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책 그리고 술이 있는 책방 '주책필름'
살아생전 처음으로 책방을 방문했다. 책방은 어떤 곳인지 어떤 매력이 있는지 궁금증을 참지 못한 채 책방을 찾았다. 서울에 있는 수많은 책방지기들의 장소 중 어떤 곳을 가면 좋을지 고민하다 사람이 많이 밀집되어 있는 신림, 그리고 내가 일하는 곳과 가장 가까운 이곳 '주책필름'을 찾았다.
평범한 날이었다. 퇴근하고 조금은 지친 상태에서 새로운 장소를 방문한다는 설렘과 함께 용기 내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런데 웬일인가? 사람이 없다.
손님은 그렇다 치고 사장님도 없다. 이내 당황한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주변을 살폈다. 버건디 책장에 놓여 있는 수많은 책, 사장님의 취향을 알 수 있는 바이닐과 영화 포스터, 조금은 우스꽝스럽지만 귀여운 돌멩이까지 내가 경험한 책방의 첫 만남은 예상하지 못한 소재들의 연속이었다.
'잠시 나갔다 올게요, 금방 돌아옵니다'
책상 모서리에 놓여 있는 메시지였다. 순간 무인으로 운영되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 안도감을 가진 채 좀 더 본격적으로 책방을 구경했다. 작은 공간임에도 책은 꽉 차 있다. 책장 군데군데를 살펴보니 생각의 조각들이 보인다. 어떤 책은 샘플로 서서 가볍게 내용을 훑어볼 수 있고, 어떤 책은 내 눈높이를 일부러 맞춘 것처럼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책에 붙어있는 메모지들은 나를 더 생각하게 만드는 매개체가 되기도 했다.
책장을 좌우로 나눈다면 왼쪽은 주로 영화와 희극에 대한 책들이 많았다. 이게 이 책방의 아이덴티티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문을 열고 들어올 때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배경으로 나오는 엘라피츠 제럴드의 목소리를 들으며, 차분해진 마음으로 '주책필름'의 생각을 살펴본다. 시선은 좌에서 우로, 중간중간 밑에 있는 책들도 살펴보며 가장 먼저 마음에 드는 책을 찾았다. <안 치운 게 아니라 원래 이래요>라는 6명의 작가들의 에세이 묶음이었다.
책장 오른쪽으로 이동할수록 독자들의 다양한 취향을 찾아볼 수 있었다. 어쩌면 이 책장이 사장님의 제안이자 머릿속인가 싶기도 했다.
책장과 주변을 둘러보고 난 후, 사장님이 오셨다. 처음 사장님을 뵀지만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았다(인상이 좋아야 책방지기도 하나보다).
이곳에 특이한 술을 팔고 있다는 사실은 정보 수집을 통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술 마시기 위해 '주책필름'을 방문한 건 아니다. 책방에 하나의 무기가 될 수 있는 '술'이라는 소재를 접하고 싶었다. 사장님께서 건네주신 메뉴판을 보니 이름이 생소한 칵테일이 보였다.
'뜨거운 사과'
무언가에 이끌리듯 그 칵테일을 주문했다. 의외로 뜨거운 과일은 맛있다. 바나나도 그렇고 사과도 그렇다. 하지만 '뜨거운 사과' 그 자체가 뭔가 백설공주에 나오는 독사과처럼 도수가 쌜 것 같았다. 그렇게 나온 '뜨거운 사과'의 모습은 시가를 문 애플파이와 같았다.
'맛있다!'
퇴근하고 '주책필름'을 종종 들리기로 마음먹은 순간이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칵테일을 한 잔 하며 '주책필름'이 나온 매거진과 인터뷰, 그리고 인스타그램을 보며 짧고도 긴 시간을 보냈다.
또 중간중간 구입한 책을 읽으며 사장님께 극장을 추천받기도 하고, 주전부리를 얻어먹기도 하고, 운영되는 모임에 대한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와 '주책필름'의 여운을 상기시킨 채로 책방의 존재 이유를 생각했다. 요즘 부쩍 책방을 찾아다니는 내가 바라본 이 '책방'이라는 장소는 얘기를 나누기 급급한 체인점 카페보다 더 깊고 사람다운 맛이 느껴졌다. 어쩌면 카페의 순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장소가 나타난다면 그건 아마 '주책필름'과 같은 책방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처럼 다양한 책방을 살펴보기 위해 인터넷을 서칭 하던 중 '동네서점'이라는 곳에서 다양한 서점과 책방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책방의 치열함도 알게 되었다.
거북이를 키우는 곳도 있고, 공예품을 만드는 곳도 있고, 독서 모임을 운영하는 곳도 있다.
그래서 더 궁금해지기도 했다. 사람의 관심을 이끌어 내야만 하는 책방의 숙명. 이 숙명에 맞서 위트 있는 술(대사로 시킬 수 있는 칵테일도 있다)과 희극과 영화 오브젝트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내가 방문한 첫 번째 책방 '주책필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