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절교할 거야”

이 아이의 복잡한 마음이 아직 내게 온다는 게

by 빛나볼게요

딸아이는 학교가 끝나면 학원을 들렀다가

저녁 무렵 집에 온다.
그리고 식탁에 앉자마자,

하루 종일 있었던 이야기를 끊임없이 쏟아낸다.


오늘은 누구랑 같은 팀이었고,

점심시간엔 누가 웃겼고,

선생님은 무슨 말씀을 하셨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목소리의 톤이 살짝 바뀐다.
“근데... ○○가 나한테 절교하쟤.”

“근데 나도 걔랑 절교하고 싶었어!”
말끝을 흐리는데,

그 말 하나에 나는 무슨 일인가 싶다.

“누구랑 놀지 말래.”
“내 연필을 말도 없이 가져가서 쓰더니,

돌려달라니까 되려 치사하다고 적반하장으로 굴었어.”
“나는 점심시간에 밥도 다 못 먹었는데,

OO이가 도서관 가자고 계속 재촉했어.”
“같이 떠들어놓고선 선생님한테는

내가 먼저 말 걸었다고 거짓말해서 나만 혼났어.”
“내가 빨간 립밤 바르고 갔더니 이상하다고 해놓고,

다음날엔 똑같이 바르고 왔어.”


아이는 눈을 굴리며 하나씩 털어놓지만,

그 안에는 억울함도, 서운함도,

이해 못 하는 마음도 담겨 있다.
나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속이 끓는다.
“그건 진짜 너무하네. 엄마가 한번 얘기해 줄까?”
목까지 올라온 말을 꾹 눌러 삼킨다.

이럴 때마다 참 헷갈린다.
얘기해줘야 하나? 대신 화내줘야 하나?


하지만 친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
그 안의 감정은 결국 아이가 겪고, 느끼고,

스스로 소화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걸 안다.
엄마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실 그건 이 아이가 만들어가는 ‘친구들의 세계’다.


그리고 문득, 나는 깨닫는다.
이런 이야기들을 엄마에게 와서 이렇게 쏟아낸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처음엔 솔직히 조금 귀찮기도 했다.
하루 일과를 끝낸 나에게,

그 수다스러운 말들이 버겁게 느껴졌던 날도 있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직 아이의 혼란스럽고

복잡한 마음이 향하는 곳이
‘엄마’라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


곧 다가올 사춘기의 감정들,
혼자 끙끙 앓게 될지도 모를 친구들과의

관계 속 갈등들.


그 모든 시간을 이 아이가 통과할 동안,
엄마인 나는 얼마나 무력하고도 조심스러울까.

그래도 나는 바란다.
언제든 괜찮지 않은 마음을 엄마에게

풀어놓을 수 있기를.


복잡한 하루를 품고 돌아와, 밥숟갈을 들며
“오늘은 좀 속상했어”라고 말해줄 수 있기를.

그저 내 앞에서, 편안함만 느끼기를.
엄마는, 언제나 거기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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