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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반지하) 그니엘 레지던스

by 이음하나

귀신 나오는 집은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옆집 여자의 정신병은 더 심해져

무서워 견딜 수가 없었고,
집이라고 했지만 집이 아닌 그곳을
엄마는 달러빚을 내서라도 벗어나야 했다.


6학년 때 제일 친한 친구 엄마가
어느 날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그날은 내가 중학교 교복을 맞추러 가는 날이었다.

그 친구네는 근처 말끔한 아파트에 살았다.
우리 집이 어디쯤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는 몰랐던 모양이었다.

엄마와 함께 문을 나서는데
마침 그 엄마가 마주 섰다.

“혹시 ○○ 못 봤니? 얘가 집에 없어서 혹시 너네 집에 갔나 해서…”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눈빛은 “이런 곳에 사람이 산다고?”였다.

한참이 지난 지금도,
엄마는 그날 그 눈빛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응답하라 1988 에는 내가 가슴 깊숙이 닿은 장면이 있다.


덕선이네는 반지하.

막내 노을이 학교로 아빠가 갔는데

친구들이 노을이를 "야~ 반지하~!"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아빠는 충격을 받는다.


이 장면을 보고는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는 버릴 것이 없는 착한 내 딸도 그깟 별거 없는

사람들의 이상한 눈빛을 받을까 걱정스러워했다.



엄마는 깨끗한 집을 찾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얼마 후, 동네에 새로 지은 다가구 빌라가 있었는데

반지하였지만,
새로지어서 깨끗하고 창문, 방문, 현관문이 반듯했고

무엇보다.
화장실이 집안에 있었다.

엄마가 이사를 했다고 없는 돈 긁어모아

내 침대까지 사주었다.


어찌나 고맙고 감사했던지,

쥐구명에 해까진 아니었지만 조금은 빛을 보던 순간이었다.



행복은 아주 가까이 있고 크기는 상관이 없다.
결핍은 어린 나를 생각보다 씩씩하게 잘 키웠다.


그때 나는 반지하 우리 집이 최고의 집이라 생각했는데

문이 멀쩡하고 화장실이 집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한 그 공간.
하지만,

그것을 계속 누리고 살았던 친구들의 눈은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6학년 때 그 친구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학기 초 왕따를 당하던 그 아이가 안쓰러워

함께 해준 것이,

마흔이 넘은 지금도 상처로 남아 있으니
만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임은 틀림없다.


그날은 토요일이라 학교를 일찍 마치고 집으로 왔다.


어질러진 집을 정리하고 몇 개 있는 설거지를 정리해 두고는 동생 점심을 차려주었다.
점심을 먹은 동생은 윗집 친구와 논다며 나가고
나는 늦은 점심으로 라면을 먹을 준비를 했다.

보글보글 라면이 끓고 작은집에 냄새가 진동해
주방의 작은 쪽창문을 살짝 열어두고 라면 냄새를 밖으로 빼내고 있는데

밖에서 웅성 웅성 하는 소리가

점점 또롯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여자, 남자 소리가 섞여 대략 5-6명 정도?

“야 너네 여기 하나네집인 거 알아?”

친구다.

제일 친하다는 그 계집애 목소리다.
오늘 끝나고 모여 논다고 하더니 다들 모였나 보다.

“여기 여기가!ㅎ ㅎ ”

그러더니 여기? 여기? 하며 창문으로 몰려들었다.

주방 겸 거실이라는 작은 공간에는 이중으로 창문이 있었는데
밖의 창문은 투명하고 안의 창문은 불투명했다.

반지하부터 2층 까지는 안전을 위해 철창이 창문에 설치되어 있었다.
항상 엄마는 환기시킨다고 문을 다 열어 두었는데 그날은 다행히 닫혀 있었다.



불투명한 창문에 어둑어둑 아이들의 그림자는
마치 동물원 원숭이를 만나고 싶어 몰려든 모양새였고,


나는 그 철창에 갇힌 원숭이가 되었다.




밥상에 올려진 라면이 다 불었는데 이걸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다.

한참이나 그 아이들은 우리 집 창문 앞에서 낄낄대다 떠났다.


평화롭던 토요일 오후,
해가 적당히 떠 반지하인 우리 집까지 깊숙이 빛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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