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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s come true

by 이음하나

우리 가족은 반그니엘에서 참 많은 일을 겪었다.

비가 유난히 많이 내리던 어느 해 여름방학,
배수펌프가 멈춰 집 안으로 물이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 덕에 나의 초등학교, 중학교 졸업앨범은 모두 젖어버렸다.
그래서 그 시절의 못난 내 모습을 이제는 볼 수 없다.

그래도 이 집에서 우리는 조금은 사람답게 살았다.
그 귀신 나올 것 같던, 그 집에 비하면 궁궐이었다.


엄마가 맛있는 걸 자주 사주던 기억이 있다.
그것은
형편이 이전보다 나아졌다는 것이다.

메이커 운동화는 아니었어도
버텨 신지 않아도 되었고,
때때로 계절이 바뀌면 옷도 한두 벌 새로 살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큰 변화는
배우고 싶던 미술 학원에도 다닐 수 있었다.


반그니엘에서 산 지 대략 4년쯤 되었을까.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던 어느 날,
엄마가 말했다.

“우리 곧 아파트로 이사할 거야.
방 세 개에, 화장실 두 개, 거실도 있고 주방도 있어.”



“응…? 어디라고? 아파... 트?”

그 말이 나는 꼭 거짓말 같았다.
그럴 수 있을까?
이게 말이 되나?

형편이 조금 나아졌다는 건 느꼈지만
그 정도로 좋아졌다고는 믿기 어려웠다.
어쩌면 너무 믿고 싶어서
차라리 꿈일까 봐 겁났던 것 같다.

“그래, 아파트.”

엄마의 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아파트가 뭐라고…
그 한마디가 우리 가족의 새로운 세상을 여는 주문 같았다.


엄만.
어느 날 퇴근길에
너무 힘들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섰다 했다.

이제 더 이상 여리한 봄꽃 엄만 없다.
가지마다 튼튼해 푸른 잎이 크고 무성한
수호신 같은 느티나무가 되어 있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래서 살 게 많아.
너 방 침대도 큰 걸로 사야 하고, 책상도 새로 사야 하고,
동생 방에도 사야 하고, 식탁도 필요하고…”

엄마는 이미 머릿속으로 새 집을 채우고 있었다.

친구들 대부분은 이미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 집엔 있어야 할 가구들이 제자리를 알고 있었고,
바닥은 늘 반짝였고,
걱정 없이 살아도 될 것 같은 공간이었다.

'적어도 물이 넘쳐서 수해 입을 일은 없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평생 나는 그런 곳에서 살 수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우리가 이사를 간다고?
정말 꿈같은 일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사 준비는 분주했고,
시간은 놀라울 만큼 빠르게 흘러갔다.

어느 날과 다름없는 아침이었지만
집 안은 어수선했다.

짐들이 포장되어 있었고,
나는 교복만 꺼내 두고 나머지 물건을 박스에 넣었다.
오늘이 반그니엘에서의 마지막 등교였다.

“다녀오겠습니다!”

“이따 학교 끝나면 아파트로 와!”

그날 엄마의 그 한마디가
어찌나 가슴을 뛰게 했는지.

지금도 그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우리를 지켜주었던 반그니엘.
그리고,
꿈은 이루어졌다.

잘 있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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