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나도 아이였지만, 돌봐야 할 동생이 있었기에
늘 어른처럼 행동해야 했다.
어느 날, 하원하는 동생을 데리러 어린이집에 갔다.
“엄마한테 동생 원비 좀 내시라고 전해줄래?”
선생님의 말투가 꼭 우리를 무시하는 것처럼 들렸다.
“네! 엄마가 주실 거예요!”
나는 일부러 또렷하게 대답했다.
그때 마침 동생이 나를 보고
이가 하나 빠진 미소로 달려왔다.
“누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선생님들이 너 미워해?”
다섯 살짜리라 잘 모를 줄 알았는데,
아이의 대답은 단호했다.
“몰라~ 떤땐님은 나를 안주아해.”
어릴 때 이가 깨져 발음이 새던 동생은
‘안주아해(안 좋아해)’라는 말을 하며
괜히 쑥스러운 듯 웃었다.
그 말이 마음을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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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어린이집 동시대회가 열렸다.
그 선생님은 내게 말했다.
“동생만 아직 못 외웠어요. 좀 챙겨줘야지… 휴.”
다른 아이들은 다 외웠다며,
우리만 못한 것처럼 비꼬듯 말했다.
게다가 동네 누나에게 얻은
꽃무늬 점퍼를 입은 동생을 보며
비웃음을 터뜨렸다.
하원할 때 옷을 입혀줄 때도
손길이 유난히 거칠게 느껴졌다.
그러자 동생이 천진하게 말했다.
“떤땐님 이고 꼬시예요.”
남자아이가 꽃무늬 점퍼를 입었다고,
그걸 웃는 어른들.
어렴풋이 "좀 하나 사입히지" 하는 말 같았다.
내가 문앞에 서있는데도 이러는데
내가 없을 땐 더 심했겠지.
그전에 이미 한 번,
동생이 혼자 어린이집을 빠져나온 적도 있었다.
화장실이 급했는데 선생님이 몰라서
결국 집으로 혼자 왔던 거다.
동생이 학교에 나를 찾아왔고 내가다시 데려다줄 때까지
아무도 몰랐다.
그 정도로 무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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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말했다.
“쟤 어린이집 다른 데로 옮기면 안 돼?”
“이제 곧 유치원 가야 하잖아. 거긴 안 보내도 돼.”
그렇게 다섯 살 겨울이 지나고,
동생은 새 유치원에 다니게 됐다.
그곳의 선생님은 아이를 차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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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다고 해서 자존심까지 가난한 건 아니다.
철이 일찍 든 나는
형편이 어려웠던 우리를 무시하는 시선을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그 자존심이 너무 상해서,
동생에게 동시를 반나절 만에 외우게 하고
머리에 무스를 바르고 한복을 입혀
그날 저녁 대회에 내보냈다.
그 어린이집은 교회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하나님이 너희에게 아이들을 차별하라고 가르치셨냐고
묻고 싶었다.
그분이 분명 잘못된 그들을 깨닫게 하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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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서른 중반이 된 동생에게 물었다.
“너 어릴 때 기억나?
그 어린이집에서 너 엄청 미워했잖아.
난 아직도 그 생각만 하면 열 받아!”
“누나, 나는 기억이 안 나.”
다행이었다.
상처는 나누면 두 배가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