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 시간에 사과를 먹는다. 와작와작.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사과를 씹는 소리가 크게 울린다. 이 사과로 말할 것 같으면 전날 저녁 공부하는 딸에게 내가 간식으로 내준 것이었다. 일곱 조각 남짓했는데 딸은 세 조각을 먹고 남겼다. 출근 전 아침에 딸 방에 들어가 어질러진 방 안을 대충 치우다가 책상 위에 놓인 사과를 보았다. 갈변이 일어난 네 조각 사과를 비닐 랩에 싸 와서 지금 먹고 있다.
가족들이 남긴 자투리 음식이나 먹기 싫어하는 것을 어느 순간부터 나는 '먹어 치우고' 있었다. 심지어 나는 약간 맛이 간 음식들도 음식물 쓰레기 봉투가 아닌 내 위에다가 버릴(?) 때가 있다. 웬 궁상일까. 스스로에게도 물어보지만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거의 매일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드는 나의 수고로움에 대한 오기일 수도 있고, 좀 더 거룩하게는 음식물 낭비를 막아 환경을 보호하고자 하는 나의 갸륵한 마음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동기야 무엇이든 간에, 저녁을 걸러 출출하던 차에 시들해진 과육을 입 안에 넣고 우물거린다. 생각건대, 오늘 하루 사무실에서만 10시간째다. 누군가가 형광등의 창백한 불빛 아래 홀로 사과를 먹고 있는 나를 모델로 삼아 그림을 그려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제목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달아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