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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미 May 20. 2024

엄마 돌봄, 인내심이 바닥나는 데 걸리는 시간

엄마의 초점 없던 눈이 반짝이는가 싶더니 혼잣말을 했습니다. 후다닥 현관으로 달려가 문에 귀를 댔습니다. 자리로 돌아와 앉으며 골똘히 생각에 잠긴 듯했습니다. 사과 한쪽을 입으로 가져가려다 말고 다시 귀를 세웠습니다. 가만있는 나를 툭툭 쳤습니다.     


“은미야, 저기 누가 왔다 나가봐.”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저기 사람이 왔잖아.”

“응? 아닌 것 같은데.”

“아니야, 저기 뭐이 있다니. 좀 나가보라니.”     


빨간 구두를 신고 흰 양복을 입은 사람이 문밖에 서 있다고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문밖을 확인하고 들어왔습니다. 엄마처럼 귀를 세웠지만 들리는 건 없었고 밖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런 요구가 한두 번일 땐 괜찮았습니다. 몇 번이나 계속해서 나가 보라고 하니 화가 나더군요.


엄마는 무엇인가에 생생하게 반응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고,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게 확실했습니다. 나를 없는 사람 취급했고, 나와 눈이 마주친 짧은 순간에도 온전히 내게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큰 소리를 내야만 잠깐 현실을 의식할 뿐이었습니다.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하고 누웠던 엄마가 몸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허공에 대고 소리를 빽 지르더니 주먹질을 했습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었습니다. 한숨이 새어 나오고 겁이 났습니다. 두려움에 방으로 들어가 찬송가를 부르며 기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엄마가 간헐적으로 허공에 내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과한 행동이 불러온 알 수 없는 공포에 떨렸습니다. 스멀스멀 연기처럼 올라오던 두려움이 나를 삼켰고 버럭 소리 질렀습니다.   

  

 “엄마, 제발 그만 좀 해!”     


밤이 되면 환청과 환시는 심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모두 잠든 밤에 크게 떠들어대듯 외치는 소리에 온 집안 식구들이 화들짝 잠에서 깼고 가장 많이 당황한 건 나였습니다. 불안과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고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가슴팍에 파고드는 두 살배기 아들과 토끼 눈을 뜨고 안기는 어린 딸들을 끌어안고 다독였습니다. 집 안에 감도는 낯선 기운이 삼킬 듯 전신에 달려드는 것 같았습니다. 괴로운 밤을 보냈습니다.    

 

늦게 일어난 엄마는 힘없이 대충 아침밥을 먹고는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늦잠을 자는 엄마가 낯설었습니다. 무엇이 사람을 이렇게 만든 걸까요. 아침 일찍 일어나 간단한 집안일을 하고 외출 준비까지 마치고도 시간이 남아 쪽잠을 청하던 분이었거든요. 문지방 근처에 팔베개하고 누워있던 모습이 아직도 선합니다.  

    

그래도 창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이 좋았고 집은 평화로웠습니다. 집 안 구석구석을 쓸고 닦고 베란다에 빨래를 널었습니다. 쓰레기를 배출하느라 밖에 나갔다 왔을 때 엄마는 웅크린 자세로 거실에 누워 노란 방석을 베개 삼아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까칠해진 얼굴 위로 머릿결이 흘러내려 있었고요. 머리맡엔 함께 잠든 아들 녀석도 보였습니다. 할머니와 한 베개를 베고 대자로 뻗어 있었습니다.


한없이 평온해 보이는 아들 녀석이 귀여워 피식 웃다가 그늘진 엄마 얼굴이 슬퍼 미소를 거두었습니다. 깨어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나를 보고 맑게 웃어 주길 바랐습니다. 깨끗하고 선명한 눈으로 바라봐주었으면 좋겠다고요.  

    


“뭐야, 왜 쳐다보는데.”

“그냥”

“보지 마.”

“이뻐서 그러지. 내가 내 새끼 쳐다보지도 못하나?”

“아 정말, 그렇게 보는 거 싫다고.”     


엄마는 나를 빤히 쳐다보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쳐다보며 괜히 싱긋이 웃었습니다. 그러다 뜬금없이 한마디 툭 던졌습니다. “날 닮아서 못나서 속상하다.” 엄마가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는 눈빛이 싫었습니다. 못된 송아지처럼 들이받는 취미가 있어서였는지, ‘날 닮아 못생겼다.’라는 말이 뒤에 붙어서 그랬는지 기분 나빴습니다.


내가 예뻐서 그런 건데 그때는 그 마음을 몰랐습니다.


자다 깨기를 반복하던 엄마가 앉아 있는 배경 너머로 해가 지며 하늘이 형언하기 힘든 색으로 물들었습니다. 이대로 시간이 머물렀으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잉크를 엎은 듯 짙고 어두운 밤하늘도 예뻤습니다. 청명한 공기가 흐르고 가로등 불빛이 어둠을 밝히니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저녁상을 물렸고 엄마는 조용했으니 지금만 같으면 바랄 것도 없을 듯합니다.  

    

그러나 엄마는 어제보다 더 이상해졌습니다. 화가 났습니다. 나른한 일몰 뒤 찾아오는 쉼과 여유는 헛된 바람일 뿐이었습니다. 평온했던 오후가 그립고 밖이 너무 어두워서 냅다 소리를 질렀습니다. 엄마를 작은 방으로 억지로 끌고 들어가 문을 닫았습니다. 나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만하라고요. 잠시만이라도 눈에 안 보이길 바랐고 무서웠거든요.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엄마와 어떻게든 방에 밀어 넣으려는 내가 뒤엉켰습니다. 큰 소리를 냈고 몸싸움을 했습니다. 거실 바닥에 앉아 장난감을 쥐고 놀던 아들 생각은 까맣게 잊었습니다. 딸들도 거실에 함께 있다는 사실도 잊었고요. 놀란 아이들이 내게 달려와 안겼습니다. 눈이 동그래져서 두 팔을 벌리고 달려드는 모습에 정신이 들었습니다. 막내아들은 안고 딸들을 데리고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멍하니 앉아 아이 등을 토닥였습니다. 둘째 딸은 곁에 바싹 붙어 앉아 있었고 큰딸은 여전히 할머니 걱정을 했습니다. 몇 분의 시간이 흘렀을까요. 닫힌 안방 문밖에서 현관문 여닫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멀찍이 서서 긴장한 채 서 있던 큰딸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큰딸이 문을 열어 보더니 말했습니다.     


“엄마 할머니가 없어. 밖으로 나간 것 같아. 뒤따라 가볼까?”

“아니 가지 마. 그냥 둬. 좀 있다 엄마가 나가볼게. 멀리는 못 가실 거야.”     


큰아이는 말렸고 막내를 안고 몸을 흔들며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엄마가 집 밖을 나간 순간 안도가 밀려왔거든요. 잠시만이라도 안정을 찾고 싶었습니다. 엄마를 돕겠다는 마음이 물거품이 될까 두려웠지만, 몇 분이라도 두려움에서 해방되고 싶었습니다.


‘아냐 지금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 안고 있던 아이를 내려놓고 부리나케 밖으로 나갔습니다. 퍼뜩 정신이 돌아왔거든요. ‘멀리 가지 않고 집 밖에 있을 거야’ 괜찮은 척 마음을 다잡으며 거리로 나왔습니다.


엄마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숨 돌리고 마음의 안정을 누렸던 짧은 시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어둠이 짙어진 빌라 단지의 좁은 골목길을 지나 불빛이 환한 대로가 보이는 곳까지 두리번거리며 나갔습니다. 심장 소리가 크게 들렸고 바로 나가서 잡지 않은 걸 후회했습니다.  

    

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했습니다. 엄마가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 3일째. 내 인내심이 바닥나는 데 걸린 시간입니다. 실은 사흘을 꽉 채우지도 못했습니다. 내 힘은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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