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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용구 Mar 25. 2024

연구자로 살아가기

(하편) 그냥 대학원이 힘들다고 말해

전편: 연구자로 살아남기

    조금 더 빠르게 하편으로 찾아왔어야 하는데, 그 사이에도 내가 찾은 고민의 대답이 정신 승리나 자기 합리화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갈등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내놓을 대답에 대한 확신은 지금도 없어요. 또 회의하고, 낙담하고, 다시 고민해서 긍정하고. 그렇게 살겠죠. 그렇게 살면 되지 않을까요.



    이달 초, 오랜 구독자분에게서 인스타그램 DM을 받았다. 말하자면 팬레터였습니다. 히히. 잘 읽고 있다는 과분한 말씀과 함께 안부를 물어주셨는데, 그때 받은 편지가 정말 논문 낼 때에도 큰 힘이 되었다. 그러면서 독자 님이 제일 좋아하는 글알려 주셔서 나도 오랜만에 그 글을 다시 찾았다.

    ... 돌파하는 이여, 너는 아프게 빛나고 있다. 솔직히 내 글을 내가 다시 읽으면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면 민망한 일이겠으나, 아프기만 하던 요즘 누군가가 나의 빛을 봐주길래 조금 민망하고 말지 하며 살짝 울었다. 그래, 연구 힘들지. 진짜 숨이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무거운 스트레스가 나를 짓눌러 이 짓을 왜 했지,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다 거듭 생각하게 되는 일이다. 하지만 저 글에서도 적었듯이 그것은 "궤도에 오르는 일"이어서 그렇다. 그러니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힘든 것은 연구가 아니라 박사과정이었다.


    미래를 생각하면, 또 주변을 생각하면 불안하니까. 졸업이라는 목표 아래에서는 한 번의 실패가 부담스럽고 불안한 시간의 연장으로 여겨지니까. 연구 그 자체가 주는 즐거움과 기쁨은 생각하지 못하고 조바심에 매몰되는 것이 사실 나의 괴로움의 이유였다. 연구실을 졸업한 사수 선배를 만났는데 만족도가 상당히 높아 보였다. 일은 대학원에서 했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논문을 써야 한다는, 정확히는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부담은 없다고 했다. 애초에 연구실에 있을 때에도 "연구가 재밌다"라고 말한 적은 없었던 형이었지만 요즘은 돈도 적당히 잘 벌고 여유도 찾아서 "삶이 재밌다"라고 말했다. 연구실에서의 선배 모습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그의 행복이 큰 위로와 응원으로 다가왔다.


    졸업을 하고도 연구를 계속하고 싶은가, 그건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다. 일단 졸업부터 한 다음에 다시 생각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졸업한 후에 정말로 연구가 재미없으면 어쩌지? 그럼 안 하면 된다! "그럼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네가 할 수 있는 게 뭔데?" 같은 비아냥은 무시할 수 있다. 뭐든 하겠지. 나는 아마 뭘 해도 평균 이상은 해낼걸. 무슨 자신감이냐고 물으면, 내가 박사과정을 해냈기 때문에.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를 않아.


    이를 테면 박사 과정에 대한 자부심이다. 그러니까, 박사 학위 그 타이틀 자체가 가져다줄 명예나 보상에 대해서는 기대하지 않아야 한다. 나의 지식, 나의 연구 결과는 전편에서도 말했듯이 1년도 채 안 되어 바래질 허무한 것이다. 실제로 지난 5년 동안 내가 알던 방법론은 얼마나 사라지고 또 나타났는지. 이미지 생성 AI를 생각하면 누구나 GAN을 떠올리던 시절이 있었다. 2024년 현재는 Diffusion 모델을 빼고는 생성형 AI를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Diffusion model을 처음 제안한 연구도 GAN (2014) 제안 시기와 비슷한 2015년 공개되었으니, 정말 세상 일은 모르는 일이다. 특히 빠르게 변화하는 AI 연구 분야에서, 내가 공부한 것으로 과연 30대는 때울 있을까 하는 걱정도 사실 었다. 이제는 걱정 안 한다. 못 해. 절대 못 해. 그러니까 새로 공부해야겠지. CNN architecture 모델들로 이 분야를 접한 내가 ViT architecture에 더 이상 겁먹지 않는 것처럼. NeRF며 Gaussian Splatting이며, 이런 새로운 개념들을 계속 공부하며 재미를 느끼는 나는, 이 바닥에서 적응해 나갈 것이다. 그것을 훈련하는 것이 박사 과정이다. 졸업 후에는 과정을 조금 덜한 부담과 나은 환경에서 이어갈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연구라는 행위를 삶에 동반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내게 많은 기쁨을 안겨줄 것이라고 믿는다. 이것은 며칠 전 연구실 회식에서 내가 폼 잡다가 깨닫게 된 내용이다. (...) 술에 적당히 젖은 3차, 건너 테이블에서는 학부 새내기들이 으쌰으쌰 술을 먹고 있어서 더욱 기세가 오른 나는 박사 진학을 앞둔 후배에게 꼴사나운 조언/푸념을 해버렸다.


"박사? ㅈㄴ 힘들지. ㅈ같지. 나도 박사 올라갈 때 논문이 한 개도 없었는데, 진짜 학회 시즌마다 논문 못 낼 때 패배감 열등감 오지게 폭발했거든? 심지어 하, 밤새 가면서 생명 갈아가면서 써. 근데 뭔 개ㅈ같은 리뷰어 만나서 리젝 당해. 그럼 기분 또 ㅈ같지. 근데 또 리뷰 내용 읽어보면 ㅆ 틀린 말은 없어. 걍 내가 부족해. 어 미안하다, 부족한 주제에 깝쳐봤다, 싶어. 걍 때려치우고 싶어. 그런데 그냥 하는 거야. 될 때까지 하는 거야. 그러다 보면 있잖아, 한 번은 된다? 그럼 ㄹㅇ 진짜... 와... 하길 잘했다 싶어. 이 모든 과정이. ㅅㅂ 깨지고 깨지고 깨지다가 한번 내가 무언가를 깨뜨리는 그 순간이. 그냥 뭔가 상징적이야. 뭔 느낌인지 알겠어?"


    으. 술냄새. 입 걸걸한 거 봐. 오늘 친구 놈이 "너 논문 하나 쓰더니 자존감 아주 높아졌다?" 하던데, 맞는 듯. 논문 많은 사람들 눈에는 얼마나 같잖을까? 또 논문이 아직 없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띠꺼울까? 아무튼 말하면서 지 혼자 눈물이 살짝 고여 가지고는 (이 눈물의 의미는 '하 ㅅㅂ 구인용 존나 멋있어'인가? 죽고 싶네;)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내가 언젠가 연구자의 길을 걷게 되지 않더라도, 이 길에 도전했던 것을 후회하지 말기로.


    뭐 그렇다. 요즘도 논문 제출은 기회마다 하고 있지만 그것이 잘 붙지는 않는다. 역시 뽀록이었나, 실력을 더 갈고닦아야겠다고 겸손해지는 요즘이지만 내 자존감의 상승 하락과 무관하게 나는 이 과정을 여전히 하고 있다. 내가 세상에 기여할 유의미한 연구를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기대도 이제는 모두 작아졌으나 가끔 논문의 인용수 하나 오른 것을 확인할 때는 또 한껏 들뜨기도 한다.


    이 글을 쓰면서, 오랜만에 초심을 다시 찾는다.

내가 대학원을 온 이유는 삶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함이었다. 대학원에서 겪은 무수한 실패와 몇 안 되는 성취들이, 과연 세상에 어떤 의미를 남겼는가는 잘 모르겠으나 나의 인생은 조금 더 깊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직업으로써의 연구는 당장 졸업 후에 그만둘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배움의 길은 끝이 없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는 계속 새로운 것을 배우고 발전하는 세상과 발맞춰나가야 한다는 것. 지금 내가 얻고 있는 배움의 경험과 공학자의 시야는 미래에 분명 큰 자산으로 남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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