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출산의 기쁨와 슬픔
“별씨, 이거 두 줄 맞죠? 테스트기가 불량은 아니겠죠? 손이 덜덜덜 떨려요…….” 친한 언니가 불쑥 임신 테스트기 사진을 내밀었다. 첫째 아이에 대한 육아고충을 토로하면서도 둘째를 빨리 갖고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언니의 표정은 상기되보였다. 기다리던 임신이라고 했다. 계획하던 시기에 딱 맞춰 찾아와 준 둘째라고. 여자에게 임신은 무엇보다 큰 기쁨인 듯 보였다.
임신인 걸 알았을 땐 그냥 얼떨떨했다. 결혼을 했으니 언젠가 아이가 생기겠지 막연했던 내게 ‘임신’이라는 두 글자는 그저 반가운 일은 아니었다. 눈앞에 놓여 있는 맥주를 보며 아쉽다, 마음이 든 건 아직 준비되지 않은 엄마라 그랬을까?
드라마 속 여주인공처럼 임신을 확인하자마자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옆에 있던 남편은 ‘고마워’ 라며 감동스러운 표정을 짓는 그런 장면은 내게 없었다. ‘직장에 어떻게 말하지?’ ‘가족들에게는 어떻게 전해야 하나?’ 이유모를 부끄러움과 불편한 마음이 내 임신의 첫 시작이었다.
결혼을 했지만 여전히 산부인과는 편하지 않았다. 산부인과에서 진료를 보는 건 늘 불편했고, 임신 중기가 될 때까지 계속됐다. 임신은 했지만 그 이후에 일어날 일들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첫 아이를 임신 했을 땐 임신소양증이 나타났다. 매일 가려운 피부와 전쟁을 치뤘다. 둘째 아이를 임신 했을 땐 심한 입덧으로 출산이 가까워질 때까지 미식거리는 속과 전쟁을 치러야 했다. 분만예정일을 앞두고 ‘출산’, ‘출산후기’, ‘분만과정’, ‘분만법’, ‘진통’…… 등 많은 후기들을 검색했고 경험자들의 생생한 후기로 두려웠다.
임신을 핑계로 직장을 그만뒀다. 자유로울 줄 알았던 예상과는 달리, 험난한 임신의 과정은 다니던 대학원을 마무리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직장을 그만 둔 것은 한 편으로는 기쁘고 후련했지만, 대학원을 포기한 것은 아쉽고 슬픈 일이었다. 누군가에겐 큰 기쁨이기만 한 임신이 누군가에겐 슬픔을 가져오기도 하는 일이었다. 출산은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랬던가. 긴 진통의 시간을 견뎌 아이를 만났다. 아주 작은 아이였다. 두 눈을 꼭 감고 입을 앙 다문 예쁜 아이였다. 갓 태어난 아이라고 하기엔 머리숱이 새카맣게 작은 머리를 뒤덮고 있었다. 손가락 열 개, 발가락도 열 개. 우렁찬 울음소리까지 그 순간 모든 게 아름다웠다. 아이를 품이 안아든 순간 그 동안의 슬픔과 아쉬움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아기가 모유를 잘 먹어.”, “오늘 응가를 아주 잘 쌌어! 예쁜 황금색 똥이야. 볼래?”
내가 똥 이야기를 하며 이렇게 기뻐하고 있을지 어떻게 알았겠는가.
“아기 몸무게가 쑥 늘었어.” “오늘은 뒤집기를 했어!” 몸을 휙 뒤집고는 다시 되돌아 눕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아기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어느 날은 앉았고, 어느 날은 기었고, 어느 날엔 네 발자국이나 걸었다. 그리고 드디어 ‘엄마!’ 하고 불렀다.
혼란스럽기만 했던 임신과 출산의 과정들이, 슬픔의 시간들이 자라는 아이를 보자 점점 기쁨으로 변해갔다. 아이를 보면 행복했고, 매일 설렜다. 물론 누군가 “육아의 시간은 정말 매일 행복해요?”하고 묻는 다면 “아니, 그렇지만은 않아”라고 대답할 것이다. 다만 슬픔과 고통이 어떻게 기쁨과 행복으로 변해가는지 선명하게 경험하는 일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어쩌면 이것이 사는 일이 아닐까?
오늘이 힘들고 슬프더라도, 그 슬픔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날 짙은 슬픔이 기쁨의 순간으로 변화 할 계기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것을 슬픔의 이면, 양면의 메시지로 남기고 싶다. 나는 출산과 육아를 통해 또 다른 세상을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