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몽환의 새벽에서 깨어나는 음향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by 클래식덕후문쌤
IMG_4845.jpeg

- Herbert von Karajan, Berliner Philharmoniker

- 1974.10/1975.2, 베를린 필하모니홀



Episode.1


어둠이 아직 완전히 걷히지 않은 새벽에 음악을 들으면, 현실과 꿈의 경계가 잠시 흔들리는 듯합니다.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은 바로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작품입니다.


꿈과 현실이 서서히 뒤섞이고, 억눌린 감정이 새벽안개처럼 번지는 순간.


카라얀과 베를린필이 1974년에 남긴 이 녹음은,


그 모호한 새벽 공기를 음향으로 응고해 놓은 듯한 느낌을 줍니다.


베를리오즈가 이 곡을 쓰던 시절도 실은 ‘꿈’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 여배우, 해리엇 스미드슨을 향해 사랑과 집착 사이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습니다.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감정이 쌓이자, 그는 결국 음악 속으로 그 감정을 던져 넣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예 이 곡 전체에 줄거리를 붙여 놓았고, 그 덕분에 '표제음악'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표제음악은 제목이나 이야기를 통해 음악이 어떤 장면을 그리는지 밝혀 두는 형식인데,


베를리오즈는 이 방식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상상을 그대로 악보에 옮겨놓았습니다.



IMG_4846.jpeg



Episode.2


그가 만든 이 교향곡은 말 그대로 ‘듣는 꿈’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그의 저서 <꿈의 해석>에서 꿈을 단순한 잠꼬대가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 눌러 둔 욕망과 두려움이 모양을 바꿔 떠오르는 무대라고 설명했습니다.


겉으로는 엉뚱해 보이는 장면도 사실은 내면의 충동을 은유한 것이라고 말이지요.


베를리오즈가 이 곡에 심어놓은 '이데 픽스'(사랑하는 여인을 상징하는 멜로디)는


그런 프로이트적 상징과 무척 닮아 있습니다.


꿈속 인물이 여러 얼굴로 변해 등장하는 것처럼,


이 멜로디는 다섯 악장에서 모습을 달리하며 반복적으로 떠오릅니다.



IMG_4847.jpeg



Episode.3


카라얀의 1974년 녹음은 이 ‘꿈의 구조’를 유난히 섬세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당시 베를린 필의 음향은 오늘날보다 한층 어둡고 깊게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현악은 연기처럼 번졌고, 금관은 차갑지 않으면서도 묵직한 광택을 품고 있었습니다.


카라얀은 이 질감을 활용하여 이 작품을 날카로운 비극이 아니라, 천천히 번지는 악몽처럼 들리게 합니다.


무엇보다 마지막 악장에서 들리는 실제 교회의 종소리는 다른 모든 녹음과 구별되는 특징입니다.


카라얀은 단순한 타악기를 사용하는 대신 실제 종의 울림을 녹음해 넣었습니다.


저 멀리 새벽 공기를 울리는 듯한 종소리는


죽음, 심판, 혹은 영원한 집착의 기운을 실어 나르며 꿈과 현실의 경계를 한순간 흐트러뜨립니다.


그 소리가 너무도 실제적이어서, 그 순간 우리는 이 소리를 음악으로 듣는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꿈속에서 튀어나온 환청으로 듣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워집니다.



IMG_4848.jpeg



Episode.4


이제 악장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려 봅니다.


첫 번째 악장에서 예술가는 새로운 사랑을 마주한 설렘과 혼란 속에 빠져 있습니다.


이데 픽스는 희미하게, 그러나 떨리는 숨결처럼 되풀이되며 마음의 불안한 기대를 드러냅니다.


두 번째 악장에서는 그 설렘이 사회적 공간으로 확장되어,


화려한 무도회 속에서 예술가는 사람들 사이를 부유하듯 떠다니며 그 여인의 모습을 찾아 헤매게 됩니다.


왈츠의 반짝이는 표면 아래에는 여전히 놓지 못한 욕망이 잔잔하게 깔려 있습니다.


세 번째 악장에 이르면 자연 속에서 들려오는 두 목동의 피리 소리가 고요한 평화를 암시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답 없는 불안이 내부에서 퍼져 나오고, 사랑의 그림자는 점점 더 길어집니다.


네 번째 악장에서는 결국 그는 꿈속에서 자신이 그녀를 죽였다는 상상을 하게 되고,


장송 행렬이 그의 곁을 지나갑니다.


이 장면은 꿈의 논리에 충실합니다.


억압한 감정이 기괴한 형태로 돌출되는, 프로이트가 말한 ‘변형된 욕망의 무대’와도 같습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악장에서 예술가는 스스로의 파멸을 바라보는 듯한 환각 속 악마의 축제를 맞이합니다.


실제 교회 종소리와 난폭하게 뒤틀린 이데 픽스가 얽히면서, 꿈의 세계는 절정에 다다릅니다.



IMG_4849.jpeg



Episode.5


이 모든 장면은 단순한 허구의 스릴러처럼 보이지만,


카라얀의 1974년 녹음에서는 그것이 오히려 하나의 심리적 풍경처럼 느껴집니다.


프로이트의 말처럼, 꿈은 우리의 본능과 기억이 서로 뒤섞여 만들어내는 작은 연극입니다.


베를리오즈는 자신의 연극을 음악으로 만들었고,


카라얀은 그 연극을 음향의 안갯속에 다시 세워 올렸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새벽녘에 들으면,


우리는 19세기 낭만주의의 감정만 듣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깊은 상처와 욕망이 꿈의 언어로 변형된 순간을 함께 바라보게 됩니다.



IMG_4850.jpeg



Episode.6


카라얀이 빚어낸 1974년의 어둡고 은근한 질감은


그 꿈의 기운을 흐릿한 새벽 공기처럼 오래 머물게 합니다.


종소리가 울리고, 어둠이 천천히 걷혀가면 꿈은 사라지지만,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우리는 베를리오즈의 상처,


카라얀의 절제된 혼란,


그리고 우리의 무의식이 살짝 흔들리는 미묘한 파동을 함께 느끼게 됩니다.



IMG_4851.jpeg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18화끝없이 이어지는 선반 위의 선율 - 바흐 푸가의 기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