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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용구 Apr 18. 2024

화락

헤어질 결심

화락


    바쿠로초 역으로 향하는 길이었습니다. 스미다 강으로 연결되는 작은 하천 위로 짧은 다리를 지나는데, 고개를 살짝 돌리니 벚나무가 선선한 바람에 꽃잎을 컨페티처럼 흩뿌리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멋진 광경이었는지, 정차해 있던 트럭 운전수가 나와 사진을 찍기도 하였더랬죠. 그 모습을 담아내는 10초 남짓한 시간 동안에 머릿속에 떠오른 표현이 있었습니다.

    나무가 불에 타는 것만 같았습니다. 푸르게 돋아난 새순이 시원하게 타오르는 불꽃같아서, 꽃이 흩날리는 모습이 마치 하얀 재가 날리는 듯했달까요. 꽃잎은 바람에 의해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영구치가 유치를 밀어내듯 꽃 핀 자리마다 초록의 잎들이 움트고, 나무는 안녕의 손짓을 하듯 춤을 추며 꽃을 놓으며 그렇게 자신의 방식으로 봄을 마무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풍경에서 나는 어떤 부러움을 느끼기까지 했습니다.

    무색, 무취.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의 꽃시절은  여백이 많은 이력서와도 닮았습니다. 나다움에 대한 무지와 불신으로 망설이다가 놓친 많은 기회들, 정치인의 공약처럼 실현되지 못한 버킷리스트. 소중한 경험을 대신한 이런저런 핑계들은 나의 청춘을 흐린 날의 하늘처럼 희뿌연 색깔로 점철하였습니다. 시작도 보지 못하고 끝난 가능성들은 미완의 글처럼 내 안에 쌓여 부끄러움을 가르쳤습니다. 왜 나는 나일 수 있었던 나이의 날들을 내가 아닌 무엇이 되려 했었나, 그것이 나의 가장 큰 후회였습니다.

    그러나 아시겠지만 나는 나의 봄을 사랑하였습니다. 진부하고 평범한 나의 청춘은 누가 뭐래도 나의 역사였고, 그 과정에서 피워낸 나의 꽃들은 헐벗은 영혼을 치장하기 위한 몸부림이었을지언정 가식은 아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꽃은 아니었지만 누군가는 나의 곁에서 사진을 찍기도 하였습니다. 눈부셨던 날들과 맑지 않았던 날들, 그 모두를 나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미숙함과 미련함도 인간미로 치부하는 나에게는, 내 어린 날은. 사랑하고 사랑받은 나의 이십 대는 단연코 핑크빛 행복의 시대였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사랑하는 나의 청춘과 벚나무처럼 작별할 것입니다. 그 시절을 움켜쥐려 안간힘 쓰다가 하릴없이 꽃 흘리는 것이 아니라,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매일 이별하며 서른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서늘한 바람을 반기며, 날로 가혹해지는 태양을 기꺼이 맞이하며, 지나간 모든 봄날을 축복하는 마음으로 종이꽃가루 날리듯 나의 꽃시절을 놓아줄 것입니다. 재를 털 듯 화락(花落)의 춤을 추려합니다. 그것이 수더분함으로 치장했던 내 모든 체념과 굴복에 대한 속죄 같아서 그렇습니다.


    그래요, 내 어린 날은 시늉과 모순으로 가득했습니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억지로, 억지로 해낸 적이 있고 행하지 못한 적은 더 많습니다. 나는 내가 쓴 글에 못 미치는 사람이고, 그것을 지적당할 때 나는 부끄러워 웃었습니다. 나를 부정하는 말 앞에 고개를 끄덕이곤 했습니다.


     나는 이제 혹자가 위선이라 불렀던 나의 전부를 모두 인정하고 내려놓겠습니다. 대신 희고 여린 꽃잎들을 질긴 초록의 잎으로 탈바꿈하겠습니다. 더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한껏 푸르겠습니다. 하늘에 닿도록 당당히 가지 뻗고 이 땅에 단단히 뿌리내리겠습니다. 울창하게, 울창하게 나를 키워 커다란 나무 되고 넓은 그늘 되겠습니다.

    피는 것보다 지는 것이 아름다운 존재에게서 희망을 본 적 있나요. 내 어린 봄의 불안과 후회는 다가오는 바람에 미련 없이 떠나보내고, 기지개 켜듯 여름을 시작하겠습니다. 헤어질 결심을 일찍 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이제 나는 알았습니다. 봄은 첫 번째 계절이고 그 뒤에는 다시 겨울이 아닌 한낮 같은 여름이 있다는 것을. 꽃을 잃은 나무는 더 강하고 싱그러운 잎을 갖게 된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아쉬움보다는 가장 진심의 안녕을 담아 남은 화락의 시간을 보내려 합니다.   

2024, 청명과 곡우의 사이에

구인용 바침



    훈련소 입소를 앞두고 연차를 끌어 써 5박 6일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의 자세한 후기는 훈련소 일정을 마친 후에야 쓸 수 있겠지만 이 글만큼은 입소 전에 마무리 짓고 싶었다.

ㄷㄷ

    계기는 아래의 풍경이었다. 잘 찍지는 못했지만, 나무 옆으로 흰 바람이 불었다. 촬영하는 동안에도 수백 개의 꽃잎이 떨어지는데, 어떻게 이렇게 일순간에 함께 떨어질 수 있지, 하며 한 번 놀랐고 그 시간의 지속이 마치 나무가 무한 개의 꽃잎을 가진 것처럼 느껴져 다시 놀랐다.


    위 글은 그 풍경에 대한 감상이자, 남은 대학 시절을 보내는 마음가짐에 대한 각오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문학의 뜨락에 대한 글이다.


    KAIST 문학 동아리 문학의 뜨락은 내가 2016년 대학에 입학한 후로 햇수로만 9년째 몸 담은 공간이다. 이토록 꾸준히, 오래 활동한 부원은 내가 알기로는 내 위로도 없다. 어떻게 보면 내 대전에서의 삶을, 젊은 날의 낭만을 상징하는 동아리여서 나는 이 집단에 빚진 것 같은 마음이 늘 있다.


    그래서일까, 대학원생의 신분으로 학부 동아리 활동을 이어나가는 것에 대한 자격지심이 있었다. 주위에서 "문뜨? 그걸 아직도 하냐? 너도 참 지독하다;;" 같은 말을 많이 듣기도 했고. 스스로도 8살 차이 나는 동생과 술잔을 맞댈 때는 뭔가 죄를 짓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나를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은 기형도의 독설이다.

그러나 부러지지 않고 죽어있는 날렵한 가지들은 추악하다.
-기형도, <노인들> 중


    나는 내가 뜨락에 남아있는 추한 고목이 아닐까 걱정이 든다. 그래서 자꾸만 이 집단에서 내 역할을 찾으려 하고, 더 섬기려 하고, 그러는 과정에서 혹시나 꼰대짓으로 알게 모르게 이 친구들에게 부담을 주는 건 아닐까도 우려한다. 이런 내 맘이 무색하게, 잘 알지도 못하는 놈들이 자꾸 나한테 노욕이니, 추태니 꼽줘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미안, 나는 이제 뻔뻔해지기로 했다. 나도 안다, 내 가지에 있던 순수한 꽃잎들은 많이 떨어져 나갔다. 나는 저 스물 초반의 청춘들처럼 앳되고 예쁘지도 못하다. 다만, 나는 앙상한 고목은 아니다. 내 나름의 경험과 지혜로, 갈고닦은 다정함으로. 분명 내가 이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아직 이곳에 내 역할이 있다.


    고백하면 요즘 문뜨가 근래 몇 년 중에 제일 재밌다. 몇 년 만에 계룡산 MT도 따라가서, 동생들에게 술게임도 배우고 고기도 구워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톡방에 올라오는 이름들 하나하나가 사랑스럽고 애틋하고 그렇다. 그리고 문뜨 사람들도, 나를 많이 좋아해 준다. 더 이상 그 사실을 부정하는 실례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문뜨가 아닌 사람들이 내 문뜨 활동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에 대해 더는 신경 쓰지 않으련다.


    어차피, 졸업의 순간은 다가온다. 대전을 떠난 후에도 문뜨에 집착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철 지난 추태일 것이다. 그러니 아직은 아직이다. 분명 끝이 정해져 있는 이 봄날을 나는 자격지심과 미련 따위로 장식하지 않겠다. 문뜨를 떠나는 날, 못다함에 대한 아쉬움은 없도록. 우리끼리 신나게 춤추고 마시고 웃고 떠들고 하면 좋겠다. 라스트 댄스, 이른바 헤어질 결심이다.(*올해 졸업 아님)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이형기, <낙화> 중


    분분한 낙화. 졸업 예정일 정해지면 짱 슬플 듯.


    모쪼록 문뜨 동생들에게 더 좋은 형, 멋진 선배로 나중에 기억될 수 있도록 나는 최선을 다하고 싶다. 이걸 읽는 문뜨 사람 입장에선 쪼끔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싶긴 한데, 원데이 투데이도 아니니까. 그럼에도 저를 좋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3주 후에 봅시다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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