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제2의 전공이 있으십니까?
저는 만들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대학교에 가지 않지만, 대학교에 다닌다는 사실만으로 내 개인적인 전문성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처럼 자신이 전공한 지식을 그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나도 그랬다. 실용음악 작곡을 전공했던 내가 현실에 나와 꿈을 보여주기에는 실현 불가능한 것이 많았다. 회사는 당장이라도 엑셀을 입력할 사람이 필요한데 사무실 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음악을 만들며 상사의 반응을 기다리는 게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물론 고등학교 때는 내 전공이 나를 나답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전공을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어떻게든 돈을 벌거나 명성을 얻을 것이라 오해했다.
하지만 대학 생활을 하며 내가 가지고 있는 내향적인 성격이 외향적인 음악가와 잘 맞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노래를 들려주는 것보다 온전히 노래를 만드는 그 과정을 좋아했다. 그리고 공연에 서는 것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큰 활동을 하지 않고 사람들이 내 노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그 위험한 착각이 나를 다시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그렇게 20대 후반, 이리저리 직장에 휘둘러 다녔다.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하지만 그때 당시에 음악을 전공했던 것처럼 내 새로운 전공을 찾아 글을 쓰며 나를 정의하고 있다. 그때와 다르게 조금은 나은 점이 있다면 지방이 아닌 서울의 중심에서 나의 전공을 찾아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시로 지방에서 초중고를 졸업한 나는 실제로 내 전공이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 정보를 찾아보고 레슨 선생님께 자문을 구해봤지만, 자세하게 풀어낸 얘기여도 내게는 뜬구름과 같았다(학교 선생님도 내 전공에 대한 정보를 몰랐다).
성인이 되어 급작스럽게 전공을 선택하고 그 전공이 내 생각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누군가는 다시 새로운 전공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인생을 살아가며 학문적 지식이 그렇게 필요하지 않다. 대화를 나누거나 눈앞의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 기하학이나 철학과 같은 어려운 얘기보다는 오늘 먹은 밥과 내가 봤던 영화에 대한 공감이 중요하다. 하지만 글을 쓰는 입장으로써 그리고 창작한다면 전공적인 지식은 필수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전공이 남들보다 더 유니크하고 특별해야 하지 않을까?’ 많이 다루지 않는 주제지만 그 주제를 통해 인기가 생기기를 바라는 것에 앞뒤가 맞지 않는다. 세상은 어떻게 흘러갈지 전혀 예측할 수 없고 왜소한 정보만을 쫓아 얘기를 이어가기에 내 열정이 그 얘기에 뒤받쳐 줄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내 정보가 희소성이 있기를 바라는 것보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정보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정보를 쌓다 보면 나만이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시선이 생긴다. 독자들은 그런 새로운 틈, 그런 시선을 좋아한다.
결국 어른이 되어 새로운 전공을 만들어내는 것은 대학 생활과 다르게 쉽지 않다. 가장 먼저 막히는 부분을 생각해 본다면 어떤 것부터 배워야 할지 명확하게 짚어주는 사람들이 없고 인터넷을 찾아보아도 간단한 정보만을 어필한 후에 자세한 것을 배우고 싶다면 우리 학원에 다녀보라는 광고성 멘트를 확인할 수 있다. 대학교도 그랬지만 결국 무언가를 더 집중적으로 배우기 위해서는 결국 돈이 필요하다. 그다음으로 돈을 쓸 만큼 필요한 내게 필요한 지식인가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다. ‘영상 편집도 독학으로 할 수 있는데 굳이?’라고 생각하며 배우기를 놓치기 일쑤였다. 이렇게 학원이나 학교에서 제시한 금액을 내 나름대로 줄다리기하다 보면 기회를 놓치거나 지식의 전문성을 경험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리고 학원에 다녔다고 한들, 종종 운이 없게 학원에서 정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결국 어른의 공부는 예상할 수 없는 비즈니스다.
그렇기에 결국 어른이 되어 공부한다는 건 자신과의 싸움이다. 처음 시작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스스로 시간을 쪼개 새로운 것을 배워가는 자신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과정은 필요하다. 배우지 않으면 쓸 얘기들은 점점 떨어지게 돼 있다. 또한 나이가 들며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에 약점이 생기기 시작한다. 세상은 계속 변하며 진리처럼 여겨지는 정보로 한순간에 무너지기도 한다. 이런 세상의 흐름인데 나의 경험만을 생각하며 온전히 가지고 있는 내 생각이 정답이고 다른 정보들은 잘못된 것이라 믿기도 한다. 내가 얘기할 수 있는 것들이 바뀔 수 있다는 생각도 필요하다.
오늘은 ‘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다가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생각을 동시에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