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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엔들 잊힐리야

할머니집

by 이르마봄 Apr 13. 2025

 초등학생이 되면서 아이들은 차를 타면 초성 퀴즈를 하자고 한다. 초성 퀴즈는 초성만 듣고 단어를 맞추는 게임이다. 대개 ‘비읍 비읍’이 나오면 ‘바보’이고, 큭큭대며 “쌍디귿, 한 글자입니다”하면 그건 여지없이 ‘똥’이다. 가끔 뜻밖의 고급단어가 나오기도 하는데, 그건 아이가 읽었던 책에서 나온 단어일 경우도 있고, 차 창밖 지나가는 간판에서 따온 말일 때도 있다. 


 작은 아이가 “으음...기역, 히읗!”하고 문제를 냈다. 정답은 ‘귀하’. 앞 좌석 남편 앞으로 온 우편물에 쓰여진 걸 보고 뜻도 모르는 문제를 낸 것이다. 예상치 못한 난이도에 고민 끝, 나는 “고향!”하고 말했다. 아이는 배시시 웃으며 “땡! 틀렸습니다!”하고 작은 두 손가락을 펴서 내 손목에 벌칙을 내렸다. 그건 아프기보다는 차라리 간지러웠다. 아이의 손에서 전해진 간지러움이 고향을 깨웠다. 


 나는 할머니 집이 생각났다. 할머니 집은 가평 현리 꽃동네. 어린 마음에도 어쩌면 동네 이름이 꽃동네일까 예쁘다 생각하곤 했는데, 그건 사실 반어법으로 지은 이름임이 확실했다. 귀한 자식의 이름을 ‘개똥이’라고 아무렇게나 지어 불러 장수를 기원했던 것처럼. 그 안의 삶이 너무 고되고 힘들어 일부러 ‘꽃동네’라고, 쨍하고 꽃필 날 올 거라는 위안 같았다. 사하촌 아랫말인 동네엔 피워낼 건 쓴웃음밖에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건 어른들의 일이었고, 어린아이들에게 시골은 그저 신나는 곳이었다. 


 우리 삼 남매에게 방학이 된다는 건 할머니 집에 간다는 것이었다. 내가 사는 원주에서 꽃동네 할머니 집에 가려면 버스를 세 번을 갈아타야 했다. 멀미가 무진장 심했던 나는 버스가 정말 무서웠다. 떡을 팔러 집을 나선 동화 속 엄마가 캄캄한 어둠 속에서 망연히 집으로 가는 길을 바라보는 심정이 이랬을까. 고개 하나 넘을 때마다 마주하게 될 호랑이 같았다. 내 속을 뒤집어놓고 끝내 나를 몽땅 잡아 먹어버릴 걸 알지만 잘 참고 견디면 하늘에서 곧 동아줄이 내려오리라.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나는 기역이 되었다 니은이 되었다, 자세를 바꾸어가며 안간힘을 써야 했다. 치밀어 올라오는 역한 것을 아래로 내리 누르느라 파리하게 지쳐갔다. 끙끙 앓는 나를 보며 엄마는 머리를 짚어주고, 버스에서 내리면 바나나우유를 사주겠다고 달래보지만 결국 멀미를 가라앉히는 건 꾸역꾸역 참다가 검은 봉지에 먹은 것도 없는 속을 다 비워내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마구 처참히 구겨져서 내려야 했다. 


 하지만 잘 참은 보람은 있다. 이제 싱싱한 시골이 펼쳐진다. 건강함과 생기로 가득한 시골. 먼지가 폴폴 나는 신작로 길 끝에는 작은 들꽃 같은 할머니가 손을 흔들고 서 있다. 작고 흐렸던 할머니가 점점 크고 선명해져 오면 그때부터는 우리는 달리기 시작했다. 밭에 있다가 외양간에 있다가 우리가 올 시간이면 오동통한 손을 깨끗하게 씻고 나온 할머니의 손을 와락 잡으면 촉촉하고 깨끗하고 생기 가득했다. 할머니 손을 잡고 마당에 들어서 시골집 방문을 열면 오래된 집에서 풍기는 냄새가 시골이란 세계로 훅 잡아끈다. 방에 아무렇게 짐을 던져 놓고 주변을 한번 둘러본다. 우리가 왔다! 인사라도 하듯이.


 할머니네 옆집에는 세 살 위의 오빠랑 나와 동갑이지만 집안 살림을 돕는 솜씨나 자연을 대하는 대범함이나 여러모로 조숙한 친구가 있었다. 오빠는 손버릇이 안 좋아 할머니가 은근 마땅찮아했지만, 동갑 친구는 할머니도 대견해 했다. 우리의 재잘대는 소리가 나면 친구들이 자연스레 왔고, 땡볕에 있는 할머니네 마당 평상에 앉아 뜨거운 해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방금 쪄낸 옥수수를 신나게 먹었다. 할머니가 주는 음식은 딱 떨어지는 계량 없이 만들었지만 적당히 달고 고소했다. 할머니의 옥수수에 뉴슈가가 들어가는 것도, 나물 반찬의 감칠맛이 미원인 것도 나는 커서야 알았다. 그저 할머니의 음식은 할머니 손맛이라는 믿음만 있었다.


 배가 부르면 우리는 개울로 내달린다. 할머니 집에서 자동차들이 오가는 길 하나만 건너면 마을 사람들이 더위를 피하기 위해 몰려들던 오래된 밤나무가 있다. 나무 아래는 쉬기 좋게 시멘트를 부어 편평하게 만들어 놓았다. 커다랗긴 하지만 신령스러움은 전연 없어 보이는 푸근한 밤나무를 지나 내려가면 찰찰찰 흐르는 개울이 펼쳐진다. 계량과 측정 없기는 개울도 마찬가지. 폭도 깊이도 제각각이어서 더 재밌었다. 운이 좋아 며칠 전 비라도 오면 발목 높이의 개울도 무릎까지 깊어진다. 


 개울에 당도해서는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징검다리를 안간힘을 쓰며 건너다가 운동신경 없는 나는 기어이 철푸덕 빠지고 울음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지킬 때보다 그냥 던져버리고 났을 때의 후련함이 너무 좋았다. 시골에서의 놀이는 재미와 위험 사이를 묘하게 넘나들며 작은 탐험가를 만들어냈다. 


 우리는 돌무덤 사이로 힘차게 흐르는 개울을 건너 부드러운 모래가 깔려있고 잔잔한 개울을 찾아든다. 신발은 벗어 해 잘 드는 돌 위에 얹어놓고 물고기 사냥을 나선다. 모래무지, 우리에게는 ‘종개’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물고기. 꼭 미꾸라지 비슷하게 생겼는데 녀석은 민첩하기가 선수다. 숨기도 잘 숨는다. 하지만 어린 사냥꾼들의 눈에 한 번 띄면 자신을 숨겼던 돌무덤이 그야말로 무덤이 되는 것이다. 언니, 나, 동생, 그리고 옆집 친구까지 분업은 철저하게 이뤄진다. 역시 대장답게 언니는 진두지휘를 한다. 모래무지는 주변에 드리운 우리 넷의 그림자를 보고 재빠르게 돌 밑으로 파고든다. 그러면 언니는 조용히 우리를 배치한다. 


 “내가 이쪽에서 막을 테니까 너는 이쪽으로, 너는 저쪽을 잘 막아. 그리고 힘센 넌, 사알살 돌을 들어 올려.” 


 언니의 사인이 떨어지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손발이 척척 맞는 우리는 모래무지를 꼼짝없이 에워싸고 언니는 맨손으로 그 팔딱이는 것을 움켜쥔다. 와락 움켜쥐어 힘이 들어간 손도 그 안에서 빠져나오려고 팔딱이는 물고기의 꼬리도 모두 생동감이 넘쳤다. 커다란 넷이서 작은 물고기를 하나 잡고서 요란한 승전보를 울린다. 그 사이 어디서 구해 왔는지 친구가 페트병을 가져오면 우리는 거기에 물을 가득 담고 모래무지를 담는다. 투명한 병에 갇힌 모래무지는 요란하게 곡선을 그리며 헤엄치다 갇힌 신세를 아는 듯 바닥에 바짝 엎드린다. 그러면 우리는 외로워 보인다며 친구를 만들어주자고 다음 사냥감을 물색한다. 그렇게 해가 질 때까지 투명 페트병 안에는 물고기들이 한 마리씩 늘어간다. 


 반나절 사이에 까맣게 그을려서는 꽃동네의 풍경과 이질감 없이 잘 녹아든 우리는 페트병을 들고 할머니에게 달려간다. 그곳에서 진짜 우리는 막 뒹구는 작은 꽃 같았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껄껄대며 “아이고 장해라.” 하는 할머니는 얼마 안 되는 물고기를 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날 저녁, 우리가 잡은 물고기는 밭에서 뽑아 숭덩숭덩 썰어 넣은 채소에 고추장을 풀고 수제비까지 뜯어 넣은 매운탕이 되어 할아버지의 술안주가 된다. 흥이 오른 할아버지는 노래를 흥얼대고, 종일 일한 할머니는 모기장을 내린 방문을 열어젖히고 드렁드렁 단잠을 주무신다. 


 한낮 여름의 열기가 아직 가시지 않은 우리는 모여앉아 ‘전설의 고향’의 ‘내 다리 내놔’를 연기하며 깔깔댄다. 마당에서는 달팽이 모양 모기향이 허옇게 타들어 가며 뚝뚝 고개를 떨구고, 씻고 돌아서도 금방 땀내를 풍기는 우리들의 종아리에는 시커먼 산모기가 죽죽 피를 빨아대며 하루가 저문다. 마당에 저절로 자란 달맞이꽃만 달을 맞아 부옇게 피고 귀신마저 땀에 절어 꾸벅꾸벅 잠드는 시골의 여름밤. 


 자음의 시작인 ‘기역’과 끝인 ‘히흫’처럼 내 마음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그곳의 기억. 나에게 고향은 달맞이꽃처럼 가끔 고개를 든다. 사는 게 어둡고 무서울라치면 떠올라 웃게 한다. ㅎㅎㅎ. 이젠 할머니 할아버지도 없고, 그곳도 아슴아슴 멀어져간다. 하지만 거기 모두 살아있음을 안다. 내 고향. 여전히 꽃, 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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