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향을 다녀오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서울과 다른 도시, 이곳 속초에서 관광이 아닌 나만이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바다를 보러 온 것도 회를 먹으러 온 것도 아닌 단순히 머리를 식히고 싶은 마음이었다. 3시간을 열심히 달려 근처 엑스포라는 공원에서 호수를 멍하니 바라본다.
다른 사람들에게 고향은 어떤 의미일까? 사실 어떤 의미가 되었든 고향은 어쩔 수 없이 나와 함께 가는 기억의 조각이다. 그리고 내 고향이 쉬었다 갈 수 있는 쉼터임에 감사함을 느낀다. 물론 매년 바뀌는 건물들과 아는 지인들의 모습도 가물가물한 상태지만 그런데도 이 공간이 가지고 있는 마음은 나름 따뜻하다. 산책을 마친 뒤 근처 도서관에 들러 속초와 관련된 도서를 살펴보는데, 같은 고향 작가들은 속초가 어떻게 바뀌어왔는지를 얘기하며 자신의 과거를 종종 투영했다. 이 사람들에게 고향은 너무나도 많이 변해버린 기억의 조각이 되었다. 시대가 변화하며 고향이라는 기억의 조각은 바스러지는 게 아닐까? 그 단단한 조각들이 점차 작아지며 추억을 회상하는 가루가 내 몸 안에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고향을 오면 내 본래 모습을 대면한다. 내가 어떻게 살아오고 있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절에 다 같이 모인 친척들의 안부처럼 내 현실을 직시하며 아주 조금은 나를 찾아가기로 그리고 현실을 무시하지 않기로 다짐하는 계기가 된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고향이다. 점점 형태를 찾아가기 어렵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확인하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예시로 나는 고향에서 게임을 할 생각도 들지 않았고 잠을 늦게까지 않아도 몸이 개운했다. 부모님이 부탁하지 않아도 요리를 도와주고, 식사 후에는 다 함께 산책한다. 서울에서 살던 내 모습과 다르게 부지런한 내 모습에 나의 정의를 다시 하게 되었다.
공간이 사람을 만든다지만, 나는 이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다시 점검하는 느낌이다. 어쩌면 여행을 가는 것보다 고향에서 힐링하는 것이 또 다른 여행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다면 고향을 들르는 것 또한 새로운 취미의 영역으로 정의될 수 있지 않을까? 고향을 방문하는 게 취미가 될 수 있다니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고향에서 힐링하며 조금은 다른 시야를 가지기 위해 새로운 장소를 방문하는 것처럼 발걸음을 옮겼다.
내 고향은 산과 바다, 음식으로는 오징어 회와 막국수가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온전히 ‘내 고향을 올바르게 정의할 수 있을까?’ 싶었다. 바다와 산을 벗어나 알 사람들만 알고 있는 그런 것을 찾고 싶었다. 결국 여행이 되었든 고향이 되었든 한 번의 방문만으로는 그 지역을 파악할 수 없다. 일본 여행으로 오사카에 가도 모든 장소를 구경할 순 없다. 결국 우리가 도시에 빠져드는 시간은 정해져 있고 생각의 한계는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년 넘게 속초를 살아도 모르는 정보가 가득하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은 것. 그렇기에 편안함을 느끼는 것. 고향은 내 조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