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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미 Sep 23. 2024

돌미나리즙을 마시면 살이 빠진 데

내 이름을 부를 때

내겐 세 명의 자녀가 있습니다. 방에 들어가면 부를 때까지 나오지 않는. 한참을 불러야 겨우 비비적거리며 나왔다가 순식간에 스멀스멀 방으로 기어들어 가는.     


“왜 자꾸 불러, 아 그냥 혼자 텔레비전 봐. 어차피 지금 TV 보면서.”      


억지로 끌려 나온 아이들은 짜증을 내며 정곡을 찌르고 들어가 버립니다. 실상은 딱히 할 말도 없으면서 부른다는 걸 알기에 어쩌진 못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포기할 사람은 아닙니다. 어떻게든 옆에 앉게 만들고 아이 옆으로 바짝 몸을 붙입니다. 어린아이처럼 응석을 부리며 장난을 걸고 나를 밀어내는 아이들과 실랑이합니다. 아이들과 곁에 있으면 즐겁고 함께 있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인가 소파에 반쯤 누워 각자의 방에 틀어박힌 아이들을 부를 때였습니다. 한참을 이름을 부르다 말고 입을 닫았습니다.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르던 순간이 떠올랐거든요.     




엄마가 줄기차게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잠깐만 나와서 이것 좀 보라고요. 지치지 않나 봅니다. 방문을 열고 백기를 들어 보일 때까지 쉬지 않고 내 이름을 부르니까요. 나는 거칠게 방문을 열고 발을 구르며 나왔습니다. 엄마는 텔레비전 앞에 반쯤 누워 요상 망측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아 왜 자꾸 불러. 왜?”

“너도 살 빠지게 운동 좀 해. 이렇게 하면 살 빠진 데.”

“엄마나 열심히 해.”

“야~ 저 여자 좀 봐라. 이렇게 해서 저렇게 허리가 날씬해졌단다.”

“에이 몰라 싫어 안 해”     


사진: Unsplash의 Jonathan Borba


엄마는 훅훅 숨을 몰아쉬며 아주 밝고 힘 있는 얼굴로 운동복 차림을 한 여자가 하는 동작을 따라 하고 있었습니다. 순간 나는 몸을 홱 돌려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습니다.    

  

사실 내 취미는 다이어트였습니다. 스트레칭을 하고 춤을 추면서 살을 뺀다고 요란을 떨었습니다. 종일 굶었던 날도 가끔 있고요. 그런데 굶어서 살 빼는 일은 곧잘 실패했습니다. 어찌어찌 자정은 넘겼는데 허기를 참지 못해 밥을 먹을 때가 많았거든요.    

  

그런 날은 엄마가 잠들길 기다렸다가 조용히 부엌으로 가 밥을 한 대접 퍼 담았습니다. 살그머니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고 고추장 한 숟가락을 퍼 참기름병을 안고 후다닥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살을 뺀다는 사람이 하루를 못 넘기고 밥을 퍼먹는 모습을 엄마에게 들키는 건 창피했거든요.   

   

야심한 밤에 몰래 먹는 밥은 왜 그렇게 맛있던지. 그런 비밀을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는 종일 굶은 애가 살은 안 빠지고 늘 그대로인 걸 보면서 날씬하면 얼마나 이쁘냐고 속을 벅벅 긁곤 했습니다.     


“뭐야 이게”

“돌미나리즙이야. 마셔. 자연산 돌미나리즙을 매일 마시면 살이 빠진 데.”

“그래? 아으~~ 써 못 먹겠다. 안 먹을래”     


사진: Unsplash의 Fallon Michael


엄마가 불쑥 내민 유리잔에 든 초록색 물. 점점 펑퍼짐해지는 막내딸 외모에 신경 쓰였나 봅니다. 잔뜩 찡그린 얼굴로 돌미나리즙을 마시는 딸을 엄마는 기분 좋은 얼굴로 바라보았습니다. 이런 행동은 매일 반복되었고요. 이걸 마신다고 진짜 살이 빠질지도 의문이거니와 한 번은 마셨지만, 그 후론 받아먹는 척하다 엄마가 안 볼 때 슬쩍 버리곤 했습니다. 무척 썼거든요. 다행히 엄마의 돌미나리 착즙은 시들해져 갔습니다.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아나운서 목소리에 잠을 깨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화장실에 가려는데 안방 문간에 누운 엄마가 보입니다. 아침이면 으레 마주치는 특별할 것 없는 풍경입니다. 엄마는 화장을 곱게 하고 출근 준비까지 마친 상태로 누워 아침 프로를 보다가 잠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삐걱 화장실 문을 여니 어제 벗어놓은 옷은 손 빨래해 빨랫줄에 걸어 놓았네요.   

   

엄마는 넓은 안방을 두고 거실에서 생활했습니다. 퇴근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텔레비전을 켜는 일이고 밤새 텔레비전을 켜놓기 일쑤였습니다. 방문을 닫고 있어도 거실에 켜둔 텔레비전 소리는 곧잘 내 방까지 들려왔고 자다 말고 일어나 나가 “엄마 텔레비전 좀 꺼. 소리를 줄이든지.” 말했거든요. 때로는 살그머니 방을 나와 거실에 누워있는 엄마를 살폈습니다. 엄마가 잠든 걸 확인하고 TV를 끄면 어떻게 알고 잠에서 깨는지, “끄지 마. 보고 있어.” 라 했습니다.     

 

사진: Unsplash의 Nick Romanov


텔레비전을 끼고 사는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잠을 자면서도 텔레비전을 끄지 못하게 하는 것도요. 그런데 이제와 생각해 보니 엄마에게 텔레비전은 애인이요. 친구였습니다. 학교였고 선생이며 잡다한 지식의 창고였습니다. 내 이름을 밝은 목소리로 여러 번 부를 땐 필시 텔레비전을 보다가 좋은 정보를 발견한 겁니다. 공유하고 싶고 알려주고 싶은 어떤 것이 나온 거죠. 무시해 버려서 크게 기억나는 게 없지만요.  

   

돌미나리즙을 짜주며 다이어트를 응원하는 엄마가 짜증스러웠습니다. 다이어트는 내가 알아서 할 일이지 엄마 소관이 아니니까요. 밤새 텔레비전을 켜놓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정보를 공유하려는 이유는 알고 싶지도 않았고요. 아무것도 간섭 말고 그냥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 컸고 알아서 할 테니까요. 엄마는 엄마지 친구처럼 지낼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뭐. 내가 도움을 요청할 때 있어 주면 되는 보호자 정도로 족하니까요.  

   

대들고 퉁퉁거리면서도 엄마에겐 그래도 되는 줄 알고만 살았던 시절. 은연중에 엄마의 나쁜 점만 마음에 새겼고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심술을 부렸던 철없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소파에 반쯤 몸을 기대고 엄마 생각에 잠겼습니다. 내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에서 사랑을,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려 하던 마음에서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텔레비전을 밤새 켜놓던 모습에서 외로움과 헛헛함을 봅니다. 문득 아픔을 내어놓아도 말이 날까 두렵지 않은 진실한 친구는 있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엄마 마음을 더듬어 봅니다. 표현하는 방법에 서툴렀어도 마음 깊은 곳에 새겨져 있었을 자식을 향한 마음이 뭉근히 밀려옵니다.     

 

오늘도 엄마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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