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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치남 Nov 17. 2021

생애 최초 피자를 구워 병원에 가다.

독특한 정신의학과 닥터.

  친구의 소개로 타 지역에 있는 신경정신의학과 병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자차로 30분 거리였지만 동네 병원들이 다 예약이 꽉 차서 어차피 당장 다닐 수 없어서 진료를 받게 되었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것은 검사지 작성이 필요 없고 바로 상담을 하는 것이었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건강 검진도 그렇고 검사지 작성, 정말 짜증 난다. 초진비도 다 합쳐서 1만 5천 원 정도로 저렴했다. 일반 병원들은 최저 5만 원에서 최고 18만 원까지 받는 곳도 있었으니  꼭 문의해보시고 방문하시기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뒤통수를 한 대 얻어 맞고 병원을 나서게 될 것이다.


   건물도 허름하고 병원 내부도 위생 상태가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의자에 앉지도 않고 서성이면서 내 차례를 기다릴 때까지 계속 고민했다.


  '이렇게 더러운 병원은 처음이다. 그냥  갈까, 이왕 왔으니 상담은 받고 갈까?'


  하지만 이상하게 환자들로 붐비고 있어서 호기심이 났다. 나중에서야 같은 층에 정신병동 같은 곳을 운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코로나 전에는 숙식을 하는 병동도 운영했다는데 지금은 문을 닫았다고 한다. 어쩐지 중증 환자처럼 보이는 분들이 많아서 다른 병원들하고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 선생님의 첫인상은 건방져 보였다. 마스크에 안경을 썼는데도 권위적이면서도 개성이 넘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나중에 물 마실 때 마스크를 잠시 은 적이 있는데 자연인 프로에 나오는 주인공인 줄 알았다. 다듬지 않은 더부룩한 수염이 마스크 밖으로 탈출한 것이다. 말투도 건방과 자신감의 중간 어디쯤으로 느껴졌다. 첫인상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기가 막힌 일들이 벌어졌다.


  "어디가 문제가 되셔서 오셨죠?"

  "네,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잠도 못 자고 툭하면 이유도 없이 기분이 다운됩니다. 주변에 사람들이 제 이야기를 못 알아들으면 짜증이 나서 언성도 높아지는 것도 컨트롤이 잘 안되어 너무 힘들어 왔습니다."

  "미래는 뭐가 불안하세요?"

  "네 지금 다니는 직장을 그만두면 무엇을 해야 하나? 노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등등. 이 걱정 저 걱정 많습니다."

  "미래나 노후 걱정은 저희 또래들이 다 걱정합니다. 단지 그걸로 잠을 못 잘 정도면 문제가 되지요. 그래서 뭐 준비하는 것은 있으세요?"

  "네, 그래서 이전에 실내포장마차와 펍 레스토랑 운영 경험을 살려볼까 해서 지금 요리학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아 그래요? 어떤 요리를 배우시나요?"

  "네, 이탈리안 요리를 배우는데 그중에서 피자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요. 무언가 배우고 준비하는 것은 걱정을 줄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이전에 술을 좋아할 때 다니던 이자까야가 있었는데 거기 제가 왜 자주 갔는지 아십니까?"

  갑자기 삼천포로 빠지는 느낌이 들어 살짝 짜증이 났다.


   '지가 거기 왜 갔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거기 음식들이 다른 식당들과 좀 달랐습니다. 같은 메뉴명인데 모양도 맛도 달랐습니다. 음식은 그렇게 특별해야 경쟁력이 있습니다. 사장님도 젊 아주 친절했는데, 주저리주저리~~ "


  '내가 지금 우울증 상담을 받으러 온 거야, 아니면 식당 창업 세미나를 들으러 온 거야?'


  의사의 혼잣말은 그 이후로도 10분 넘게 진행되었다.


  "뽕잎 아세요? 그게 성인병 예방에 좋거든요. 그걸 요리에 응용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아 참, 그리고 제가 나물을 좋아하는데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경쟁력이 있는 것입니다. 피자나 스파게티에 나물을 넣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주저리주저리~~ "


  솔직히 그냥 일어나 나갈까 말까 상담 내내 고민했었다. 하여간 이왕 왔으니 약이나 타 오자 하는 마음으로 참고 들어주었다. 그런데 첫 주에 약을 먹으면서 정말 용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기 전에 한 번만 약을 먹었는데 3~4일 지나니까 약효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불안증세가 많이 없어지고 욱하는 것도 자제되고 무엇보다 밤에 잠을 잘 자게 되었다. 자기 혼자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하는 상담 방법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약효가 나자 모든 불만이 사라졌다.


  이때부터는 기록을 해놔야 할 것 같아서 약봉지를 사진 찍어서 저장을 해놨다


  아고틴정 25mg 노란색 정제 - 체내 신경전달 물질의 양을 조절함으로써 항우울 효과를 나타내는 약.
   명세핀정 6mg 초록색 정제 (불면증 단기 치료제) - 중추에 작용하여 수면을 유도함으로써 불면증을 개선해하는 약.
  알프람정 0.25mg 흰색 정제 - 진정 및 안정 효과를 나타냄으로써 각종 불안장애를 개선하는 약.


  다음에 병원을 방문했을 때도 여전히 비위생적이었고 간호사 아주머니도 평상복을 입고 근무하고 있었지만 대수롭게 여겨지지 않았다. 약효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의사는 여전히 거만하고 딱딱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일주일 동안 어떻셨어요?"

  "네 일단 잠을 잘 잘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불안감도 많이 해소된 것 같고요..."

  "네, 약효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요리학원은 계속 다니고 있나요?"

  "네 여전히 다니고 있습니다."

  "다음에 오실 때 요리를 하나 만들어와 보심 어떨까요? 제가 전국에 맛집은 다 찾아다닐 정도로 미식가거든요. 하하하."


   '흠~ 또 삼천포로 빠지는 것 같다.'


  "네, 다음에 기회가 되면 피자 한판 만들어 오겠습니다."


  난 솔직히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하는 줄 알았고 나도 인사치레로 대답을 했다. 그다음 주에 의사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정색을 하더니 물어왔다.


  "그런데 피자는 언제 만들어 오실 겁니까?"

  "아~ 예 ~ , 제가 요즘 바빠서 그랬는데 다음 주에는 꼭 만들어 오겠습니다."


  속으로는 욱해서 한 마디 하고 싶었지만 약효가 있으니 의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서 고민하다가 피자 재료와 피자 배달 박스를 주문했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 피자를 미리 만들어 가기 위해서 집으로 3시간 전에 귀가해서 열심히 피자를 만들어 갔다.


  "한 주간 어떻셨습니까?"

  "아 네, 저번 주에는 고객사에서 클레임이 강하게 들어와서 심리적으로 불안한 마음으로 한 주를 보냈습니다. 약을 먹어도 진정이 안되네요..."

  "고객사들이 다 그렇죠. 그냥 그런가 보다 하시고 대범하게 넘기세요. 최선을 다해서 대처하고 그래도 안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요."

  "그러게요, 만나서 회의하고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될 것을 알지만 그 당시에는 심장이 벌렁거리고 힘드네요."

  "잠은 잘 주무셨나요?"

  "아니오, 맘이 힘들어서 그런지 약을 먹어도 잠도 잘 안 오더라고요."

  "고객사 일로 충격을 받아서 일시적인 거니까 다음 주에도 한 번 지켜보시죠. 그건 뭔가요?"

  "아~ 제가 저번에 말씀드렸듯이 피자를 만들어 왔습니다. 집에서 한 거라 도구들이 가정용이라 실력 발휘가 제대로 된 건 아니지만 맛보시고 냉정하게 평가해주십시오."

  "와~ 귀한 거네요. 직원들 주지 않고 집에 가서 아내와 맛보겠습니다."


  처음으로 마스크 너머로 의사의 만스러운 미소가 마스크를 뚫고 흘러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환자의 상태를 더 이해하기 위한 의사의 노력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뇌물? 선물? 숙제?'


  숙제가 어울리는 것 같다. 피자를 건네주고 이전에 밀린 숙제 했던 때와 비슷한 심정이었으니까. 그다음 주 상담시간에 아내가 너무 맛있어한다고 담당의는 칭찬 일색이었고 우린 피자에 대해서 맛집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이렇게 취미생활이나 몰두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이 정신건강에 큰 도움을 준다는 이야기도 양념처럼 곁들이셨다.


  약효는 있었지만 상담 중에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나 요리를 해오라는 것이 맘에 계속 걸렸다. 마침 집에서 지하철을 타러 가는데 새로 정신의학병원이 개원한다는 현수막이 건물에 걸린 것을 보고 바로 전화로 예약을 하고 2개월 만에 병원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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