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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nogoodnw May 31. 2024

좋겠다

생일이다. 어릴 땐 그래도 생일날이면 좀 들떴던 것 같은데, 이제는 뭐 그저 나이 한 살 더 먹는 날이다. 친구 놈 하나도 축하한다 말하면서 ‘근데 진짜 축하할 일 맞냐’ 덧붙인다. 잘 모르겠다. 사실 나이야 세상의 기준일 뿐 어차피 나는 매일 늙어가고 있고, 늙는다는 것은 삶을 살아냈다는 것의 반증이니 한 살 더 먹은 것도, 늙은 것도 슬퍼할 일은 아닌 듯하나 그럼에도 33보다 34가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휴 만 나이로도 34나 먹었다니. 어라, 그러면 사람들이 보내는 축하는 실은 축하를 가장한 위로인 건가. 콕 집어 생일을 축하할 요소가 쉬이 떠오르질 않는다. ‘생일 축하 합니다~.’의 ‘솔솔라솔 도도시’에 모두가 가스라이팅 당하건 아닐는지. 정말 잘 모르겠다.

별 일 없이 하루하루 흘러갔으면 좋겠다. 임기응변보단 짜 놓은 길을 흔들리지 않고 걷는 데에 강점이 있는 인간이다. 길을 수정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모된다. 별문제 없이 하루하루를 단순화하고 싶다. 그 안에도 너무 많은 변주가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벅차다.

건강했으면 좋겠다. 주에 적어도 3번은 헬스장에 갔으면 좋겠다. 술과 담배는 끊는 게 좋을 성싶다. 특히 담배는 완전히 끊을 테다. 바른 자세도 필요하다. 허리와 가슴은 펴고 턱은 좀 당기고. 정확히는 목부터 정수리까지 뒤로 당기는 느낌이다. 내 생각보다 중심이 뒤에 있음을 30 중반이 되어서야 알았다. ‘건강하게 늙어야 한다’ 보다는 ‘늙기 위해선 건강해야 한다.’

34만큼 무거워졌으면 좋겠다. 발걸음도 무겁게. 말도 무겁게. 생각도 무겁게. 33보다 34가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우니. 책도 다시 읽고, 영어도 공부하고, 가끔 글도 쓰고. 생각을 계속할 필욘 없지만, 생각을 해야만 한다. 그게 어울리는 인간이기도 하고. 똑바로 앉아 차분히 생각해야 한다.

주변 사람과 잘 지냈으면 좋겠다. 회사 사람들, 친구들, 가족, 여자친구까지. 다른 사람을 좀 더 헤아리려 노력했으면. 온전히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럴 수도 없고. 내게는 남의 기분을 해칠 권리가 없다. 내 생각의 주체는 나이고, 타인을 생각하는 행위 역시 내 체계 하에서 행해지니 나의 기준은 절대적일 수밖에 없으나 이를 극복해야 한다. 극복하지 못하겠으면 극복하는 척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 줬다. 회사 사람들, 친구들, 가족, 여자친구까지. 축하받을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행복한 하루를 빚졌다. 빚지는 것도 능력이니 이것 역시 감사해야. ’34 원대로 살았으면 좋겠다’란 말씀으로 받겠습니다. 아, 34, 잘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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