 사실은 조금 궁금했는지 결국 실눈을 뜨고 메일함을 바라봤다.
터질 것 같은 심장이 무색하게도 메일함에는 아무것도 와있지 않았다. 겨우 다음날일 뿐이니까,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이미 심장에 얼음물을 끼얹은 것처럼 온몸에 피가 차가워져 있었다.
‘실망하지 않았어. 실망하지 않았어…….’
아무도 비난하지 않았지만 괜히 나 스스로에게 쿨한 척을 했다. 그러면서 스리슬쩍 초록창을 켜 검색 창에 ‘브런치 작가 신청’을 입력했다.
인터넷에는 많은 분들의 브런치 작가 신청 후기가 있었다. 불합격하신 뒤 써주신 글, 여러 번의 불합격을 거쳐 합격하신 뒤 써주신 글, 한 번에 합격하신 분도 계셨다.
글을 읽고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어찌 보면 죄송할 수도 있는 마음이지만 그랬다. 비록 불합격이 확정된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은 어떠한 불행이 나만 겪는 불행이 아니라는 것에 안정을 느끼고 위로를 받는 걸까.
뿐만 아니라 불합격 이후 재도전을 하여 합격을 하는 경우도 많으며, 나만 떨리는 것이 아닌 다들 도전 후 간절하게 합격을 기다린다는 것이 내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 다가왔다. 다 알고 있다며, 괜찮다며 포근하고 온몸을 가릴 만큼 커다란 담요를 덮어주는 것 같았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어제는 불합격을 하면 세상이 끝날 것 같았는데 글을 읽고 난 뒤에는 설사 불합격을 하더라도 그저 인생의 지나가는 아주 작은 과정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내가 한 번에 합격을 하느냐 마느냐가 내가 대단한 작가냐 아니냐를 가르는 것이 아니고 설사 합격을 하더라도 내가 작가로 평생 사는 것은 평생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해 오는 과정 그 자체니까.
마음이 편해지니 글도 잘 써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기대를 버리지 못한 걸까.
나는 다음날 또다시 메일함을 바라보고 있었다. 블로그에서 본 글에는 합격하신 많은 분들이 작가 신청을 할 때는 영업일 기준 5일이라고 써져 있었지만 생각보다 빨리 합격했다는 메일을 받았다는 글이 있었고 대략 평균 이틀 정도가 걸리는 듯했다. 어떤 블로그에서는 합격 메일은 빨리 오고 불합격 메일은 늦게 온다는 얘기도 있었다.
월요일에 지원했으니 이틀째가 되는 수요일.
여전히 아무런 소식이 없는 메일함을 바라보며 나는 불안해졌다. 떨어지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저 합격 메일이 오는 데에 이틀 정도가 걸릴 수 있다는 말에 안심했을 뿐인가?
그런 스스로가 부끄럽게 느껴졌고 그러면서도 한편 오늘 메일이 오지 않는다면 마치 불합격이라고 확정이 나는 것 같아 메일함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합격 메일만을 기다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참아내기 힘들 만큼 초초 해지는 마음에 합격 메일이든 불합격 메일이든 빨리 와서 기다림의 시간이 끝나고 새로운 도전이든 합격의 기쁨이든 어서 확정된 무언가를 누리고 싶었다.
‘그렇지만 막상 불합격 메일을 받는다면 엄청 울적해지겠지.’
불안한 마음과 다 놔버리고 싶은 마음, 한편으로는 간절하게 합격했으면 하는 마음이 내 안에서 자리다툼을 벌이듯 하루에도 몇 번이고 바뀌어댔다.
어차피 이미 지원한 거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결과가 나오고 생각하자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른 일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노력했을 뿐 잘 됐다는 건 아니지만. 이런 고민을 할 만큼 내가 내 글에 자신이 없나 싶은 생각에 속상했다. 합격을 하든 안 하던, 남이 나의 글을 좋아해 주던 아니던, 내 글을 내가 사랑하지 않고 자랑스러워하지 않으면 그걸 어떻게 내 글이라고 스스로 말하며 그 글로 인한 기쁨을 내가 누릴 수 있겠는가.
나는 합격을 하든 안 하던, 남들이 나의 글을 좋아해 주던 아니던, 무엇보다 나의 글을 쓰고 싶었다. 그 글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의 글이 사랑받았으면 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먼저 내 글에 최선을 다하고 그렇기에 내 글을 자랑스러워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그것을 내 글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며 내가 결코 그러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왜 나는 이렇게 스스로를 깎아내리기에 급급한가에 대해 생각했다. 침대에 드러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 생각에 빠져있던 나는 어느새 황급히 글을 쓰고 싶어졌다.
너무나도 글이 쓰고 싶어졌다. 나는 내 글을 좋아한다. 나는 내 글을 자랑스러워한다. 나는 내가 쓰는 글에 최선을 다 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내가 자랑스러워하고 사랑하는 글이기에 내 글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고 그 글이 사랑받을 수 있는 게 따라오는 것이 맞는 순서가 아니겠는가.
나는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인데 왜 내가 글을 쓰는 고민이 아니라 어떤 웹 사이트에서 내가 한 작가 신청을 받아 주느냐 아니냐를 고민하느라 글을 쓰지 못하고 있지?
나는 끊임없이 글을 써야 한다. 다른 것들은 다 부수적인 것들뿐이다. 글을 끊임없이 쓰다 보면 따라올 다른 것들에 신경 쓰느라 글을 쓰지 못하는 것만큼 한심한 것은 없지 않나.
생각이 정리되며 글을 쓰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심장 부근부터 점점 커다래져 어서 글을 쓰지 않으면 이 설레는 마음이 팡, 터져버릴 것 같았다.
‘좋다. 진짜 좋다.’
변태 같지만 터져버릴 것 같은 이 강렬한 마음이 너무나도 좋았다. 터져버릴 것 같은 설렘은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목구멍 끝까지 가득 찬 설렘이 그리도 좋았다. 키보드 위에서 글을 쓰는 손짓은 마치 춤을 추듯 매끄럽게 이어졌고 어린아이의 발걸음처럼 통통 튀었다.
때때로 우리는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을 착각하지 않는가. 행복한 인생을 위해서는 나 자신을 잘 알고 있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어서 글을 쓴 게 아니라 글을 쓰고 싶어서 브런치 작가도 되고 싶다는 생각이 따라온 것처럼. 이 별 것 아니게 느껴지는 차이를 알고 있느냐가 우리가 늘 서는 선택의 기로에서 행복한 선택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은 내게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내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은 무엇이며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할 기회를 내게 충분히 만들어 주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나는 누구보다 나에 대해 잘 알고 또 인생의 순간순간에서 진정한 나를 위한 고민을 하고 선택을 하는 어른이 되었다.
그날 브런치에서는 여전히 메일이 오지 않았지만 더는 괴롭지 않았다. 그날을 마무리하며 느낀 그날은 브런치에서 합격 메일이 안 와서 우울한 날이 아닌 그저 설레는 마음으로 글을 잔뜩 쓴 날이 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2021년 9월 9일. 브런치에서 합격 메일이 왔다. 아무런 생각 없이 늘 하는 것처럼 메일 계정에 로그인을 해놓고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있는 와중에 언뜻 본 메일함에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라는 제목이 보였다.
기쁘지 않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내가 이렇게 기대했었지, 합격을 정말 하고 싶었구나, 싶을 만큼 기뻤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불합격되었어도 나는 절망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며 여전히 글을 쓸 것이고 언젠가는 분명 브런치 작가에 합격했다는 이 글을 썼을 것이다. 그렇지만 감사하게도 빠르게 합격을 했으니 빠르게 많은 이들과 글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에 감사하며 그 기회를 잘 이용하여 많은 글로 소통하겠습니다.
"합격이 싫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합격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