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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만글 Jun 17. 2024

따뜻함


남겨진 여름




외할아버지에 대한 나의 최초이자 가장 선명한 기억은 7살 때다. 어릴 때부터 여름 휴가철엔 가족과 시골에 있는 외할아버지 댁으로 놀러가곤 했다. 우리 가족 뿐 아니라 엄마의 동생인 이모네 가족도 함께 가곤 했는데, 사촌동생들을 만나 노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외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것이 나를 무척 들뜨게 했다.



나는 서울이 아닌 경기도에 살았지만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는 괘념치 않고 늘 서울에서 오느라 고생 많았다며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시곤 하였다.



시골에 가면 제일 신나는 것은 집에서는 볼 수 없었던 곤충들과 동물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차로 4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기 때문에 우리는 거의 매번 늦은 저녁에 도착해 잠들었다. 시골에서의 둘째 날 아침은 평소에 자던 늦잠도 잊은 채 항상 아침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곤 했다. 할아버지가 손주들을 위해 집 마당에 매미와 여치, 메뚜기, 잠자리 등을 잡아 뒷다리를 실로 묶어 나무에 매달아 놓으셨기 때문이었다. 아침 일찍 우리는 퉁퉁 부은 눈과 잠옷차림으로 마당에 나가서 곤충을 보며 눈을 반짝거렸다. 마당에는 큰 개도 있었는데, 큰 개를 무서워하던 우리가 대문을 지나갈 때마다 할아버지는 조용히 개 앞을 막아 서 주시곤 했다.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며 몰래 부르시곤 하셨는데 푸세식 화장실로 사용했었던 집 밖의 공간에는 가끔 고양이가 새끼를 낳아놓은 적도 있었다. 마당 한 구석에는 양봉통도 있었고, 가끔 외삼촌이 잡아다 놓으신 물고기 구경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동물들을 구경하다 보면 하루가 너무 짧았다.



할아버지는 벼농사도 지으셨는데, 어느 날은 논에 자전거를 타고 가신다는 할아버지께 나도 같이 가고 싶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지금으로 봐도 키가 컸어서 자전거 안장이 꽤 높았다. 나를 들어 뒷자리에 앉히고 할아버지가 안장에 타려고 하는 순간, 나는 그만 중심을 잃고 그대로 왼쪽 바닥으로 기울어졌다. 나는 바로 왼손으로 땅바닥을 짚어 떨어지진 않았지만 순간 고통이 밀려왔다. 7살이었던 나는 울음을 터뜨렸고, 당황한 할아버지는 자전거를 탈 생각도, 차를 부를 생각도 하지 못하고 무작정 나를 업고 달리기 시작했다.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할아버지는 우는 나를 넓은 등에 업고 엄마 아빠를 부를 새도 없이 집에서 멀리 떨어진 병원에 달려 도착했다. 병원에 가니 팔이 부러졌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그 자리에서 내 팔을 끼워 맞췄다. 생전 처음 겪는 고통에 나는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그 무뚝뚝하던 아빠도 고개를 돌려 차마 나를 보지 못했다. 나는 처음으로 깁스를 했다. 다행히 신경을 건드리지 않아서 수술은 면했지만 성장하면서 왼팔은 오른팔의 모습과는 다른 형태가 되었다.



그 사건이 있은 후 팔을 사용하는 데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으나, 시골에 갈 때마다 할아버지는 내 팔을 차마 만지지도 못하고 쳐다보기만 하셨다. 매번 엄마와 아빠에게 미안하다고, 사돈에게도 드릴 말씀이 없다고, 친 손주를 그렇게 만들어서 어떡하냐는 말만 하셨다. 할아버지를 놓치고 자전거를 꽉 잡지 않아 바닥으로 떨어진 건 나인데, 평생 본인의 탓이라고 생각하신 것이다.



사춘기가 되고 커가면서 곤충보다 다른 것을 더 재밌어 하는 나이가 되었고, 시골에 가는 횟수가 점차 줄어들었다. 그 후 할아버지가 많이 편찮아지시고, 사정상 부모님만 시골에 자주 내려가게 되었다. 나는 막연하게 할아버지 걱정만 하는 수밖에 없었다. 겨우 시간을 내어 부모님과 함께 할아버지를 만나러 간 날, 할아버지는 더 이상 내가 알고 있던 큰 키에 자전거를 타는 할아버지가 아니었다. 나를 업고 달리던 넓은 등은, 내가 커져서인지 할아버지가 작아져서인지 나의 몸집보다 작아져있었다. 건강이 많이 좋지 않아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할아버지는 나를 보고 팔은 괜찮으냐며 물으셨다.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났을까. 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 시골로 향했다. 장례식이 끝난 후 돌아간 시골집에서는 금방이라도 키 큰 할아버지가 뒷짐을 진채 문을 열고 나와 매미를 잡으러 가자며 내 손을 잡아줄 것만 같았다. 마당에 세워져 있는, 나를 태웠던 할아버지의 자전거도 할아버지의 등만큼 작아져있었다.



매년 여름, 반팔을 입을 시기가 오면 나는 나의 왼팔을 바라보며 매미소리를 듣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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