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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 새 Aug 29. 2021

나는 개학이 무서웠다

아들의 2학기 개학을 맞이하며

제주도 여행을 하면서 

즐거울 때 죄책감을 느끼는 것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나고 있었다. 

(아주 조금씩!  오늘도 즐거운 순간 뒤에는 별일 아닌 상황에서 소리를 꽥꽥 지르는 나를 본다.)

남편과의 관계에서 나의 불편함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면서도 

공격당하지 않고 존중받는 경험을 했다.

내 마음대로 모든 것을 조종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았더니 

더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아이들과도 함께 있는 것이 편안한 시간이 길어지면서 

꽤 편안한 일상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다시 파도가 친다. ‘아들의 개학’이라는 파도.



개학이 다가오자 내 마음이 자꾸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한 학기 동안 아들의 담임선생님께 들었던 이런저런 말씀들이 떠오른다.

아들이 친구들을 계속 치고 다니면 학교폭력 위원회가 열릴 수 있다,

줄 서기를 할 때 일등을 하려고 자꾸 새치기를 하고, 일등으로 줄을 서지 못하면 친구들을 치고 다닌다,

줄을 서서 하교하는 길, 비가 오지 않는데도 우산을 켜서 주위 친구들 눈이 찔릴까 봐 걱정인데 

선생님이 우산을 접으라고 해도 계속 비가 온다고 우겨서 당황스럽다,

찰흙으로 여름에 관한 만들기를 하는 시간에 

아들이 초록색 찰흙으로 동그랗게 대충 빚고 끝났다고 말하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들이 제일 앞자리에 앉을 때 교실 앞문을 막으면서 삐뚤어진 자세로 자꾸 앉아있어서 걱정스럽다, 

하루에도 스무 번씩 선생님을 찾아오는 아들이 부담스럽고 사랑이 많이 필요한 것처럼 느껴진다,

자유 독서 시간에 피아노 이론 책을 가져와서 푸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국어와 수학 관련 책을 읽으라고 했다, 등등.



내가 알아야 할 내용도 있지만, 

굳이 알고 싶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는 아들에 대한 내용을 왜 말씀하신 걸까

괜히 선생님 탓도 해보지만

이런저런 말들이 자꾸 내 머릿속을 떠다닌다.



물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아들의  독서량이 방대하며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고 생활하는 모습이 훌륭하다고.

급식으로 나오는 떡이 맛있어서 

아들이 배식하는 선생님께 이 떡 만드는 업체가 어디냐고 물어봤다고 말씀을 하실 때는 

선생님께서 우리 아들을 귀엽게 여기는 마음도 느껴졌다.



그런데도 자꾸 걱정이 된다. 아들의 학교 생활이.

2학기 때는 또 어떤 일이 생길까.

개학을 앞두고 걱정이 나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휴..... 



나는 걷기 시작했다.



개학을 며칠 앞둔 밤, 

아이들을 재우고 밤 10시에 나가서  자정이 될 때까지 걸었다. 

복잡한 머리와 무거운 마음을 살펴보려 해도 

짙은 불안에 덮여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그냥 다 포기하고 걸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걷기밖에 없었다.



2학기 개학날, 

학교 간다고 신이 나서 6시에 일어난 아들은

학교 갈 시간이 되자

엄마는 따라오지 말라며 현관문을 꽝 닫고 

혼자 학교로 뛰어갔다.



나는

마스크 쓰는 코로나 시대가 좋을 때도 있구나 생각하면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아 모자도 눌러쓰고 밖으로 나갔다.



답답한 마음을 안고 걷기 시작.

아파트 단지를 지나 집 앞 동산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이르자마자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말,



“무서워.”

“엄마, 나 너무 무서워. 

엄마, 엄마, 나 너무 무서워.

나 학교 가는 거 너무 무서워.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눈물이 반갑다.

눈물은 지금 내 마음이 

진짜라고 말해주는 신호인 것 같아서.

그래서 무섭다는 말을 자꾸 내뱉아보았다.



“무서워, 무서워, 엄마, 나 너무 무서워...”

무서웠지만 무서운 줄 모르고 지낸

내 인생의 여러 장면들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1학년, 선생님께서 앞사람부터 차례대로 책을 읽어보라고 하셨다. 젤 뒤에 앉아있던 나는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내 차례가 와서 책을 읽는데 너무 떨려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겨우겨우 용기를 내서 읽어보았지만, 선생님은 내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들리지가 않는다고 하셨다. 무섭게 혼내는 말투도 아니었는데, 그냥 교실에서 내 목소리를 낸다는 것 자체가 무서웠다. 지금도 생생한 기억이지만 그 때의 그 기분을 친구에게도 엄마에게도 말해 본 적이 없다. 



내 존재 자체로 편안하지 않았으니, 내가 잘하는 것으로 포장이 되지 않으면 더 불안했다. 친구들과 즐겁게 논 기억이 거의 없고 친구들보다 잘하려고 애썼던 기억만 생생하다. 



(최근에 나의 초등학교 일기장을 보고 있는데 친구들과 재밌게 논 이야기들이 가득해서 많이 놀랐다. 내가 그렇게 재밌게 놀았었나.. 내 친구 세숙이,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그 친구랑 잘 놀았던 기억이 난다. 얼마나 보석 같은 기억인지. 나도 재밌게 놀던 때가 있었구나... 내 일기장을 보물 삼아 계속 살펴보려 한다.)



어린 햇새가 모르고 지냈던 마음은 불안과 외로움이었다. 친구들보다 더 잘하지 못하면 불안해서 친구들보다 잘하려고 애썼고, 나보다 선생님께 더 많이 사랑을 받았던 친구들을 엄청 질투하고 미워했다. 외톨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 물리적으로 누군가의 옆에 있긴 했지만, 내 마음은 늘 혼자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미영이가 독서를 하면서 선생님께 칭찬받는 모습을 보고, 나도 따라 하느라 나는 읽기 힘들 만큼 글씨가 많은 책을 가지고 갔다. 매일 점심 도시락을 같이 먹던 친구는 기억나지도 않는다. 그날 일부러 책 읽으며 밥 먹겠다며 친구들에게 혼자 먹겠다고 말했는데 친구들이 ‘햇새 너 선생님께 칭찬받으려고 그러지?’ 했던 친구들의 목소리가 기억에 남는다. 지금도 얼굴이 좀 화끈거린다.



5학년 때인가 6학년 때는 유선이라는 아이가 너무 이쁘고 공부도 잘해서 그 아이를 참 미워했다. 내 시기와 질투가 티가 났는지, 유선이와 친했던 다른 반 친구들 서너 명이 몰려와서 나를 복도로 불러내서 유선이에게 왜 그러냐고 했다. 여러 명 앞에 섰던 나는 당황스럽고 무서웠다. “나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미안해. 안 그럴게.”라고 말하며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유선이는 편 들어주는 친구들이 있었고, 나는 혼자였다.



중학교 때도 여전히 친한 친구는 없었지만, 특별히 아픈 기억도 무서웠던 기억은 없이 지냈다. 외국어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나의 무서움과 고립감은 더 커졌다. 친구들이 다 잘할 것 같은데 그 속에서 나는 어찌해야 하나 너무 무서웠다. 고1 때 아빠가 사고를 쳐서 우리 집에는 빨간딱지가 붙었고 월세방으로 이사를 가고 난 후부터는 내 모습이 더 초라해 보여서 나를 내보일 수가 없었다. 어울릴 수가 없었다. 친구라고 옆에 누가 있긴 했지만 속마음을 나누진 않았다. 



대학교에 진학해서도 무섭고 두려운 마음이 컸다. 고등학교 때는 몇 학년 몇 반이라는 형식적인 소속감이라도 있었지만 대학교는 그냥 망망대해였다. 자유로운 만큼 더 외로웠다. 



스-르-르 스치는 장면들 속에 무서워 떨고 있는 상희를 느껴본다.

애처롭다. 안쓰럽다.



나는 내가 원하던 엄마가 되어 

어린 햇새에게 이야기했다.



“햇새야, 많이 무서웠구나. 

엄마가 몰라줘서 너무 미안해.

네가 담담하고 씩씩하게 학교 다녀서 

엄마는 네가 잘 지내는 줄 알았어.

그래서 너무 고맙고 자랑스러웠지.

엄마가 ‘우리 햇새는 혼자서도 정말 잘해’라고 말하는 게 

너에게는 또 다른 짐이었다는 걸

엄마가 몰랐어.


엄마 삶이 너무 무거워 보여서 

네가 엄마에게 또 다른 짐이 될까 봐 

편안하게 말 못 한 거였구나. 미안하다.


엄마가 엄마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너를 못 봐줘서 미안하다.

얼마나 무서웠니. 

무섭다고 말 한마디 못하고 

괜찮은 척, 씩씩한 척 사느라 얼마나 힘들었니.

엄마가 안아줄게. 고생했어. 

아이고 우리 햇새 애썼다...”



어린 햇새에게 한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다 큰 햇새에게 하는 말이었다.


여덟 살 햇새가 듣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 생각해보고

마음속 엄마에게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햇새야, 오늘 학교 어땠어?”

“재밌는 일 있었어? 속상한 일은 없었어?”

"외롭거나 무섭진 않았니?"

“같이 놀고 싶은 친구 있으면 언제든지 초대해. 엄마가 맛있는 거 해줄게.”



초등학교 2학년 때 그룹 활동을 준비하느라 친구들 세 명이 우리 집에 온 적이 있다. 나는 엄마에게 친구들이 온다고 분명 말씀드렸는데, 엄마가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친구들이 왔을 때 같이 먹을 음식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친구들이 올 시간이 되자, 집이 너무 썰렁한 것 같아 나 혼자 급하게 슈퍼에 가서 죠리퐁 한 봉지를 사 가지고 와서 서둘러 스테인리스 국그릇에 친구들 인원수대로 죠리퐁을 나눠 담아놓고 친구들을 맞았던 기억이 난다. 




현실적인 한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엄마가 있다.

그 엄마를 원망하면서도 

엄마와 편안해지고 싶어서 

그녀를 이해하는데, 혹은 받아들이는데

내 인생 전부가 쓰일지도 모르겠다. 

엄마를 보는 마음이 

세상을 보는 내 마음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울고 있는 어린 햇새가 원했던 

이상적인 엄마가 있음을 느낀다.

이제 그 엄마에게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그 엄마에게 위로를 받는다.



내 불안은 나의 엄마에게 말하자. 

나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내 마음속 엄마에게.

(진짜 엄마에게도 내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이해받지 못하더라도 그냥 나는 그랬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내 마음 상태가 올 수 있지 않을까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아들은 아들의 튜브와 구명조끼를 가지고 있으니 

내 불안을 아들의 문제로 착각하지 말자. 



내 자리에서

어린 햇새를 잘 살펴주고 위로도 해주고

어린 햇새와 즐겁게 놀자. 



그러면 

아들이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엄마에게 짐이 될까 봐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기쁨도 슬픔도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대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그런 대상이 되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자연스러운 흐름의 결과일 수도 있다고, 

감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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