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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미 Sep 09. 2024

오늘 같은 날, 엄마를 만나면 좋겠습니다

2016년 9월. 달이 기울 때

2016년 9월 온갖 풍성함을 뒤로하고 달이 기울 때 엄마도 영영 떠났습니다. 엄마를 보내고 바닷가에 갔습니다. 바람이 많이 불더군요. 해변 가까이 다가가 두 팔을 벌려 바람을 껴안아 보았습니다. 바람이 나를 거칠게 안아 줍니다. 바다에 가면, 해변에 서서 바람을 맞으면 아픔도 후회도 바람과 함께 다 날아가고 가벼울 줄 알았는데 여전히 마음은 무거웠습니다. 눈물이 나지 않았거든요. 울고 싶은데 눈물이 안 났습니다. 그래서 웃었는데 편하지도 않고요. 아이들 얼굴을 마주 보며 웃었지만 어색하기만 합니다. 웃고 있어도 그늘이 드리운 걸 내가 아니까요.      


“지금 갈까?”

“어쩌면 오늘 밤은 괜찮을 것 같아. 늦었으니 내일 오든지.”   

  

엄마가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연락을 받은 시간은 늦은 밤이었습니다. 한달음에 달려가진 않았습니다. 언니도 무디고 담담한 어조로 말하는 동생에게 어서 오라 재촉하지 않았습니다. 생각은 ‘지금이라도 가야겠지.’ 했지만 아침을 맞고야 말았습니다.  

    

사진: Unsplash의 Mario Heller

엄마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내가 상당히 멀찍이 서 있는 걸 알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슬플 줄 알았는데 아무렇지도 않았거든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보다 감정의 동요가 없었습니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남일처럼 현실을 인지할 뿐이었고요. 어둡고 막막한 감정이 목구멍을 비집고 나올 듯 말 듯 망설이기만 했습니다. 누군가 울어서 조금 울었지만 메마르고 무딘 감정이 들여다 보일 뿐이었습니다.      


나는 줄곧 행복하게 살아보겠다고 뛰어다녔고 주어진 일을 해내는 데 집중했습니다. 나를 돌보느라 바빴고 엄마를 돌보고 위로하는 일은 늘 우선순위에서 밀렸습니다. 그랬지만 행복해지지도 않았습니다. 외면하고 싶은 현실은 거침없이 말을 걸어와 산통을 깼으니까요. 그래도 틈만 나면 도망치며 살았습니다. 도망친 거리만큼 불행하다고 느꼈는데도요. 덕분에 아픔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흔한 눈물조차 제때 흘리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 주지 못해서 마음에 드는 멍, 죄책감만 짙어졌습니다.   

  

얼마 전 시장에 갔을 때가 생각납니다. 엄마를 닮은 사람을 봤거든요. 눈이 마주쳤습니다. 당황해서 얼른 고개를 돌렸습니다. 잘못을 들켜버린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 몸을 말아 움츠리곤 도망치듯 시장통을 빠져나왔습니다. 울뻔하긴 했지만 울지 못했습니다. 괴로웠습니다. 이제는 목놓아 울고 싶거든요.    

 

정면으로 맞을 걸 그랬다 후회했습니다. 참고 견디고, 마음 없이도 임무 수행하기에 게으르지 말걸 그랬습니다. 이렇게 후회하고 제대로 울지도 못할걸 알았으면 나 말고 엄마를 살릴 걸 그랬습니다. 이렇게 많이 사랑하니까요. 다 주지 못한 감당 못할 사랑이 내 삶에 남아서 걸리적거리니까요.   

   

사진: Unsplash의 Shane Rounce

올봄엔 하늘이 푸르고 맑은 날이 많아서 마음이 자꾸 설레었습니다. 창 밖으로 꽃비가 내립니다. 엄마 생각이 납니다. 오늘 같은 날은 꿈에 그리운 엄마를 만나면 좋겠습니다. 고향집 현관에서 마주쳐도 좋고, 휴가 때 함께 백숙 먹던 계곡가 평상에서 봐도 좋고, 함께 김치 담그던 우리 집도 괜찮고. 엄마 등에 업혀 작은 발을 짤랑짤랑 흔들던 그때로 돌아가도 좋을 것 같습니다.   

   

김수현 작가는 ‘모든 이별에는 길든 짧든 애도가 필요하고 애도란 마음의 저항 없이 충분히 슬퍼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하면 충분히 슬퍼하는 것일까, 얼만큼이면 충분한 걸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쩌면 나에게 충분한 애도란 평생 해야 할 일이지 싶습니다.


거울을 보다가,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사진첩을 들여다보다가, 엄마를 마주 할 테고, 밥을 먹다가 길을 걷다가 추억이 더듬어지는 많은 순간 엄마가 보고 싶고 그리워질 테니까요. 한 순간도 떠올리지 않고 산 적 없으니까요.    

  

사진: Unsplash의 Ümit Bulut

이제 무언가 하지 못했다는 유통 기한 지난 죄책감 따위는 버립니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고 현재는 흘러가는 것. 물처럼 흐르다 후회와 아픔은 굽어진 골짜기를 만나 깨어지고 사랑했던 순간의 반짝임만 남겨 마음에 새겨야겠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가 되어 흐르고 있으니까요. 5월엔 엄마가 잠든 동산에 올라 보고 싶은 마음 곱게 펼쳐두고 오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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