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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인 Nov 29. 2021

석양의 달달함

사랑하는 것들이 무엇이 있었던가? 


검은 점이 조금 박힌 바나나, 편의점에서 파는 미니 꿀 호떡과 우유 먹는 것, 우아한 듯하지만 실용적으로 보이는 편안해 보이는 옷, 달달한 음악이 흐르는 카페에서 조용히 있기, 종종종 부모의 손을 잡고 짧은 발걸음으로 따라가는 세 살배기 아이의 걸음, 이른 봄 이제 막 나기 시작하는 어린잎의 이름 모를 연둣빛과 비슷한 그 색, 한 겨울 찬바람이 마구 마구 할퀴듯 지나가는 머리 깨질 듯한 한강의 바람, 남산을 빠르게 걸어 올라간 후 팔각정에서 쉬는 가뿐 숨, 해가 뜨기 전에 한강을 달리다 어느 순간 해가 뜨기 시작하면서 찬란하게 바뀌는 하늘 등 환하고 달고 아름답고 따뜻한 것들을 좋아한다.


이렇게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생각하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팍팍했던 마음이 풀어지는 느낌이 든다. 참 신기하게도 그것을 지금 다 가진 것이 아님에도 생각만으로도 행복한 마음이 드는 것을 보니 행복이라는 건 그리 어렵게 찾거나 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건 아닌가 보다. 


  얼마 전 내가 좋아하는 달달한 음악이 흐르는 카페에서 시간을 좀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려 나왔는데 하늘이 옅은 보라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나는 어쩜 이렇게 예쁜 하늘이 되는 시간에 딱 맞춰 잘 나왔냐며 나를 스스로 칭찬하고 그 하늘을 보며 운전했다. 마침 집 가는 방향이 해가 지는 방향으로 가서, 가는 내내 그 예쁜 노을을 시간차로 볼 수 있었다. 십여분이 흐르는 동안 하늘은 점점 붉게 물들기 시작하며 태양이 산 너머로 넘어가고  하늘은 온통 노을색으로 가득 찼다. 그 하늘을 보고 있노라니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해지는 아름 다운 석양도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면서 하늘은 연보라에서 붉게 물들기 시작하더니 점점 검붉은 하늘로 바뀌었다. 석양이라는 두 글자에 정말 다양한 모습을 짧은 시간 동안 바뀌는 것이 신기했다.  24시간 중에 딱 10여분의 그 하늘은 자연의 신비 같은 커다란 의미부터 나에게 따뜻한 행복을 전해주는 소소한 의미까지 모두 지니고 있었다. 


나는 단것을 좋아한다. 고3 때는 매일 300원짜리 자유시간을 사서 3~4입에 털어 넣는 모습을 보고 내 친구 밍이는 늘 걱정된다고 말렸다. 과일도 바나나 같은 단맛만 있는 과일을 좋아한다. 단순히 내 입에서 단맛을 제공하는 것들도 좋아하지만 음악도 달달한 것, 영화도 달달한 영화, 단어도 달달한 단어를 좋아한다. 쓴 맛이 나는 아메리카노는 잘 먹지 못하고 달달하게 시럽 잔뜩 들어간 라떼를 좋아하고 웃음에서 달콤함이 묻어 나는 미소를 짓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데 내가 바라보는 저 석양은 연하늘과 연보라의 달달함으로 시작했지만  어두움이 오기 바로 직전 그 검붉은 모습에서는 도통 달달함이 보이지 않아 내가 사랑하는 것들 속에 석양을 넣어야 하나 싶어 졌다, 검 붉은 석양의 모습은 마치 뱀파이어가 떠 오를 정도로 검붉었으며 웅장했고 쓸쓸했고 외로워 보였다. 저녁의 어둠을 선보이기 전에 그 진한 어둠을 숨기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방금 산으로 넘어간 화려한 태양을 숨기려고 하는 건지도 모를 정도로 그 속내도 전혀 알 수 없을 것같이 음흉한 듯했다.  한 10분 정도의 시간 동안 석양은 정말 다양한 하늘을 보여주었다. 그러니 나의 이 고민은 당연한 것이었다. 너무나 다양한 모습을 빠른 시간 안에 다 보여준 저 석양을 나는 넣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사랑하는 것들"주머니에 석양의 연보라까지만 넣으면 안 될까? 그렇지만 저 검붉은 하늘도 석양이지 않은가?


사람은 복합적이고 다면적이어서 동서남북으로 모두 돌려보면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 각기 다 다른 사람 같기도 하다. 짧은 시간 안에 다 보여준 석양과 다르게 사람은 오랫동안 보아야 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선생님을 대할 때의 공손한 내 모습과 좋아하는 친구를 대하는 활기차고 행복한 내 모습, 여행할 때의 붕붕 떠서 신나 하는 내 모습과 분노할 때의 화내고 그 후 쌀쌀맞은 모습이 모두 다 다르지만 분명 나인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다른 각양각색의 모습들이 모두 다 나이니 이런 나를 사랑해 달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니 나에게 석양도 이리 당당하게 짧은 시간 다 보여준 것이 아닐까?

첫사랑 같은 수줍은 듯한 연보라로 하늘 한쪽을 조금 물들인 모습도 해를 반쯤 걸치고 널아갈까 말까 하며 붉은색으로 고민하는 모습도 해를 다 산너머로 꿀꺽 삼키고 검붉은 색으로 만족스럽게 다 넘겼다고 자랑하듯 웅장하게 온 하늘을 덮어버리는 검붉은 모습이 모두 다 석양인 것이다. 

그러니 나는 나의 사랑하는 것들 속에 석양을 넣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나를 설레게 하고 운전하다가 신호 걸리길 기다린 후 사진을 찍고 싶게 만든 그 석양도 나의 "사랑하는 것들" 주머니에 넣기로 했다. 


나를 충분히 설레게 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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