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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미 Nov 04. 2024

기록 덕분에 힘을 얻었습니다

동네 하천인 남대천에 뒷집 순희와 놀러 나갔습니다. 맨발로 하천을 건너다 순희가 깨진 유리 조각에 발을 베였습니다. 순희는 아프다며 울고 걷기 힘들어했습니다. 피가 철철 흐르는 걸 보니 지혈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붕대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내 옷은 반바지라 벗을 수도 없고 골몰해 있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건 순희의 노란 병아리색 원피스였습니다. 치맛단이 여러 단인 데다 얇고 가벼워서 한단 뜯어도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아프다고, 못 걷겠다고 울면서도 치맛단은 안 된다고 우는 순희를 설득해 치맛단을 북 뜯었습니다.

사진: Unsplash의Gabby Orcutt

치마는 그대로 주룩 뜯겼지만 한단만 뜯을 수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두 번째 단도 뜯어졌거든요. 힘을 줘 첫 번째 치맛단을 뜯어내야 했지만 마감이 튼튼한 치맛단은 길게 늘어져 대롱거릴 뿐 뜯기지 않습니다. 일곱 살 아이의 손 힘이 대단하지도 않았을 테고요.     


순희는 더 심하게 울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푹 내리깔았고요. 지혈도 못 하고 옷만 찢어진 셈이 되었으니 큰일 났다 싶었습니다.      


마침 집에는 일찍 퇴근한 엄마가 빨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마당 끝에 얌전히 쭈그리고 앉아 땅따먹기를 하는데, 순희 엄마가 우리 집에 왔습니다. 구구절절 치맛단 뜯어진 이야길 하는 것 같았죠.     

 

툇마루 끝 기둥을 꼭 붙잡고 엄마 눈치만 살폈습니다. 엄마가 순희 치마를 사주겠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속상해하던 순희 엄마가 돌아가시고 야단을 맞을까 봐 겁에 질려 있는데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야단을 치지 않으셨죠.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 아침 동네 입구 양옥집에 사는 명숙이네 집에 놀러 갔습니다. 명숙이 남동생이 꼬질꼬질 땟국이 흐르는 손에 들고 있던 500원짜리 동전 두 개를 자랑했습니다. 탐이 났습니다. 오백 원 동전 두 개를 내가 갖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녀석은 좀처럼 손에서 동전을 놓지 않았습니다.    

  

은근히 다가가 수작을 부렸습니다. 동전을 들고뛰면 잃어버릴 수 있으니 돈을 경대 위에 놓으라고요. 한참 술래잡기하며 정신없이 노는 척하다가 친구와 동생이 이불속에 숨었을 때 동전 두 개를 집어 들고 나왔습니다. 참 어리석고 뻔한 도둑질을 했죠.    

  

사진: Unsplash의L W

집 앞 논밭에 하얀 눈이 가득 쌓였고 내 무릎 높이만큼 눈이 많은 날이었습니다. 오후에 명숙이 엄마가 우리 집에 찾아왔습니다. 명숙이와 동생은 눈물 콧물 범벅으로 얼굴이 빨갰습니다. “저 누나가 내 돈 갖고 갔어.” 꼬맹이가 나를 가리켰죠.   

   

명숙이 동생은 울어서 빨개진 눈으로 나를 범인으로 지목했고 나는 아니라고 발뺌을 했습니다. 단지 바닥에서 동전을  주웠고 마당에 던졌다고 뻔한 거짓말을 했습니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요.    

  

그때 옆에 섰던 언니가 코웃음을 치고는 나를 냅다 눈밭으로 떠밀었습니다. 많은 사람 앞이라 쪽팔려서 살 수 없었습니다. 자백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고요. 억울해하며 울기만 했고 끝내 자백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도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과거를 떠올리면 가끔 안갯속을 걷고 있는 듯합니다. 어떤 것은 감정까지도 선명하고 또 어떤 것은 전혀 알 수 없거든요. 그런 일이 있었던 건 확실한데 엄마가 정말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건 가슴속을 헤집어도 아픈 말에 베인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다른 정황들에 대한 기억이 커서 엄마의 야단이 당연할 뿐 크게 다가오지 않았는지도요. 그래서 나는 엄마는 잘못을 크게 야단을 치기보다 적당한 선에서 눈 감아 주는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엄마는 너그럽고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겐 과하게 허용적이며 선 없는 모습이 얼굴을 찡그리게 했는지 몰라도 누군가에겐 편안함을 주었습니다. 단순한 편안함이 아니라 이해와 공감이 있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네요. ‘정이 많다’는 말도 알맞고요.   

  

잘 용서해 주는 엄마, 정이 많은 엄마, 이해심 많고 너그러운 엄마, 그리고....     

사진: Unsplash의lilartsy

엄마를 기록하려고 기억을 더듬었지만 문득 엄마보다 나를 기록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모든 관심은 내게 집중돼 있구나’ 깨달았습니다.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어쩔 수 없이 엄마는 조각난 기억에 의지해 어떤 면은 추측으로. 또 누군가의 증언으로 태어났습니다. 이상한 건 좀 편집되었더라도 엄마를 기억하며 나는 행복해지고 있습니다.     

 

그저 묻어 버리고만 싶었던 과거를 사랑스럽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피하고만 싶었던 내 약함을 안쓰럽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이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기록 덕분에 잘 살아낼 힘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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