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없다.
가난은 끝이 없었다.
아빠가 좀 더 열심히 살았음 했는데 뜻대로 잘 안되고
책임은 엄마가 더 많이 지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집을 이사했다.
전세금으로 그동안 빌린 돈도 갚고 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결국 더 허름한 집으로 이사를 한다.
화장실이 공용이고
옆집이웃은 조현병이 있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밤만 되면 소리를 질러대다 떠나갈 듯 웃었다가
진심 정말 그런 공포는 없었는데
얼굴이 참 예뻤던 기억이 난다.
핏기가 하나도 없이 새 하얀 얼굴.
엄마는 노상을 접고 남의 집 일을 다시 시작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산다는 말
그게 딱 우리의 형편을 말해주는 문장이었다.
내가 학교 끝나고 동생을 조금만 돌보고 있으면
엄마가 일을 마치고 왔다.
어느 날은
신던 운동화가 너무 낡아 밑창이 다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엄마가 돈이 없는 걸 뻔히 아는 나는
신발을 사달라고 말을 하기가 미안했다.
엄마는 신발을 보더니 당장
운동화를 사야겠다고 해서
동네에 새로 생긴 신발가게로 나를 데리고 갔다.
왜 그렇게 가슴이 떨렸는지
닳아빠진 내 운동화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새 신발을 구경 온 것만 해도
너무 기쁘면서 미안한 두 가지 감정이
어린 나에게 요동쳤다.
아저씨는 요즘 이게 유행이다. 저게 좋다
열심히 영업했지만
우리는 사실 답은 정해 있었다.
가장 튼튼하고 싼 거.
예쁜 구두가 신고 싶었고
메이커 운동화가 신고 싶었을 거지만
제일 싸고 튼튼하다 못해 질긴 생고무 딱딱한 운동화를
한 켤레 사서 왔다.
운동화를 사고 나니
하필 똑 떨어진 쌀을 팔아야 할 돈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쌀 5천 원어치만 담아주세요~”
그 말을 하던 엄마의 손끝에 말아쥔 5천 원이 한없이 초라했다.
지금도 엄마는 “밥 먹으러 와라~”
소리를 자주 한다.
엄마에게 밥은 단순이 허기를 채우는 용도 보단
자식에 대한 책임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