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를 타는 일이 어찌나 어색했던지,
매일 계단으로만 내려가던 내가
이제는 ‘올라간다’는 게 낯설었다.
집에 도착하니 짐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 있었다.
사실 멀쩡한 살림살이가 거의 없어
대부분 새로 사야 했다.
이전 집에는 작은 싱글 침대 하나는 있었지만
하지만 책상이 마땅치 않았다.
초등학교 입학 때 샀던 책상은 너무 작아
중학교 때부터는 불편했고,
결국 책상 대신 작은 테이블 하나가 전부였다.
내 짐은 늘 상자 안에 들어 있었다.
그런데 새 집 방에는
책장이 딸린 근사한 책상이 있었다.
빙그르르 돌아가는 의자,
높낮이 조절까지 되는 세트였다.
책을 책장에 꽂을 수 있다는 게
이렇게 감사한 일일 줄이야.
나는 챡챡 물건을 정리하며
마치 부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혹시 다시 이전집으로 이사 가야 하는 건 아닐까
불안한 마음이 스쳤다.
내 방, 동생 방, 부모님 방,
그리고 화장실이 두 개.
욕조도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공간이 사람에게 행복을 줄 수도 있구나.
아마 그래서일까.
나는 결혼을 하고 나서도
늘 ‘나만의 공간’에 대한 집착이 있었다.
엄마는 돈을 벌어
침대 하나, 책상 하나, 우리를 위한 물건을
사주는 것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가끔.
그때 그 귀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공포의 꿈을 꿀 때면
더럭더럭 눈물이 난다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아파트로 이사 온 뒤로
엄마가 하는 일이 점점 잘 풀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이제 먹고살 만 해졌네~”
봉지에 담긴 쌀을 사던 시절은 끝이 났고,
엄마는 우리를 더 잘 먹이고,
더 잘 입히고,
더 잘 가르쳤다.
마치 그동안 못해준 모든 걸
이제야 다 해주겠다는 마음으로.
그래서 나는
지겹도록 17년 동안 나와 함께했던 상처,
오타모반을 치료하기로 했다.
지금이야 동네 피부과에서도
레이저 치료가 가능하지만,
그때만 해도 큰 대학병원에서만 할 수 있었다.
한 번 시술에 50만 원이 넘었고,
열 번은 해야 효과가 있다고 했다.
“열 번 치료하면 없어집니까?”
“네, 아주 흐릿하게만 남을 수도 있는데
이건 치료 효과가 좋아요.”
그렇게 교수님과
열 번의 치료를 약속했다.
“걱정 마요. 예쁘게 해 줄게요.”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정… 말요?”
꿈이 도대체 몇 개가 이루어지는 것인지..
이래도 되는 건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