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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미 May 27. 2024

원망한다고 달라질 일이 있겠습니까

“경찰 섭니다. 어젯밤 할머니 한 분이 택시를 타고 강릉까지 갔는데 택시비를 내지 않고 내렸다고 신고가 들어왔네요.”

“네?”     


형제들은 엄마를 입원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지만, 나는 고집을 부렸습니다. 당분간 집에서 모시면서 옆에서 돕겠다고요.      


“아냐 언니 내가 돌볼 수 있어.”

“그래도 언제든 힘들면 말해.”      


길게 끄는 작은 언니 목소리엔 걱정이 묻어났습니다. 옅은 한숨 소리도 또렷이 기억납니다. 병원에 입원시키자는 언니를 설득했습니다. 잘 챙겨 먹지 못해 야위고 입맛을 잃고 앓아누웠던 작년에는 거뜬했거든요. 그때처럼 엄마를 도울 수 있으리라 믿었으니까요.     

 


“엄마, 목소리가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이러다 엄마 죽을 것 같다. 입맛도 없고 기운도 없고.”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엄마 목소리는 가늘고 힘이 없었습니다. 입맛이 없다니 의아했고요. 감기를 앓을 때면 밥을 잘 먹지 않는 내게 엄마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당신은 살면서 한 번도 입맛을 잃은 적이 없다면서요. 젊어서는 병원 신세를 진 적도 없고요. 그랬던 분이 입맛도 없고 기운도 없다니 의아했습니다.     


한달음에 달려간 고향 집. 왔냐는 인사도 없이 누운 엄마는 살이 쏙 빠져서 반쪽이 된 모습입니다. 형편없이 야위고 늙어버린 모습, 놀라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의젓하게 누군가를 보살펴 본 적은 없지만, 정성을 다해 돌보자 결심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엄마니까요.     

 

“엄마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내가 다 해 줄게.” 딸아이 방에 누운 엄마는 힘없이 누워 손사래를 쳤습니다. “먹고 싶은 거 없어.”      


신혼 초에 여러 가지 죽 요리법이 실린 노란색 표지의 요리책을 한 권 샀습니다. 검은깨 죽으로 시작해 콩나물 김치죽까지 그림의 떡이었고 요리책은 덩그러니 책장에 꽂혔습니다. 드디어 요리책이 실력을 발휘가 때가 되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책을 펼쳤습니다. 마침 잣이 있었거든요. 잣죽을 끓이는 건 매우 간단합니다. 물에 30분쯤 불린 쌀을 곱게 갈고 잣은 도마에 으깨어 잘게 다졌습니다. 불린 쌀 간 것과 잣을 충분한 물에 넣고 저어주면서 푹 끓이면 됩니다.      


알맞게 잣죽이 끓여졌고 그릇에 담아 밑반찬과 함께 상을 차렸습니다. 내 입맛에도 그만입니다. 어깨가 으쓱했습니다. 일주일 정도 정성으로 삼시 세끼 밥을 차렸습니다. 국도 종류별로 끓이고 뭐든 드실 수 있게 조리해서 드렸습니다.      


식사량이 조금 늘었습니다. 처음엔 죽을 넘기는 것조차 어려워하셨는데 입맛이 돌아오는 것 같다며 가슴을 쭉 펴셨습니다. 누워만 있더니 거실에도 나오고 조용하시더니 말도 늘었습니다.   

   

평생 든든히 계실 줄 알았던 엄마가 약해지고 나서야 자발적으로 줄 수 있는 사람이 된 순간이었습니다. 받은 게 많으면 베풀기도 잘할 것 같지만 외려 더 모를 때도 있거든요. 살면서 처음 정성을 쏟아본 느낌은 괜찮았습니다. 내가 좀 대견하단 생각을 했었더랬죠. 효녀 반열에 선 듯해 기분도 좋고 자랑스러운 딸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어려서 못되게 군 것도 만회할 것 같았고요.   

  


그 순간을 생각했습니다. 형제들에게도 보란 듯이 한몫하고 싶었습니다. 잘하면 엄마와 형제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도전이었습니다. 용기는 낸 건 좋았지만, 아픈 사람을 돌보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은 더욱. ‘적당히’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마냥 받기만 하며 살았던 나는 기준 미달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노력도 못 해보고 불쑥 날아온 센 주먹에 한 대 얻어맞고 만 기분이었거든요. 


스포츠는 잘 모릅니다만 복싱 선수에겐 기본적으로 맷집이 있어야 견디고 버티며 어떻게든 승률을 높이는 건데. 훈련이 안 된 나는 근육도 맷집도 없으니 바로 K.O. 패를 당한 경우라고 해야 할까요.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무엇이 마음을 헤집어 놓은 걸까요.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으면 삶을 놓아버린 사람이 된 걸까요. 잘 있어 주길 바랐는데, 혼자도 잘 견뎌줄 거라 믿었는데, 어떤 상처와 차가움이 할퀴고 갔길래.      


확언할 순 없지만 엄마는 의지하고 믿었던 사람에게 감당 못 할 상처를 받은 것 같았습니다. 치매라 하기엔 의아한 상태에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다 알아챘습니다. 앙칼진 목소리에선 냉정함이 묻어났고 쏟아놓는 말들이 아파서 괴로웠습니다. 무슨 말이 오갔는지 더는 알고 싶지 않아 귀를 막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습니다. 치매 인 데다 약해져서 위로와 지지가 필요한 사람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치명상을 입히는 건 아는 사람, 때론 가족입니다.     

 

독한 말로 엄마를 상처 입힌 사람이 미웠습니다. 

그러나 밉지만, 이해했기 때문에 아무 말 못 하고 끙끙댔습니다. 따질 용기도 없었습니다. 다툼만 커질 테고 속만 시끄러울 테니까요. 그런 연유로 더는 말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탓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돌이킬 수도 없는데 누굴 원망한다고 달라질 일이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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