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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미 May 06. 2024

엄마는 치매, 혼자 둬도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

엄마는 치매를 앓고 있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은 초기였고 크게 문제 되는 증상은 없었습니다. 정상적인 대화며 생활도 가능한 수준에 출근하는 오빠의 점심 도시락을 챙기기도 했으니까요. 함께 살던 오빠가 근무지 발령으로 떠날 날을 앞두고 홀로 남게 되었지만, 걱정과 달리 잘 지냈거든요. 치매라는 사실을 잊을 만큼 괜찮았습니다.    

 

“은미나? 이몬데, 엄마가 좀 이상해진 것 같다. 자꾸 헛소리를 하는데 아무래도 니가 엄마한테 가보고 병원에 모시고 가봐야 할 것 같은데.”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이모의 말만으론 엄마가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 짐작하기 어려웠습니다. 다만 단순 치매 증상으로 치부하기엔 모호한 설명이 마음을 헤집어 놓았습니다. ‘괜찮겠지. 별일 아닐 거야.’ 엄마에게 전화를 거는데 콩닥콩닥 가슴이 뛰더군요.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벨 소리만 시끄럽게 귓가를 울리다 자동응답으로 넘어가곤 했고요. 


허겁지겁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아이는 지인에게 맡기고 서둘러 강릉으로 출발했습니다. 먼 길이라 숨을 길게 들이마시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습니다. 평소 내 운전실력으로 우리 집에서 강릉까지는 4시간 거리. 휴게소에 들르고 쉬면서 가지만 마치 옆 동네 장에 가는 사람처럼 아무 생각 하지 않고 쉼 없이 달렸습니다. 고향 집 근처 어딘가에 엄마가 있길 기대하면서요.     


바다 쪽으로 더 바깥쪽으로 복잡한 도심을 지나 엄마가 사는 동네에 다다랐습니다. 고개를 들어 아파트 단지를 올려다보며 정문 쪽으로 운전대를 꺾었습니다. 버스정류장 옆 죽 늘어선 난전 상 할머니들 사이, 소방수 기둥 뒤에 서 있는 노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듯한 초라한 노인을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표정이며, 행동이며 차림새마저도 낯설지만, 시선을 끄는. ‘아는 사람인가?’ 눈을 비비고 다시 찬찬히 봤습니다.      

엄마였습니다. 틀림없이 우리 엄마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알던 엄마는 아니었습니다. 너무도 황망한 눈빛을 하고 있었거든요. 허름하고 좁고 빛이 들지 않아 습습한 상가 건물 2층에 세 들어 살 때도, 쌀이 없어 국수와 수제비로 끼니를 때우고, 밀린 집세를 독촉하는 집주인의 채근에 시달리며 여기저기 급전을 빌리러 다닐 때도 보이지 않았던 눈빛이었습니다. 심장이 두 쪽으로 쩍 갈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사진: Unsplash의 Mario Heller


엄마는 늘 빨간 립스틱을 발랐습니다. 눈화장은 생략했지만 새초롬하게 앙다문 입술은 언제나 빨간색이었습니다. 웨이브가 살짝 들어간 갈색 머리는 항상 목덜미까지 내려오게 길렀고 옆머리는 귀 뒤로 넘기는 걸 좋아했습니다. 하얗고 윤기 나는 피부에 자신 있는 표정, 빛나는 웃음을 지닌 세련된 옷차림을 즐기는 단정한 사람이었습니다. 입성을 중요하게 생각해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우리 형제의 옷을 사 줄 땐 유명 브랜드 매장에 들어가는 사람. 단단하고 좋은 옷을 입어야 오래 입기도 하거니와 보기도 좋다나요. 


안방 옷장에도 옥색과 살구색, 감색 등 고운 빛깔의 한복 저고리와 치마가 걸려있었습니다. 의상실에서 구매한 듯한 양장도 있고요. 자주색 벨벳 투피스와 롱코트가 눈에 선합니다. 그 옷을 입고 외출하는 걸 본 적은 없지만, 사진첩 속에는 자주색 벨벳 투피스를 입은 엄마가 포즈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취향대로 멋을 낸 아줌마들은 비스듬히 몸을 옆으로 돌려 일렬로 서거나 앉아 있고요. 단풍이 한창인 산 입구와 유명한 사찰의 대웅전과 불상 앞에서 커다란 바위와 계곡 같은 데서 말이죠. 사진첩엔 멋쟁이 아줌마들이 많았는데 그중 최고의 멋쟁이는 우리 엄마입니다. 덕분에 사진 속에선 현실보다 부유하고 행복해 보이고요.  

   

그런 엄마가 아무렇게나 옷을 걸쳤습니다. 염색한 지 한참 지났는지 성성한 백발로 립스틱도 생략한 채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입을 반쯤 벌리고 뭔가를 기다리는 모양으로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걸음을 옮겼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혼자 중얼거리다가 입을 다물기도 하면서요. 사람들에게 꿀리는 거 싫고 자존심 강하고 자랑하는 것 좋아하는 엄마가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모양새였습니다.  

   

“엄마 왜 그러고 서 있어. 여기서 뭐 해? 응. 나랑 집에 가자.” 


성큼성큼 엄마에게 다가가 놀란 티를 감추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었습니다. 엄마는 멍한 눈으로 모르는 사람 쳐다보듯 나를 보았습니다. 저리 가라는 듯 손을 훠이훠이 저으면서요. 


“엄마! 여기서 뭐 하냐고?” 


그제야 알아본 듯했습니다. 다른 때와 달리 이상했습니다. 멀리 사는 딸이 갑자기 나타났는데 놀라지도 않고, 무슨 일로 왔냐고 묻지도 않고 매일 보는 사람에게 일상을 말하듯 자기 말만 했습니다.      


“오빠가 온다고 전화 안 했나?” 

“오빠가 온 데?” 

“가. 아저씨가 데리러 온다고 했어.” 


엄마는 오빠가 온다고 했다가 아저씨를 기다린다고 했다가 말을 바꿔가며 거리를 서성였습니다. 


“아냐 엄마 나랑 집에 가서 기다려. 오빠가 온다 해도 아직 멀었어. 내가 전화 통화했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보다가 집 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얼른 적당한 자리에 주차 후 엄마 뒤를 바짝 따라붙었습니다. 집으로 올라가며 재차 왜 거기 그러고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엄만 정확하게 자신이 기다리는 사람을 특정하지 못했거든요.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긴 복도 끝 세 번째 집. 현관문은 열려있었습니다. 집에 들어서자 눈에 띈 건 방바닥에 놓여 있던 물에 만 밥과 간장 한 종지. 급히 먹다가 놓고 나간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깔끔한 엄마답지 않게 바닥 여기저기에 밥알이 흩어져 있고요. 간장 종지엔 몇 알의 밥풀이 들어가 있고 밥그릇 주변엔 물이 흘러내려 있었습니다. 놀란 마음과 함께 몸도 움츠러들었습니다. 숭숭 구멍 뚫린 마음이 보이는 것 같았거든요.


“엄마 이건 뭐야. 무슨 밥을 이렇게 먹어.” 

“……”

“이거 치운다.” 

“이리 내. 내가 먹을 거야.” 


베란다로 걸어 나가 멀리 시선을 두기만 할 뿐 아무 대답이 없던 엄마가 얼른 뒤돌아 왔습니다. 내 손에서 숟가락을 낚아채 밥을 먹었습니다. 간장을 수도 없이 물만 밥에 넣었지만 한 숟가락도 제대로 먹지 않더군요. 숟가락을 입에 가져가는가 싶으면 주위를 살피다 베란다로 나가고. 목과 몸통을 길게 늘여 온 신경을 현관에 두기도 하면서요. 불안함에 경계를 놓지 못하는 황량한 사막 가운데 선 힘없는 짐승 같았습니다. 나는 그저 바라보았고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음 놓을 길을 잃은 엄마처럼 내 마음도 길을 잃고 헤맸고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습니다.


그날의 기억은 여기서 끝났습니다. 고향 집에서 잤는지 바로 짐을 챙겨 우리 집으로 왔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생경한 엄마 모습에 당황하여 어쩔 줄 몰랐으나 잘 돌봐드리면 ‘괜찮겠지’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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