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지방에 가서 일을 했다.
한 달에 한두 번 집을 왔었고
엄마는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고 밤낮으로
일을 했다.
일찍 저녁을 차려주고
엄마는 장사를 하러 나갔고
동생과 나는 둘만 남았다.
그 집을 우리는 '귀신 나오는 집'이라고 불렀다.
집을 보러 갔을 때
방이 2개였는데 살고 있는 집보다 너무
넓었고 화장실도 넓고 주방도 넓고
다 너무 좋아 보였다.
집값이 정말 싸서 보자마자 계약을 하고
이사를 했는데
화장실은 보일러실이었고
두 집에서 공용 화장실을 사용해야 했었다.
벽은 멀 청한곳이 없게 속 안에서 무너져
벽지 안쪽으로 다 부서져 있고
창문은 녹이 슬어 제대로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는 애매한 위치에 멈추어져
나무틀을 짜서 비닐로 막아 두었다.
무엇보다 놀란 건
그 집은 이전에 무당집이었다고 했다.
뭔가 홀렸다는 게 이런 걸 말하는 걸까?
어린 나도 확실히 보았던
그 따뜻하고 넓고 싸고 좋은 집은
막상 이사오니 허름하고 음산한 폐가 같은 곳이었단 걸..
그렇게 밤마다 천둥번개라도 치면
덜덜 떨며 너무 무서워했다.
동생을 씻기고 재우려고 누우면
정확히 9시.
꼭 동생은 그쯤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했다.
너무 무서운 게
옆집 이웃 언니의 문 넘어 들리는
고래고래 고함소리가
귀신보다 더 무서웠다.
아빠한테 화장실이 너무 무섭다고 전화하니
아빠는 단숨에 올라와
집안에서 스위치를 켜면
우리가 화장실 가는 길에
전구가 켜지도록 설치하여 빛을 밝혔다.
마치 헨젤과 그레텔의 빵처럼...
'이제 9시에 화장실가도 문제없어!'
엄마 아빠가 꼭 우리 등뒤에 있는 것 같았다.
엄마는 가끔 꿈속에서 그때 그 집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그렇게 서럽게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 집은 우리 가족에게 최악의 기억을 남겼지만
그 시절로는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는 다짐의 원동력이라고 할까?
32평 아파트를 엄마의 이름으로 가졌던 날
물론 대출은 있었지만.,
그날은 엄마 일생에 가장 최고의 기억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