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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5

by Lan Yoon Mar 06. 2025

이제는 생각날 때마다 글을 쓰는 수밖에 없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미루지 말고 노트에 바로바로 적어두자. 나중에 써야지 하다가 까맣게 잊어버리곤 단 한 줄도 못 쓸 때가 허다하다.     


20대에는 며칠이고 머릿속에서 떠돌던 문장들이 이제는 눈만 깜박여도 휘발된다. 총명함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정신 줄만이라도 좀 놓지 않기를. 안개 속에 싸인 듯, 보이는 것이나 느껴지는 것들 모두가 모호하다. 뒤죽박죽, 엉망진창이어도 어찌어찌 하루는 또 간다.     


이런 것도 나이 드니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나만 그런 건 아니고, 주위 나랑 같이 늙어가는 또래들 모두 그렇다고 했다. 그래도 위로는 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늙어간다는 건 잔인하다. 조물주의 숨은 의도가 있겠지 싶다가도 한 번씩 저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끓어오른다.      


제기랄.     


어느덧 사는 것에 이력이 생겨 좀 익숙하다 싶은데 소멸시키려 들다니. 화를 낸 들, 자기 연민에 빠진 들, 시간은 흐르고 나는 그만큼 늙어간다.     


이런 감정에 빠지는 날에는 사무실에서 겪었던 크고 작은 사건이나 보기 싫은 인간들도 나를 흔들지는 못한다. 나는 지금 이 우주에 근본 없이 뚝 떨어진 한 생물체로서 저 거대한 존재론적인 질문에 맞닥뜨려 있는데, 그따위 시시한 문제쯤이야!

  

사는 동안 이런 감정을 한결같이 유지할 수 있었다면, 나는 좀 더 행복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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